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조직의 성과를 위해 권력을 휘둘러야 한다. 단, 개인의 충동, 성찰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권력에 휘둘리고 마침내 그 힘으로 자신마저 나동그라지게 된다.
리더는 조직의 성과를 위해 권력을 휘둘러야 한다. 단, 개인의 충동, 성찰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권력에 휘둘리고 마침내 그 힘으로 자신마저 나동그라지게 된다.

‘직장 안은 정글이지만 직장 밖은 지옥이다.’ ‘우리 때는 너희 때와 상대가 안 되는 힘든 일, 모욕도 견뎌냈다. 육두문자에 조인트 까이는 것은 보통이었다. 이겨내라. 강한 자가 남는 게 아니라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기성세대는 ‘고추 당초보다 매운 직장살이’를 토로하는 구성원, 특히 신세대 구성원을 ‘나약하다’며 이렇게 질타한다. ‘아직 세상 모르고, 배불러서 하는 나약한 이야기’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 자살한 서울 남부지검 K검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를 보면 ‘정글보다 차라리 지옥’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단말마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산처럼 쌓인 격무보다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굴욕감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권력 중독으로 공감기능 마비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4년 2월 도쿄의 한 경찰관이 공개 모욕과 협박, 욕 등 영혼을 갉아먹는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자살했다. 상사의 부당한 권력 횡포에 ‘죽음’으로 대항한 구성원에 대한 ‘해당 상사’들의 대응 태도는 유사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K검사의 상사인 부장검사는 장례식장에서 “내가 아끼는 후배 검사”라고 애도했다고 한다. 매일 모욕과 협박을 일삼은 일본의 문제 상사 역시 자살한 부하의 장례식장에 와서 “내 말이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아마도 오리발 내놓기식 위선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나름의 진실일 것이다. 아끼는 후배라서 더 심하게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가학 행위가 상대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모두 권력 중독(도취)으로 나타난 공감마비 현상이다. 돌을 세게 던지면서 맞은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두고 ‘파워하라(power harrassment·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의 일본식 표현, 우리말로 힘희롱)’라고 명명, 일찍부터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조사에 의하면 ‘파워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문제 리더들은 자신의 리더십 행위를 자각하지 못한 채 부하를 괴롭히곤 한다.

자신이 일선 졸병이었을 때의 고통을 망각하고 부하들을 사람이 아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적 도구로 보는 ‘환각’ 증상을 갖는다. 또 자신은 소중하기 때문에 열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겪은 나쁜 상사 이야기’를 하게 되면 침 튀기며 말한다. 반면에 자신이 그처럼 나쁜 상사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돌이켜 보라고 하면 ‘이미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 일쑤다.

훈화는 청산유수이나 간증엔 서투르다. 언론 속 갑(甲)질 리더에 대해선 함께 분노하지만 자신의 경미한 유사 갑질 행위에 대해선 반성하지 않는다. 이처럼 권력은 자기중심주의를 강화하고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약화시킨다. 권력은 자신감을 높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규칙을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의식을 북돋는다. 술이나 마약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리더의 권력 도취(중독)도 위험하다. 권력의 ‘권(權)’이란 글자의 자원(字源)을 살펴보자. 저울에 다는 물건의 무게와 같은 중력으로 당기는 추란 뜻으로 추를 가감해 다는 데서 유래했다. 저울과 권력이란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저울은 물건의 양을 제대로 재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지만 바르게 측량하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추를 대충 조종하거나 조작해 균형이 기울어지는 순간 그 본래의 효용을 잃는다. 보물은 폐품이 된다.


자기성찰 브레이크 지닌 리더돼야

데이비드 맥클리랜드(David McClelland)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리더의 권력욕을 P권력욕과 S권력욕으로 구분한다. S권력욕이 조직을 위한 대승적-이타적 권력욕이라면, P권력욕은 개인을 위한 소승적-이기적 권력욕이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이른바 막말하고 막행동하는 ‘파워하라’ 상사들이 전가의 보도로 하는 말 역시 ‘너희들 잘되라고’ 아닌가. 맥클리랜드 교수는 ‘남 잘되라고’인지 ‘자신만 잘되려고’인지의 구별 기준을 이렇게 제시한다. S권력형 리더는 P권력형 리더에 비해 개인의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무감, 금지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는 공통적이되 자신의 행위와 말에 대한 절제, 공적 의무의 욕구가 얼마나 높은가를 갖고 구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S형 리더들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자신에게 수없이 던진다. S형 리더들은 자기성찰이란 브레이크를 갖고 있는 반면, P형 리더들은 브레이크 없이 성공이란 액셀러레이터만 장착된 차란 이야기다. S형 리더에게 권력은 조직을 위한 이기(利己)지만, P형 리더에겐 권력이 흉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리더는 권력을 휘둘러야 한다. 단 성찰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휘둘리고 마침내 그 힘으로 자신마저 나동그라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오래 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체질이나 타고난 체력 때문이 아니다. 정밀 건강검진을 일찍부터 꾸준히 받기 때문이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정밀 진단받고 그에 따라 처방, 교정할 때 건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리더십도 감독하고 검사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S권력형 리더인가, P권력형 리더인가. 객관적 리더십 진단, 현장의 생생한 소리 청취, 자신의 지인, 막역한 벗에게 물어보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라. 당신의 자녀를 당신 같은 상사 밑에 보내고 싶겠는가. 배울 것이 있겠는가. 아니 당신이라면 당신 같은 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은가.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언론인 출신으로 리더십 경영자로 활동, 주요 저서 <성공하는 CEO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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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하라(power harrassment)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의 일본식 표현, 우리말로 힘희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