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모터스 CEO는 헝클어진 머리와 투박한 안경의 괴짜 천재 공학자 이미지를 댄디하고 섹시한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사진 : 블룸버그>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모터스 CEO는 헝클어진 머리와 투박한 안경의 괴짜 천재 공학자 이미지를 댄디하고 섹시한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사진 : 블룸버그>

영화 ‘아이언맨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파티를 여는 장면이 있다. 그의 연인이자 비서였던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의 승진을 축하하는 파티였는데, 화이트 재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토니 스타크와 악수하며 “지금은 전기 제트기를 구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 화이트 재킷의 남자를 알아본 이들은 이 유머 감각 넘치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전기 제트기를 구상하고 있다’는 남자가 바로 전기차 시장의 선두 주자 ‘테슬라 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일론 머스크는 영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보유자산이 121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이르는 억만장자다. 천재 공학자인 그는 테슬라 모터스와 더불어 우주관광 기업 ‘스페이스엑스’,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의 CEO이기도 하다.

상상의 스케일이 우주로 뻗어 있는 혁신가 일론 머스크는 스타일에서도 혁신을 보여줬다. 그를 통해 헝클어진 머리와 투박한 안경의 괴짜 천재 공학자가 아닌, 댄디하고 섹시한 억만장자 천재 토니 스타크 스타일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재킷·티셔츠·청바지 즐겨 입어

일론 머스크는 언제나 유명 남성 패션지 화보를 찍을 준비가 돼 있다. 요즘 표현대로 ‘일상이 화보’인 CEO다. 몸에 꼭 맞는 티셔츠와 세련된 디자이너 진, 매끈하게 들어맞는 슈트, 가죽 재킷 등 비즈니스 룩과 캐주얼 룩에서 모두 스타일리시한 댄디 룩을 연출한다.

그러다 보니 일론 머스크 스타일의 추종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가 즐겨 입는 패션 브랜드에 대해선 다른 실리콘밸리 CEO들과 달리 특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자산이 13조원에 이르는 대부(大富)인 만큼 에르메네질도 제냐, 브리오니, 톰 포드 등의 고가 슈트와 알렉산더 맥퀸을 즐겨 입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가 나돌 뿐이다.

2016년 3월 말, 한 신차 발표회가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고성능 럭셔리 전기자동차를 만들어온 테슬라의 첫 번째 보급형 세단 ‘테슬라 모델 3’ 공개를 위해 일론 머스크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무대 컬러와 같은 검정에 가까운 진회색 재킷 안에 심플한 블랙 티셔츠와 블랙 진을 입었다. 매우 간결한 옷차림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재킷 소재와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깃을 세워 입은 듯한 디자인과 반짝이는 실크 소재가 일반 비즈니스 슈트 재킷과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지난 ‘테슬라 모델 X’ 발표회에서도 일론 머스크는 ‘재킷+티셔츠+청바지’라는 똑같은 스타일의 조합을 보여줬다. 그가 입은 진회색 셔츠와 청바지는 기본 스타일이었지만, 재킷의 소재와 디자인이 독특했다. 역시 반짝이는 블랙 벨벳 소재에 실크 단추와 밴드 장식이 턱시도 재킷처럼 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이었다.


영화 ‘아이언맨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카메오로 출연한 일론 머스크. 화이트 재킷과 스트라이프 셔츠 조합은 평상시 그가 즐기는 비즈니스 캐주얼룩이다.
영화 ‘아이언맨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카메오로 출연한 일론 머스크. 화이트 재킷과 스트라이프 셔츠 조합은 평상시 그가 즐기는 비즈니스 캐주얼룩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재킷으로 세련미 더해

일론 머스크의 프레젠테이션은 종종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곤 한다. 머스크가 말을 더듬고 뛰어난 언변을 지니지 못했음에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믿게 하는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프레젠테이션을 더욱 친근하고 멋지게 그만의 스타일로 진보시켰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패션이라 할 수 있다. 오직 제품에만 집중하기 위해 검정 터틀넥(turtle neck)과 청바지만을 고집했던 스티브 잡스와 달리 일론 머스크는 독특한 디자인의 재킷을 통해 세련된 댄디 룩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테슬라 모터스’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의 하나다. 테슬라 전기차를 사는 고객들은 ‘독창성’과 ‘혁신성’을 추구하는 얼리 어답터(제품이 출시될 때 가장 먼저 구입해 평가를 내린 뒤 주위에 제품 정보를 알려주는 성향을 가진 소비자군)들이다. 최근 발표된 보급형 ‘테슬라 모델 3’는 3만5000달러(약 4000만원)이지만, 테슬라가 내세운 브랜드 이미지는 럭셔리 전기자동차다. 1억원을 호가하든 4000만원의 보급형이든 테슬라를 타는 사람은 럭셔리하고 혁신적이며, 남과 다른 앞선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전한다. 동시에 기존의 벤츠, BMW, 포르셰 등의 ‘럭셔리카족(族)’과는 다르다는 자부심까지 선사한다.

일론 머스크의 프레젠테이션 룩은 모든 테슬라 자동차 이미지의 패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일론 머스크처럼 세련되게 차려입고 테슬라의 신차를 모는 상상을 하게 하고, 새로운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현실왜곡장’까지 경험하게 한다.

첨단 기술과 신제품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 잡스 이후 빅 이벤트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또한 CEO의 카리스마만으로 30여분의 시간을 끌어가는 일종의 ‘1인 라이브 쇼’다. 그 설계도면에는 패션이 포함되고, 일론 머스크는 재킷을 통해 그만의 프레젠테이션 룩을 새롭게 설계해가고 있다.


▒ 김의향
보그 코리아 뷰티·패션 에디터, 케이노트 대표,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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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 룩(dandy look) ‘댄디’는 ‘멋쟁이 신사’란 뜻으로, 댄디 룩은 세련되면서도 간결한 패션을 의미한다.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 현실과 다르게 왜곡돼 있는 상황이나 현상. 스티브 잡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애플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잡스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주변 사람들까지도 잡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현상을 ‘현실왜곡장’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