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곱게 물든 보라카이 해변에서 여행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 : 이우석>
노을이 곱게 물든 보라카이 해변에서 여행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 : 이우석>

어느 여행 매체든 ‘세계 몇대 해변’을 꼽을 때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보라카이(Boracay)다. 필리핀 중남부 내해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해변은 이름조차 멋지다. 듣기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뛰는 어감인가.

필리핀이 보유한 7000여개 섬 중 세계에 가장 먼저 이름을 알렸다. ‘세계 3대 해변’ ‘세계 3대 노을 포인트’ 등의 극찬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사실 필리핀은 한국인들로부터 과소평가되고 있는 지역이다. 비행기를 타고 불과 서너시간, 너무도 가까운 탓이다. 주 4일제 근무에 연간 30일 휴가를 즐기는 세계 최고 선진 휴가문화를 영위하는 유럽인들이 늘 궁금해하고 동경하는 곳이 바로 북태평양 필리핀이며 그중에서도 보라카이다. 나는 마침 필리핀과 가까운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이곳 근사한 해변은 연인들에게도 좋지만 가족 휴가지로도 안성맞춤이다. 보라카이에는 매일 ‘3막4장’의 멋진 무대가 펼쳐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칸쿤과 플로리다의 장점이 하나로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버티고 선 ‘밀키 블루’의 바닷물에 몸을 담근다. 온천지가 붉게 물드는 저녁에는 그저 해변을 거니는 것으로도 모든 게 해결된다. 명동만큼이나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해변 클럽과 바를 순회하는 뜨거운 밤은 보라카이에서의 하루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핫’한 나이트클럽이나 라운지 바의 이름에 즐겨 차용된 덕에 보라카이는 무척 익숙한 지명이다. 이러한 업종은 손님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 까닭에 코파카바나(브라질)와 산토리니(그리스) 등 누구나 항상 인정하는 ‘이상향’의 이름을 붙이게 마련이다.

작열하는 태평양의 햇볕, 길고 넓은 하얀 모래밭 그리고 새파란 하늘과 바다. 물론 이 정도는 사실 북·남위 30도 사이 벨트에는 널렸다. 그중에서도 보라카이가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 과분할 정도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평소 태국 카오산 로드의 자유로움과 멕시코 칸쿤의 아름다운 해변, 플로리다의 화려함까지 함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곳이 바로 보라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에서 보면 딱 ‘아령’처럼 생긴 보라카이 해변이 막상 내려서 보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가장 유명한 화이트샌드 비치는 약 4㎞다. 그야말로 명사십리(明沙十里)다. 모두 합하면 약 7㎞에 이른다고 한다. 모래밭은 넓기도 해서 호텔들이 거의 해변에 지어진 셈이다.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보라카이의 어시장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보라카이의 어시장

각양각색 업소 구경하는 재미 ‘쏠쏠’

호텔 문을 나서면 한참 모랫길을 걸어야 물에 닿는다. 산호가 부서져 생겨난 모래는 너무도 보슬보슬 곱다. 간질간질 느낌도 좋다.

낮에는 이 길고 넓은 해변에 그저 누워있거나, 수영을 즐긴다. 꽤 멀리까지 나가도 물이 허리춤밖에 오지 않아 수영이라기보다는 그저 더위를 식히면 된다. 비치 선베드에 누워 매혹적인 물빛을 감상하며 스마트폰으로 작금의 한국 정치상황을 읽고 있노라면 굉장한 권력자라도 된 기분이다.

눈앞에는 정말 누가 일부러 그려넣은 듯 근사한 세일링 요트들이 돌아다니고,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은 곳에는 색색의 낙하산이 떠있다. 보라카이의 기나긴 해변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장식인 셈이다.

더욱 신나는 일은 밤이 되면 이 해변에 멋진 비치 바와 클럽, 레스토랑이 펼쳐진다는 것. 야자수에 천막을 묶어 천장을 가린 해변 바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면 어떤 영화 속 주인공도 부럽지않다.

밤의 해변은 언제나 북적인다. 게다가 이 해변을 채운 이들 중 반 이상은 휴가객이다. 그들이 일을 할 때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표정도 밝고 한없이 관용적이다.

식어가는 모래를 밟으며 식사할 곳을 찾는 일도 즐겁다. 길가에는 식당의 종업원들이 늘어서서 근사한 요리를 그려넣은 메뉴판을 들이민다. 레스토랑과 기념품숍, 바와 클럽, 마사지숍 등 각양각색의 업소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변의 가게라 해서 대천 해수욕장 포장마차촌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비싼 크레파스 세트와 같은 여러 색 술병을 죽 세워놓은 칵테일 바에는 바텐더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만들고 있고, 고급스럽고 모던한 천막을 친 클럽에선 최신 하우스 뮤직이 흘러나온다. 웃통을 벗어젖힌 남자 둘이 가엾게도 길가의 비키니 차림 여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식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 바도 있다.

보라카이의 리조트 지역은 발라바그 비치의 스테이션 1·2·3을 중심으로 불라보그, 푸카셸 비치 등이 있다. 스테이션 2를 중심으로 한 이 번화한 길은 해변의 길이와 똑같다. 며칠을 똑같이 지나다녀도 질리지 않는다.

바를 찾았다. 그나마 호텔과 가깝고 한적해 보였다. 별이 총총 박힌 하늘 아래 파도 소리가 재잘대는 해변에 다 젖은 소파를 내놓고 칵테일과 맥주를 파는 곳이다. 맥주병을 놓고 앉아 있자니 비록 습하지만 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서울의 한파는 남의 얘기다. 한겨울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바를 순례하는 것은 축복에 가깝다. 이렇게 밤은 익어가고, 이제 몇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동쪽 하늘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다시 뜨겠지.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정보

국가 정보=한국보다는 1시간 빠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어가 잘 통용되는 국가다. 전기는 220V를 사용하지만 콘센트 모양은 ‘11’자다. 국제선 출국 시 공항이용료(550페소)를 현금으로 준비해야 한다. 현지 화폐는 필리핀 페소(Peso)를 사용하며 1페소는 약 27원 정도이지만 수수료를 포함하면 30원으로 계산하는 게 편하다.
항공편=필리핀 항공이 인천~보라카이(칼리보) 노선을 취항한다. 인천에서 칼리보까지는 약 4시간 30분. 공항에서 보라카이 섬을 잇는 카티클란 항구까지 차를 타고 1시간 30분쯤 이동해야 한다. 카티클란에도 공항이 있지만 활주로가 짧아서 소형 기종만 이착륙이 가능하다.
보라카이 시티투어=보라카이 섬의 다운타운인 디몰(D’mall)을 중심으로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상점이 있다. 스테이크 맛집으로 소문난 발할라(Valhala), 그리스식 해물요리집 시마(Cima) 등도 모두 이곳에 몰려있다. 스테이션 3 부근에 위치한 루나(Luna) 마사지숍도 인기를 모으는 곳이다. 와인을 베이스로 한 미용과 피로회복 마사지를 진행한다.
리조트=보라카이 리젠시 리조트는 디몰과 가깝고 해변의 중심부에 위치해 여러 곳으로 이동이 편리하다. 300여개의 객실에 조용하고 쾌적한 야외 수영장이 있어 가족 단위라면 바다에서 오전을, 수영장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도 괜찮다. 해변과 바로 이어지는 시브리즈와 크리스티나 등 6개의 맛있는 레스토랑을 갖췄다. 추가 정보는 필리핀관광청 한국지사(www.7107.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