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남성지 는 오바마를 존 F. 케네디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노재킷 룩’과 자유분방해 보이는 ‘노타이 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 <사진 : 블룸버그>
최근 미국 남성지 는 오바마를 존 F. 케네디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노재킷 룩’과 자유분방해 보이는 ‘노타이 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 <사진 : 블룸버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이후 가장 옷 잘 입는 정치인. 권위적인 정치 슈트를 벗어 던지고 ‘노타이’와 ‘노재킷’ 룩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최초의 대통령. 반듯함보다 흐트러짐을 내세운 오바마의 슈트 정치는 21세기 글로벌 리더 스타일의 빅 트렌드로 기록된다. 오바마의 흐트러짐은 대충 걸쳐 입은 듯하지만, 사실 패션계의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무신경하게 입은 듯 흐트러진 스타일링)’처럼 잘 계산된 스타일링이다. 2017년 1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오바마식 ‘에포트리스 슈트 정치’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2007년 9월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46세의 젊은 오바마가 미국 뉴욕 워싱턴스퀘어파크에 도착했다. 이날 공원 역사상 처음으로 2만여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뉴욕대와 뉴욕주립대의 학생들 그리고 맨해튼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을 한자리에 집합시킨 대선 후보는 그때까지 없었다. 미국 청년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그 유명한 ‘체인지(Change)’ 캠페인 연설을 남긴 순간, 오바마는 재킷 없이 하얀 드레스 셔츠만을 입고 서있었다. 타이 없이 셔츠의 첫 단추는 풀어헤쳐져 있었고 소매도 걷어 올려져 있었다. 리더 스타일의 아이콘이자 교과서가 된 오바마의  ‘노재킷, 노타이 룩’이 명연설과 함께, 전 세계 공중파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자기만의 규칙 철저히 지켜

9년 가까이 흐른 지난 5월, 어느덧 55세가 된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중 ‘동남아 청년지도자 이니셔티브(YSEALI)’ 소속 청년 지도자 800명을 만났다. 이날 오바마는 베트남의 여성 래퍼 수보이(Suboi)의 즉흥 랩에 맞춰 비트 박스를 선보여 뜨거운 환호를 얻어냈다. 베트남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날, 오바마는 비둘기 빛이 감도는 연한 블루 셔츠와 블루 타이를 매치시킨 패션이었다. 타이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살짝 느슨했고 소매는 걷어 올려져 있었다. 오바마의 ‘노재킷 룩’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노재킷 룩’과 타이를 매지 않고 단추를 풀어 헤친 ‘노타이 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 소매를 걷어 올림은 성실함과 열정을, 노타이는 권위를 내려놓고 행동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의지를 대변한다. 풀어진 셔츠 단추는 격식 없는 대화와 오픈 마인드를 상징한다. 언제든지 대화하고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단 뜻이다. 패션의 ‘쿨’하고 ‘시크’함을 정치적 신념으로 세련되게 전환시킨, 정치사와 패션사에 모두 남을 성공적인 패션 정치학(fashion politics)이다.

오바마는 미국의 클래식 슈트 브랜드 ‘하트 샤프너 막스’의 골드 트럼피터 라인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달러 하는 이탈리안 명품 카날리 슈트를 입을 때도 있지만, 주로 500~700달러대의 실용적인 하트 샤프너 막스 슈트에 미국 대통령의 구두라 불리는 존스톤앤머피의 클래식한 레이스업 슈즈(lace-up shoes·끈으로 묶어 신는 남성 구두의 기본)를 신는다.

특히 오바마는 자기만의 슈트 스타일링 철칙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하다. 먼저, 슈트는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홑 여밈에 한 줄로 두개의 단추가 달린 클래식 재킷)을 고집한다. 재임 이후 베이지색 슈트를 시도하는 등 가끔 새로운 컬러로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짙은 감색과 회색, 검정을 고수하는 편이다. 특히 유명한 건 오바마의 넥타이 매듭법이다. 그는 젊은 감각의 ‘포 인 핸드(four in hand·Y자형) 매듭’에 넥타이 중간의 주름 ‘딤플(dimple·넥타이 중앙을 오목하게 만든 모양새가 보조개 같아 붙여짐)’을 강조하는 ‘딤플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딤플’이 곧 ‘오바마 매듭’으로 불릴 정도다.

흐트러짐에도 규칙이 있다. 먼저 ‘노재킷 룩’은 대충 걷어 올린 듯하지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위치는 한결같다. 소매 끝단을 두 번 접어 올려 조금 위로 당겨,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게 한다. ‘노타이 룩’에선 셔츠의 첫 단추만을 풀며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의 첫 번째 단추만 잠근다. 또 멋쟁이답게 의자에 앉을 때는 단추를 모두 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추를 풀지 않으면 재킷이 구겨지며 앉아 있는 실루엣 전체를 망가뜨린다. 슈트 애티튜드(태도)의 상식이지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핏’에 엄격하다. 지나치게 여유롭지도 조이지도 않으면서 목, 어깨, 가슴의 핏이 잘 맞아떨어질 때, 걷어 올린 소매나 풀어 헤친 단추도 멋져 보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슬림 슈트핏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곤 하는데, 최근 미국 남성지 는 ‘오바마가 존 F. 케네디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인 8가지 이유’ 중 첫 번째로 ‘슈트핏’을 꼽았다.


노타이·노재킷 룩으로 대중 사로잡아

흐트러짐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오바마의 슈트 정치는 세계 리더의 스타일을 뒤바꿀 만큼 강력했다. 이제 각국 정상들이 노타이 룩으로 함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일이 흔해졌다. 보수적인 패션을 고수하는 시진핑조차 백악관 방문 시 노타이 룩으로 오바마와 산책 회담을 가졌을 정도다.

그러나 오바마가 슈트를 입는 방식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슈트 애티튜드다. 오바마의 슈트 퍼포먼스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중 유명한 에피소드는 오바마가 미국 인기 토크쇼인 ‘엘렌쇼’에 출연해 슈트를 입은 채 엘렌과 나란히 춤을 춘 장면이다. 아르헨티나 방문 때는 즉흥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탱고 댄서와 멋진 댄스를 선보였다. 베트남에선 청년들 앞에서 비트 박스를 보여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각 나라와 세대의 문화를 지지하거나 존중하는 오바마식 슈트 정치다. 스포츠광으로 유명한 오바마는 슈트를 입고 스포츠 선수들처럼 역동적으로 활동한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는 백악관 녹색 잔디에서 새하얀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자신의 애완견 퍼스트 독(first dog)과 뛰어다니며 럭비공을 던지고, 백악관 직원들과 농구를 즐긴다. 소매를 걷어 올린 노타이 룩으로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 슈트를 활동복처럼 입고 활동하는 그의 자유로움과 인간적인 면모가 곧 신의 한 수다. 세계를 런웨이로 활보하는 오바마의 패션쇼도 피날레에 다다랐다. 그가 백악관에 작별을 고하고 백스테이지로 사라진 후에도, 오바마의 패션은 영원한 리더의 스타일로 남을 것이다.


▒ 김의향
보그 코리아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디렉터, 콘셉트&콘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 크리에이터·스토리텔러,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