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 엘칸은 슈트와 차의 색깔을 맞추는 스타일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늘 무엇을 입을지 정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차를 타고 나갈지에 달렸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라포 엘칸은 슈트와 차의 색깔을 맞추는 스타일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늘 무엇을 입을지 정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차를 타고 나갈지에 달렸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매년 톱 영화배우나 뮤지션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 10’에 이름을 올리는 경영인이 있다. 6조원의 상속자, ‘유벤투스’ 구단주, ‘피아트그룹’ 마케팅 이사이자 아이웨어 브랜드 ‘이탈리아 인디펜던트’ 대표, 라포 엘칸(Lapo Elkann)이다. 결점까지도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라포 엘칸은 창조적 패션 경영으로 스타 경영인이 됐다.

헝클어진 곱슬머리의 이탈리아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약 170cm의 키, 다소 크고 긴 얼굴, 옷을 살려주는 비율 좋은 몸매나 조각 외모의 소유자도 아닌데 슈트 스타일이 범상치 않다. 상의는 하얀 포켓스퀘어를 꼽은 블레이저 재킷에 하얀 드레스셔츠를 갖춰 입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의는 빛바랜 빈티지 청바지에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있다. 지금은 슈트 또는 턱시도 재킷을 스니커즈와 매치시키는 것이 하나의 패션이 됐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센세이션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그에게 쏟아졌고, 그날의 스타일은 전 세계 매체의 패션란을 장식했다. ‘이탈리아 억만장자 패션 아이콘 탄생’이란 타이틀과 함께, ‘슈트+청바지+스니커즈’는 라포 엘칸의 ‘시그니처 룩(Signature Look·대표 룩)’이 됐다.


라포 엘칸은 크지 않은 키와 다소 큰 얼굴이라는 결점을 ‘나폴리 슈트’를 입어 보완했다. 나폴리 슈트의 피크드 라펠은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고 작은 키를 황금 비율로 재분할한다. <사진 : 블룸버그>
라포 엘칸은 크지 않은 키와 다소 큰 얼굴이라는 결점을 ‘나폴리 슈트’를 입어 보완했다. 나폴리 슈트의 피크드 라펠은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고 작은 키를 황금 비율로 재분할한다. <사진 : 블룸버그>

패션감각 뛰어난 피아트 가문 출신

라포 엘칸은 잘 알려져 있듯 피아트그룹 창립자, 지아니 아그넬리의 외손자다. 막대한 유산뿐 아니라 셔츠 소매 위로 시계를 착용하거나 클래식 슈트에 워커부츠를 신는 등 창조적 스타일의 개척자였던 외조부의 패션 유전자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외조부가 그러했듯, 라포 엘칸은 이탈리아 감성 패션을 대표하는 ‘나폴리 슈트’를 즐겨 입는다. ‘나폴리 슈트’는 영국식 슈트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에 허리 라인이 날씬하다. 넓으면서도 높게 올려진 피크드 라펠(peaked lapel·아래 깃의 각도를 크게 위로 올린 양복 깃)과, 가슴 포켓을 돛단배 밑부분처럼 둥글게 디자인한 ‘라바르카(돛단배) 포켓’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인과 비슷한 한국 남성의 체형을 잘 보완해주는 슈트로 국내 멋쟁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라포 엘칸은 크지 않은 키와 다소 큰 얼굴을 지닌 신체 비율의 결점을 이탈리아 슈트의 자부심인 ‘나폴리 슈트’로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다. 일반적인 나폴리 슈트보다 더 넓게 확장된 피크드 라펠은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고, 허리를 강조한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double-breasted suit·겹 여밈 재킷 슈트)는 작은 키를 황금 비율로 재분할시켜준다. 자신의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제작한 넓은 라펠의 나폴리 슈트는 ‘라포 엘칸 슈트’라는 고유명사를 부여받았다. 결점 커버 슈트를 이탈리아 슈트를 대표하는 하나의 카테고리이자 그만의 ‘아이코닉(iconic) 슈트’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는 특히 ‘나폴리 슈트’의 전설인 루비나치(Rubinacci)의 비스포크(bespoke·맞춤) 슈트를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슈트와 스니커즈, 넓은 라펠의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를 잇는 라포 엘칸의 세 번째 ‘시그니처 룩(signature look)’은 하얀 행커치프다. 셀 수 없이 많은 패션지, 온라인과 SNS를 도배한 라포 엘칸의 슈트 룩에서 포켓에 한결같이 꽂혀 있는 하얀 포켓스퀘어(pocket square·재킷 포켓에 꼽는 장식용 손수건)를 발견하게 된다.

형형색색의 컬러 아이템들을 조화시켜 ‘컬러의 마술사’라 불리지만, 포켓스퀘어만큼은 화이트를 고집한다. 라포 엘칸은 재킷 포켓을 반드시 포켓스퀘어로 장식해줘야 하는데, 꼭 화이트여야 하며 너무 잘 접으면 안 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슈트 재킷이나 턱시도에 스니커즈를 신고, 클래식한 슈트에 드레스셔츠 대신 스포티한 피케셔츠(piquet shirts·흔히 폴로셔츠라 부르는 피케 원단으로 만든 작은 깃이 달린 셔츠)를 매치시키는 등 자유분방한 슈트 스타일링의 창조자이지만 항상 포켓스퀘어로 장식해 신사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동시에 ‘하얀 포켓스퀘어는 곧 라포 엘칸 스타일’이라는 스타일 특허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고유 스타일이 된 외조부 지아니 아그넬리의 시계 착용법(셔츠 소매 위로 시계를 차는 것)처럼, 대충 구겨 넣은 듯 멋스러운 하얀 포켓스퀘어가 ‘라포 엘칸식 포켓스퀘어’다.


라포 엘칸은 재킷 포켓을 반드시 포켓스퀘어로 장식한다. 이때 포켓스퀘어는 화이트여야 하며 너무 잘 접으면 안 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사진 : 블룸버그>
라포 엘칸은 재킷 포켓을 반드시 포켓스퀘어로 장식한다. 이때 포켓스퀘어는 화이트여야 하며 너무 잘 접으면 안 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사진 : 블룸버그>

피아트 500 컬러별로 주문해 슈트와 ‘깔맞춤’

밀라노의 한 거리에 하운즈투스체크(사냥개의 이빨처럼 보이는 무늬)의 피아트 500 아바스가 정차한다. 화려한 컬러와 패턴의 피아트는 곧 라포 엘칸의 상징이기에 파파라치들이 차 앞으로 몰려들었고, 곧 멋진 연녹색의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 차림의 라포 엘칸이 차에서 내리자 카메라 셔터가 요동친다.

라포 엘칸의 슈트와 차의 ‘깔맞춤 스타일링(색깔을 맞추는 스타일링)’은 유명하다. 그가 피아트그룹의 상속인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피아트 500을 컬러별로 주문해 자신의 슈트 컬러와 맞추는 퍼포먼스를 벌이곤 한다. “오늘 무엇을 입을지 정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차를 타고 나갈지에 달렸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라포 엘칸이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신념이다. 자동차 회사의 상속인으로서 이보다 더 화제성 높은 마케팅은 없을 듯하다.

그는 또한 자신이 설립한 아이웨어 브랜드 ‘이탈리아 인디펜던트’의 선글라스와 안경을 자신의 슈트들과 다양하게 스타일링해 대중에 노출시킨다.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다. ‘라포 엘칸 슈트’ ‘라포 엘칸 포켓스퀘어’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걸 넘어서, ‘피아트는 곧 라포 엘칸’ ‘이탈리아 인디펜던트는 곧 라포 엘칸’이라는 패션 경영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패션으로 스타 경영인이 되고, 브랜드 마케팅까지 이어가는 라포 엘칸식 패션 매니지먼트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경영법이 아닐까.


▒ 김의향
보그 코리아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디렉터, 콘셉트&콘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 크리에이터·스토리텔러,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