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흰색 건물들이 늘어선 오만의 도시 풍경. <사진 : 이우석>
아름다운 흰색 건물들이 늘어선 오만의 도시 풍경. <사진 : 이우석>

한국인에게 오만(Sultanate of Oman)은 낯설다. 두바이와 도하를 수도 없이 갔지만 상상도 못 했다. 오만이라니…. 하지만 서울이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린 초겨울의 어느날 나는 오만 무스카트의 한 작은 카페에 앉아 그 그림자만큼이나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몇번 갔기에 그동안 중동 아랍을 잘 안다고 자신했지만 그 ‘오만’은 오만에 와서 여지없이 깨졌다. 두바이는 아랍 테마파크, 도하는 민속촌이었다. 오만에선 ‘진짜 아랍’을 만날 수 있었다. 편견을 깨고서.

주사위 같은 흰색 건물들 그리고 울퉁불퉁 근육질 산세.

카타르 도하로부터 오만 수도 무스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본 낯선 풍경이다. 하자르(Hajar) 산맥의 거칠고도 늠름한 모습은 내 얇은 편견을 당장 박살냈다. 쓸데없이 너르고 평평한 사막만 펼쳐진 곳이라 미리 상상했지만 ‘중동의 스위스’라 불러도 손색없을 듯 위풍당당한 산과 울창한 숲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멋진 첫인상만큼 기대감도 넘쳐났다.

비행기가 코를 낮췄다. 낮고 새하얀 집들 사이로 역시 하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근사하다. 아랍의 옛 도시 분위기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알고 보니 법적으로 모든 건물에는 흰색을 포함, 상아색과 연노랑색 정도만 칠할 수 있다.


새하얀 도시와 울창한 푸른 숲

열사의 땅에도 겨울은 왔다. 바늘 다발 같은 태양 볕이 있지만 날씨는 제법 선선하다. 바다와 인접한 무스카트에는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

곳곳이 푸르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라비아반도에 우거진 숲과 잔디밭이라니….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오만에는 물이 많다. 우람한 산세가 떡 버티고 섰으니 물이 모이고 강이 생긴다. 해양성기후라 강수량도 만만찮다.

오만 사람을 ‘오마니(Omani)’라 부른다. 낙천적인 오마니들은 어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을 준다. 푸른 나라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누구나 손을 흔들어주고 눈인사를 던진다. 갑자기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댄다 할지라도 역시 재빨리 웃으며 포즈를 취한다. 오마니는 대부분 명랑하다.


어시장에서 생선을 고르는 아이.
어시장에서 생선을 고르는 아이.

사막지대에서 즐기는 계곡 캠핑

예상과는 달리 무스카트에는 해변 럭셔리 리조트가 수두룩하다. 내가 묵었던 하얏트호텔(살면서 ‘하얏트(Hyatt)’가 아랍어인 줄 몰랐다)엔 인피니티 풀까지 갖춘 수영장도 있었다. 이곳에선 검은 복면 대신 비키니를 입은 투숙객들(물론 외국인이다)이 즐겁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오만에서 벌거벗은 몸을 볼 줄이야.

이른 아침에 짐을 챙겼다. 오마니들이 자랑하는 와디에 가기 위해서다. ‘와디(Wadi)’는 계곡이란 뜻이다. 사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사막 지대인 아라비아반도에서 계곡 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경험이다.

오만은 이처럼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일찍이 문명을 이뤘다. 농지가 많아 사람이 모여들었고, 식량과 향료·가축을 교역하는 무역항을 갖췄다.

와디에는 가족 단위로 물놀이를 나온 오마니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물에서 풍덩풍덩 뛰어놀고, 검은 옷과 흰 옷의 남녀가 숯불에 양고기를 구우며 놀고 있다. 사륜구동 차량의 행렬이 끝도 없다. 오만에도 오토캠핑 열풍이 불고 있었다.

산악 지대인 니즈와(Nizwa)는 꼭 공상과학(SF)영화 세트장처럼 생겼다. ‘앨터14(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황갈색 행성)’처럼 기이한 형상의 산봉우리와 황갈색 협곡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광선검을 든 제다이와 엑스윙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풀 없는 알프스’는 최대 시야 거리를 벗어난다. 털게처럼 뾰족뾰족한 땅의 파도가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사륜차를 이용해서 협곡을 누비는 즐거움은 대단하다. 그랜드캐니언보다 작지만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만만한 언덕에 올랐다. 기괴한 산세와 이를 받쳐주는 기암괴석 모두가 황갈색이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홍해 아덴만과 인도양까지 그 영향을 미친 술탄의 나라 오만에는 역사 유적도 많다. 16세기 포르투갈이 건설한 해안가 나칼(Nakhal) 요새는 어릴 적 동화 속 성벽처럼 요철(凹凸)로 된 성곽이 빙 두르고 있다. 물론 황갈색이다. 예전에는 꽤 위엄 있는 군사 요새였겠지만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다. 지정학적 이점이 뚜렷한 오만에는 이러한 해안 요새들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어시장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동남부 해안 지역 퀴리얏(Quriyyat)과 디밥(Dibab) 사이 해변에는 전통 어시장이 열린다. 파시처럼 배가 들어오면 펼쳤다 사라진다. 특별한 접안 시설 없이 모래톱에 배를 대놓고 생선을 내리는 어부와 왁자지껄 경매하는 광경이 낯설고도 생동감 있다. 아라비아반도 끄트머리를 대대로 지켜온 오마니의 전통적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와서 오만과 편견 사이를 오갔다. ‘직접 보고 느끼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였다. 많은 것을 깨고 또 새로운 것을 채워넣었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TIP 여행수첩

이웃의 ‘부자 나라’와는 달리 오만의 GDP는 2만달러가 채 안 된다. 하지만 국민적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오만은 ‘페르시아만의 관문’이라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다수의 서구 열강이 눈독을 들였다.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약 150년간 식민 통치를 받다 17세기에 자력으로 독립한 후 페르시아만 연안을 비롯해 파키스탄과 인도양 잔지바르까지 진출하는 등 중동의 맹주로서 위세를 떨쳤다.

이후 1960년대 유전이 개발되면서 다시 한번 국가적 부흥기를 맞고 있다. 오만은 관광 목적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이슬람의 윤리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술탄 통치국(Sultanate)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을 경유해서 오만 무스카트를 가는 TK774 편을 매일 취항한다.(인천~이스탄불 주 11편) 터키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4성급 항공사로, 12월 현재 336대의 항공기(여객.화물)를 보유하고 전세계 292개 이상의 도시로 취항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요지인 이스탄불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엔 북중남미 노선까지 확대해 세계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