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안남면 표충사에서 열린 중봉 조헌 선생 추모제 전경. <사진 : 옥천문화원>
충북 옥천 안남면 표충사에서 열린 중봉 조헌 선생 추모제 전경. <사진 : 옥천문화원>

겨울이나 환절기만 되면 감기·비염·독감·폐렴 등에 잘 걸리는 경우 면역력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자주 앗아간 역병(疫病·급성전염병)이 극심한 지역으로 귀양을 갔지만 역병에 걸리지 않았던 분이 있었으니 바로 중봉 조헌이다.

그는 율곡의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로 손꼽히는 분으로서 24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로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수복했고,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에서 불과 700명의 의병으로 대규모의 왜병과 싸우다 모두 전사하여 칠백의총이 되었다. 만약 중봉이 그때 전사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80세까지는 장수했을 정도로 건강하고 면역력이 강했다.


중봉 조헌이 즐겼다는 양탕. <사진 : 조선일보 DB>
중봉 조헌이 즐겼다는 양탕. <사진 : 조선일보 DB>

가난이 오히려 신체단련 기회 돼

중봉은 46세 때 선조 임금에게 작은 도끼를 들고 가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가 함경도 길주의 영동역(현재의 김책시 인근)으로 유배를 갔다. 옥천에서 길주까지 2000여리의 길을 걸어가느라 발이 부르트고 피가 흘렀으나 조금도 의기가 꺾이지 않았으니, 이를 본 춘천부사는 감탄하여 ‘철한(鐵漢)’이라고 불렀다.

유배지 인근에는 역병이 번져서 10명 중 7~8명이나 죽을 정도였다. 귀양지에 따라온 중봉의 아들도 역병에 걸렸다가 겨우 죽음을 면했고 아우는 죽고 말았다. 중봉은 아우의 병간호에서부터 염습까지를 모두 직접 하고 아침저녁으로 널을 어루만지며 지극히 애통해했지만 자신은 괜찮았다. 이것을 본 백성들이 강한 정기 앞에는 사기가 침범하지 못한다고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한의학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기운을 ‘사기(邪氣)’라고 하는데, 요즘의 세균, 바이러스에 해당된다. 몸에 사기가 들어오면 맞서 싸우는 것이 ‘위기(衛氣)’로 면역력에 해당되는데, ‘정기(正氣)’ 중의 하나다. 중봉의 강한 면역력의 비결 첫번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한 정기다. 그의 증조부가 정삼품의 무관직인 어모장군을 지냈을 정도로 무인 기품을 지녔으니 강골을 물려받았다. 초상화에는 수염이 매우 덥수룩하게 그려져 있는데, 수염은 신장의 정기를 반영하므로 신장의 정기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장의 정기는 우리 몸의 정기의 근본으로서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요즘의 유전자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두번째 비결은 모범적인 양생법(養生法) 실천이다. 양생법이란 무병장수를 위한 생활건강법인데, 중봉은 참 선비로서 규칙적이고 절제 있는 생활을 한 것은 물론이고 운동양생법도 실천했기에 면역력이 강했던 것이다. 집이 가난했던 탓에 손수 농사를 지었고, 농한기인 겨울에 매서운 눈보라를 무릅쓰고 하루도 쉬지 않고 멀리 떨어진 글방에 공부하러 다녔는데 저절로 운동이 되어 체력 단련이 되고 다리가 튼튼해져 정기가 길러졌던 것이다.

세번째는 굳건한 의지와 끈기다. 그는 우계 성혼, 율곡 이이로부터 성리학, 경세론을 배웠고 토정 이지함으로부터 유유자적하는 삶을 배웠기에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마음 건강의 달인’이 되었던 것 같다. 중봉은 수도 없이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벼슬에서 쫓겨나거나 귀양을 가거나 혹은 스스로 내던졌지만 의지와 끈기가 엄청났기에 상심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표시하기 위해 도끼를 들고 올리는 상소는 기(氣)가 넘쳐야 가능한 것이다.


양곰탕 덕에 면역력·소화기능 강화

네번째 비결은 보양식으로 먹던 양곰탕이다. 중봉의 집안은 아주 가난했지만 400년 넘게 내려오는 보양식이 하나 있었다.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중봉은 관직에서 물러나 옥천군 안읍 밤티의 궁벽한 산골로 들어가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 연마에 정진했다.

제자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보양식을 먹이려고 했지만 여유가 없다 보니 푸줏간에 가서 당시에는 별로 먹지 않던 소의 위장을 아주 싼 값에 사서 끓여 먹였는데, 그것이 바로 ‘양탕(䑋湯·양곰탕)’이다. 그 후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들 때 체력 보강을 위해 큼직한 무쇠솥에 양탕과 양죽을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다고 한다.

‘양(䑋)’이란 소의 위장 4개 중 첫째와 둘째다. 두 번째 위는 벌집 모양처럼 주름이 있어 ‘벌집양’이라고 부르는데 뒤집어 놓으면 마치 검은 수건처럼 생겼지만 맛이 좋아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도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

동물은 부위에 따라 사람의 같은 부위에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이류보류(以類補類)’, 혹은 ‘동기상구(同氣相求)’라고 한다. 간이나 쓸개는 간장이나 담낭 질환에 효과적이고 물개의 생식기인 해구신(海狗腎)과 세종대왕께서 드신 수탉의 고환, 연산군이 먹었던 백마의 음경(陰莖) 등은 정력에 좋으며, 닭의 모이주머니인 계내금(鷄內金)은 소화제로 활용돼 왔다.

소고기는 비위장을 보익하는 효능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양’은 더욱 강하다. 그래서 비위장이 제 기능을 잃어 소화가 잘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혹은 체하여 맺힌 ‘식적(食積)’을 치료하므로 소화기능이 체질적으로 약하거나 혹은 병을 오래 앓은 뒤에 약해진 경우에 좋다. 또한 비위장은 ‘후천의 근본’으로 면역기능에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만약 비위장의 기가 허약해지면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흡수되지 못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


▒ 정지천
동국대 한의대 교수, 서울 동국한방병원 병원장, 서울 강남한방병원 병원장, 동국대 서울캠퍼스 보건소장, 대한한방내과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