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적인 술자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홀로 남겨진 나는 도쿄의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일본은 언제나 낯설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의례적인 술자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홀로 남겨진 나는 도쿄의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일본은 언제나 낯설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날씨는 더웠고 호텔은 좁았다.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 직원은 확답을 미룬 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왔고 내 고단한 변명은 가련해졌다. 몸은 지쳐갔고 마음은 슬퍼졌다. 의례적인 접대 술자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홀로 남겨진 나는 도쿄의 밤거리를 걸어다녔다.

편의점에 들어가 싸구려 시가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곤 마치 할 일 없이 여행 온 부유한 나그네처럼 그렇게 거리를 쏘다녔다. 거리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일본은 언제나 낯설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간판과 네온사인엔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하고, 친구들을 닮은 행인들과는 단 한 마디의 의사소통도 할 수 없다. 철저히 외부인들을 고립시키는 이곳은 섬이다. 알아보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진 나는 시부야에서 하라주쿠로, 시모키타자와로 끊임없이 걸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룻밤 만에 해치우려는, 개학을 앞둔 조급한 학생처럼.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일본인들

꽤 오래전 처음 방문한 일본은 이상한 나라였다. 지하철과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앞에 책 한 권씩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본인들은 독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오래된 독서 습관은 누구를 쳐다보지도,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도 원치 않았기에 생긴 풍경이었다. 눈앞에 책이라는 하나의 벽을 쳐놓았던 것이다.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 테이블과의 차단막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거세된 사람들 같다. 자신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유배시켜 철저히 혼자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나도 남을 쳐다보지 않기에 남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의도된 무관심은 자유를 선물한다. 하고 싶은 것을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유. 그래서 일본의 거리엔 유행이 보이지 않는다. 부츠컷이라 불리는 나팔바지가 돌아다니고, 그 곁엔 모즈 스타일의 슈트를 입은 남자가 있다. 모즈(mods)란 모던즈(moderns)의 약자로 ‘현대인, 사상이나 취미가 새로운 사람’을 의미한다. 레게 파마와 치렁거리는 의상으로 왕년에 히피였음을 증명하는 중년들이 있다면, 1950년대 제임스 딘처럼 포마드로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넘긴 10대도 있다. 반바지의 젊은이들 사이로 기모노 입은 소녀가 종종 걸음을 옮긴다. 어디 사람뿐인가. 거리도, 풍경도 모든 것이 제멋대로다.

최첨단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만 지하철 표는 아직도 종이에 인쇄된다.

거리엔 올드 모빌들이, 서점엔 중고 책들이 가득하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빌딩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옛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것이 공존하며 뒤섞인다. 한때 일본 여성들의 명품 선호에 대한 조롱 섞인 기사가 있었다.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 24개월, 36개월 할부를 갚는 그녀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 가진 편협함이자 몰이해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2년, 3년에 걸쳐 자신이 원했던 물건 하나의 가격을 지불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한다. 어쩌면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르기에. 계절마다, 장소와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가방을 들고 나가지 않는다. 그건 그녀들의 스타일이지 유행의 눈치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고른 자신만의 세계인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듣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사운드트랙이다.

너무도 옷을 멋지게 입었던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속에서 그는 말한다. “그녀는 마치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사랑은 죽음이란 이름으로 허무하게 사라지고, 남겨진 자는 그 빈 공간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다.

남자는 아내가 남긴 731벌의 옷을 입어주는 조건으로 비서를 구한다. 키 165, 신발 사이즈 230, 옷 사이즈 2.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남자의 아내가 남긴 옷을 보며 흐느낀다. 옷들이 정말 아름다웠기에. 그 옷들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게임기의 캐릭터를 흉내 낸 것이 분명한, 짙은 화장과 물들인 머리, 가죽 레깅스의 여성들이 지나간다. 하루의 피로가 그들의 다양한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게임기의 캐릭터를 흉내 낸 것이 분명한, 짙은 화장과 물들인 머리, 가죽 레깅스의 여성들이 지나간다. 하루의 피로가 그들의 다양한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죽은 아내 옷 입어줄 여비서 구해

흑백 톤의 정갈한 화면 속에서 울려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소리는 비교 불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옷들을 남기고 떠난 아내를 남자는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옷을 입어줄 대역을 찾는다. 입어줄 사람이 없는 옷은 무생물에 불과하다. 남자는 죽어버린 옷을 다시 살려내 자신의 외로움을 치유해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나 누군가가 남긴 옷은 오직 그 사람의 것일 뿐, 다른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사랑의 유일성에 대한, 그 사랑이 떠난 뒤의 절대적인 고독에 대한, 너무도 멋진 비유다. 세상엔 비교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어떤 도시를 떠올려본다. 신문과 TV엔 연일 떠들썩한 그리고 살벌한 뉴스들이 담긴다. 무섭다. 우린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누군가 술자리의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외롭기 때문이라고. 거리를 나가보면 아름답지만 모두가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옷들을 입고 있다. 필사적이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강남의 영화를 상징했던 압구정동엔 전당포와 중고 명품숍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유행에 맞추기 위해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꾸기 위해서다. 거리의 풍경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면 공격하고 몰아낸다. 태어난 지역이 다르면 타협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물으며 무리를 지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 똑같아지려 한다. 무리에 속하려 한다. 나는 없고 우리라는 공허한 단어만이 남는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리듬을 잊은 채 생각 없이 뒤따라갔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렸다. 유행만을 좇은 결과다. 모두가 같아졌기에 대체 불가능의 나는 사라졌다. 내가 없는 자리에 비슷한 누군가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똑같아진 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불안하고, 아직 그곳에 속하지 못한 자는 다르다는 자괴감에 분노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절망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유행은 천박하다. 그래서 그것은 6개월마다 바뀐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남을 쳐다보지 않는 것,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래서 나만의 것을 가질 수 있는 것. 다르다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은 것.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 작은 기회는 그것에 있을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