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 입는 CEO인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CEO(왼쪽)와 잭 도시 트위터 CEO의 희비는 엇갈렸다. 패션 업계와 협력해 인스타그램을 성장시킨 시스트롬과 달리 도시는 회사 매각이 불투명해지며 사퇴 위기를 맞았다. <사진 : 블룸버그>
옷 잘 입는 CEO인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CEO(왼쪽)와 잭 도시 트위터 CEO의 희비는 엇갈렸다. 패션 업계와 협력해 인스타그램을 성장시킨 시스트롬과 달리 도시는 회사 매각이 불투명해지며 사퇴 위기를 맞았다. <사진 : 블룸버그>

‘육아 휴직에서 복직하는 첫날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려진 마크 저커버그의 옷장 사진에는 똑같은 회색 반팔 티셔츠와 후디가 줄지어 걸려 있다. ‘알파고 대전’으로 방한 시 연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던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늘 헝클어진 머리에 회색 후디 패션을 고수한다.

이렇게 슈트와 넥타이로부터 해방된 자유분방한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패션은 ‘긱 시크(geek chic·컴퓨터와 기술 마니아들의 괴짜 패션)’란 패션용어까지 탄생시키며,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억만장자 패션이 됐다.

그런데 괴짜들 사이에 눈에 튀는 패셔니스타들이 등장했다. 말끔한 슬림 슈트룩에 준수한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은 이들은 트위터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잭 도시와 인스타그램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케빈 시스트롬이다.

잭 도시는 업무 중에 노타이의 슈트룩, 평상시에는 몸에 꼭 맞는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다. 특히 셔츠 깃을 뒤집어 올려 입는 독특한 스타일링 방식이 유명하다. 그에 비해 케빈 시스트롬의 슈트룩은 더욱 클래식하다. 마치 유명 남성지 화보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 타이를 즐겨 매며, 타이를 매지 않을 때는 포켓스퀘어(pocket square·슈트 재킷 주머니에 꼽는 장식용 수건)를 잊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패셔니스타들의 엇갈린 운명

그러나 이들 옷 잘 입는 SNS 제왕의 희비는 엇갈렸다. 지난 6월 인스타그램은 월간 충성 사용자수 5억명을 넘겼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하루에 공유되는 사진은 9500만장, 매일 체크되는 ‘좋아요’ 수는 35억개를 기록했다.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에 넘긴 1조원이 헐값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눈부신 성장이다.

그러나 트위터의 재기를 위해 CEO로 복귀한 잭 도시는 생애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 회사 매각이 불투명해지며 트위터 CEO를 사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거론된 것이다.

잭 도시는 옷을 잘 입는 것에 그쳤지만, 케빈 시스트롬은 그와 달랐다. 옷 입기를 좋아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고급 패션을 사랑하는 패션 애호가로서, 발 빠르게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패션 미디어들과 협업해갔다. 사진 포스팅의 수준을 유지하며 유명인, 패션 디자이너, 블로거들을 인스타그램 사용자로 확보해, 소수만 참석할 수 있는 패션쇼의 순간들, 쇼장 안팎의 패셔니스타의 모습을 대중과 공유하게 했다. 이렇게 패션계의 높은 장벽을 허문 공로를 인정받아, 인스타그램은 이례적으로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의 올해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클래식 수트 스타일로 패션 감각을 자랑한 시스트롬 덕분에 마크 저커버그와 세르게이 브린의 후디 패션은 실리콘밸리의 한 물 간 억망장자 패션이 됐다. <사진 : 블룸버그>
클래식 수트 스타일로 패션 감각을 자랑한 시스트롬 덕분에 마크 저커버그와 세르게이 브린의 후디 패션은 실리콘밸리의 한 물 간 억망장자 패션이 됐다. <사진 : 블룸버그>

테일러링·니트 타이·가벼운 소재 선호

또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 루이뷔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게스키에르, 세계 최고 럭셔리 그룹 LVMH의 상속녀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 등을 만나 패션 산업의 발전을 위한 협력방안을 긴밀하게 의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케빈 시스트롬의 노력은 놀랄 만한 인스타그램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인스타그램의 올해 모바일 광고 매출은 5억9500만달러(약 7125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케빈 시스트롬은 스스로 스타급의 ‘패션 인스타그래머’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의 사랑을 받을 만큼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한다. 클래식을 추구하지만, 보수적인 은행가나 기업가처럼 보이지 않도록 디테일과 소재에 신경 쓰는 그만의 패션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체에 맞춘 부드러운 형태의 슈트를 선호해 이탈리아의 명품 슈트 브리오니(Brioni)와 볼리올리(Boglioli)를 즐겨 입는다. 노타이룩에서 셔츠는 반드시 ‘버튼-다운 셔츠(button-down shirts·칼라 끝을 단추로 채우는 셔츠)’를 입는다. 해밀턴(Hamilton)에서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셔츠를 맞춤 제작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일반적인 실크 타이를 매지 않는다. 그의 옷장은 여러 가지 컬러의 니트 타이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초창기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샤르베(Charvet)의 실크 니트 타이를 가장 아끼는 타이로 손꼽는다.

마지막으로, 캐주얼룩에서 그는 클래식 스타일과 함께 소재의 가벼움을 중요시한다. 무겁고 빳빳한 생지 데님(가공하지 않은 청색 면직물)은 피하고, 샌프란시스코 날씨에 꼭 맞는 ‘시빌리언네어(Civilianaire)’의 경량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또한 랑방(Lanvin) 스니커즈 마니아로 유명한데, 편안함과 가벼움, 캐주얼과 슈트에 모두 어울리는 디자인 때문에 랑방 스니커즈에 빠졌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존 F 케네디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타일에서 클래식 영감을 받고, 인스타그램 ‘Rainier Pazcoguin@thedressedches(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자신의 ‘브이존’만을 촬영해 올리는 스타 인스타그래머)’의 포스팅과 톰 브라운의 인스타그램 등에서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얻는다.

더 이상, 막 자다가 일어난 듯한 머리 스타일과 티셔츠, 청바지를 대충 걸쳐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동네 수퍼마켓 외출’ 차림을 ‘실리콘밸리 패션’이라 정의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실리콘밸리의 스타일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 변화의 물결 선두에는 인스타그램이 있다.


▒ 김의향
보그 코리아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디렉터, 콘셉트&콘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 (K_note)’ 크리에이터·스토리텔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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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디(hoodi) 목 부근에 모자가 달리고 배 주변에 주머니가 있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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