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원근>
<일러스트 : 양원근>

돌멩이를 던지면 땅에 가까워질수록 빨라진다. 지구 중력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도 처음에는 표가 잘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빠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수치로 밝힐 수는 없지만 임의의 숫자를 사용하여 설명해보려 한다.

70대 초반에 치매에 걸려 80대 초중반에 운명한 환자 A씨가 있다. A씨는 60대 중반쯤 기억력이 약 10% 정도 떨어졌다. 이때까지를 정상(임상적 정상)이라 하고, 이 시점부터 조금씩 계속 나빠져 70대 초반 기억력이 40% 떨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경도인지장애, 이후에 운명할 때까지 10년을 치매라 칭한다.


자꾸 깜빡하면 뇌세포 20% 파괴 상태

A씨는 50대 후반부터 뇌가 조금씩 나빠지는 걸 느꼈다.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건망증이 심해져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일이 늘었다.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대화할 때 목적어를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이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화를 참지 못해 배우자를 힘들게 했고, 친구를 만나도 재미가 없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줄었다. 밤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고, 머리는 편두통으로 안개가 낀 듯 늘 맑지 않았다. 하지만 A씨는 이런 변화에도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지냈다. 이미 뇌세포가 상당히 소실된 상태였지만 방치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년 지나지 않아 A씨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본인 스스로 자꾸 깜빡한다고 느끼는 상태를 ‘주관적 경도인지장애(기억력 10% 미만 감소)’라고 하고, 더 진행돼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기억력이 나빠진 것을 알게 되는 때를 ‘객관적 경도인지장애(기억력 약 30% 감소)’ 상태라고 한다.

기억력이 40% 떨어졌을 때부터 치매라고 진단한다. 이때는 뇌세포 60%가 파괴되고 뇌의 전체적 역량은 70% 정도 소실된 상태다. 하지만 뇌의 역량이 70%까지 소실된다 해도 뇌의 예비능력(정상 생활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능력)이 유지되는 한 ‘치매’라고 하지 않는다.

기억력이 10% 떨어진 경도인지장애가 시작되는 시점에는 뇌세포가 20% 정도 파괴된 상태다. 나머지 80% 세포 중 40~50%의 세포는 병적(세포 내 타우단백의 축적)인 상태이며, 20~30%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 찌꺼기에 시달림을 받는 상태다. 건강한 뇌세포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뇌 건강은 한 번 악화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A씨는 뇌가 보내는 경고를 무시했다가 변을 당했다. 뇌가 보내는 경고를 간과하지 말고 뇌 건강에 사전 유의하는 것이 치매로 가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의사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