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중국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12개의 단어가 다양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표기된 걸 볼 수 있다. 이 12개 항목을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부강·민주·문명·화합을 가치의 목표로, 자유·평등·공정·법치를 가치의 방향으로, 애국, 경업, 성실과 신용, 우의와 선량을 가치의 준칙으로 삼는 12가지 덕목이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2021년 1월 19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재판 문서의 법률 해석과 법리 설명에 도입하는 것을 심도 있게 추진하는 것에 관한 지도의견(關於深入推進社會主義核心價值觀融入裁判文書釋法說理的指導意見)’을 반포하고, 3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도의견은 법관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운용해 ‘법을 해석하고 법리를 설명(석법설리·釋法說理)’할 때의 기본 원칙과 기본 요건, 주요 방법, 중점 사건, 범위, 관련 기제 등을 규정한다. 이번 지도의견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근거한 석법설리의 기본 원칙으로 가장 먼저 규정한 것은 ‘법치와 덕치의 결합’이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법치 사상을 관철하는 데 있어 헌법과 법률에 충실하면서도 법률적 평가와 도덕적 평가를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법치와 덕치가 상부상조해 서로의 이점을 발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법치와 덕치의 결합은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한 중국의 민법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민법전 기본 편인 제1편 제1장은 민법전의 입법 목적과 근거를 규정한다. 제1조는 ‘민사 주체의 합법적 이익을 보호하고, 민사 관계를 조정하며, 사회와 경제 질서를 수호하고,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발전의 요구에 부응하고,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고양하기 위해 헌법에 따라 본 법을 제정한다’라고 규정했다. 이 조항에 대해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왕천(王晨)은 2020년 5월 22일 전인대에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고양’은 의법치국(依法治國)과 이덕치국(以德治國)을 결합한 선명한 중국적 특색”이라고 설명했다. 민법전의 기본 이념이 법에 의한 국가 통치와 함께 덕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 법치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대한 충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덕치와 같은 개념도 계속 등장시키고 있다. 법치는 법률의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끊임없는 갈등과 타협의 과정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 인민과 약속인 소강(小康) 사회 건설 등 중국이 마주한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이 영도하는 법치주의하에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덕치 등의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무게를 더해가는 듯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외부인 입장에서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 개념이 법치에 자꾸 더해지면 법률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헌법과 법률에 충실하자는 법적 안정성을 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