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북부 해안의 관광명소인 피셔맨스 와프. <사진 : 캘리포니아 관광청>
샌프란시스코 북부 해안의 관광명소인 피셔맨스 와프. <사진 : 캘리포니아 관광청>

미국 여행이란 어쩌면 영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일 것이다. 실제로 가보지 못한 지역도 꽤 친숙하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눈에 익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프랭크 블리트 경위(스티브 맥퀸 분)가 차를 몰고 질주하던 샌프란시스코의 롤러코스터 언덕은 ‘블리트(1968년)’에서 봤다. 왠지 나카토미 빌딩이 있을 것 같은 로스앤젤레스 시가는 ‘다이하드(1988년)’의 존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 분)와 함께 느껴봤다.

빈번히 등장하는 라스베이거스도 그렇지만 실은 캘리포니아가 가장 익숙하다. 특히 렌터카를 빌려 뜨거운 햇살 아래 대평원을 가르는 고속도로와 태평양에 면한 해안도로를 달리는 가장 ‘미국적’인 느낌은 캘리포니아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악마의 감옥 앨커트래즈 인기

그 덕인지 몇해 전부터 여행지로 미 서부가 부상하고 있다. 최근 MBC 라디오가 여행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2개 분야(좋았던 해외 여행지,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에서 미국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혔다. 미국에서도 서부 캘리포니아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지역이다. 가주(加州·캘리포니아)와 나성(羅城·LA), 상항(桑港·샌프란시스코)이라는 한자 이름도 가졌다. 캘리포니아는 여행 목적지로도 매력이 넘쳐난다. 멋진 자연 경관과 그에 걸맞은 좋은 날씨,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호텔이 있다.

신대륙과 신기술이 차례로 삶에 접목되면서 그동안 많은 이들이 캘리포니아를 노래했고, 필름에 담았다. 추운 겨울이 있는 곳, 우울한 회색 하늘 아래 사는 이들은 ‘만약 캘리포니아에 있었다면(The Mamas and The Papas)’을 읆조리기 마련이다. 상상만 해도 따뜻하고 활기찬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다. 이곳을 여행한다면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연인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체험할 수 있다. 물론 함께 가는 이에 따라 범죄 스릴러물이나, 퀴어 무비, SF블록버스터(?)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다.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을 두고 왔다(Tony Bennett)’는 곳, 샌프란시스코. 불행하게도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머리에 꽃을 꽂고 가야 한다(Scott Mckenzie)’는 그곳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하는 미서부 로드트립을 즐겼다. 그전에 선글라스를 샀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선캡을 쓰고 버스를 타는 대신 근사한 자동차를 빌렸다. 영화에서 익숙한 공간, 캘리포니아에서 한편의 로드무비 같은 여행을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몬터레이, 베이커스필드, 데스밸리를 거쳐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여정도 짰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최성원의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처럼, 토니 베닛은 ‘내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네(I left my heart in San Fancisco)’를 노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와 짙은 아침 안개. 그리고 이를 죄다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을 찬양했다. 출렁대는 바다를 향한 슬로프처럼 높은 언덕이 내리꽂히는 것이 샌프란시스코의 지형이다.

눈부신 색을 자랑하는 바다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자랑거리다. 감호 시설로 악명높았던 ‘더 록’ 앨커트래즈 섬이 가운데 떡하니 박혀 있는 샌프란시스코 만 양옆에는 두개의 명물 다리가 있다. 그 유명한 붉은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하얀 베이브리지다.

그 중에서도 금문교는 미국인 누구나 샌프란시스코 하면 그 이름을 떠올릴 만큼 선명한 도시의 아이콘이다. 1937년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로 유명해졌고 그 덕분에 금문교(金門橋)라는 한자어 이름도 얻었다. 금문교란 이름은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의 ‘골드러시’를 일으킨 도시란 역사에서 유래한다.

184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금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수많은 이주민들이 몰려왔다. 중국인들이 물고기를 잡던 작은 항구가 갑자기 서부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 했나? 금을 찾아온 이들은 이 도시에 금보다 값진 다양성과 관용을 남겼다. 그리고 여러 문화가 융합된 맛있는 음식까지. 덕분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도시가 됐다. 금문교가 상징하는 금맥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택시를 타고 금문교를 지나치긴 요금도 시간도 아깝다. 금문교의 멋진 붉은 주탑 대신 미터기만 바라봐야 한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붉은 철제 다리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금문교 라이딩을 포기할 순 없다.

가장 번화한 피어 39와 피셔맨스 와프 일대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부두 일대를 돌아본 뒤 금문교를 건너면 소살리토다. 멋진 레스토랑이 가득한 이곳에서 페리로 샌프란시스코 만을 둘러볼 수 있다.


고객 줄지어선 부두의 햄버거집

소살리토에는 굉장히 유명한 햄버거집이 있는데 얼마나 줄을 길게 늘여 세우는지 대부분 포장해서 부두에서 먹고 있다. 빵을 노리는 펠리컨 몰래 베어문 햄버거의 맛, 역시 최고라 칭할 만하다. 육즙을 가득 품은 패티와 촉촉한 빵이 일품이다. 페리를 타고 지나며 보는 앨커트래즈는 정말 잔인한 곳이다.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한가운데 가둬놓았으니 꽁꽁 묶인 수인(囚人)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울까. 에어컨이 없는 두바이의 감옥처럼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테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며 많은 아쉬움이 든다. 짧은 일정 속 쌓인 여러 추억이 아쉬움으로 변해 선명하게 가슴에 남는다. 크램 차우더처럼 뜨겁고 던전크랩처럼 매력으로 꽉꽉 들어찼다. 나 역시 샌프란시스코에 마음을 남겨두고 왔다. 토니 베넷처럼.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Plus Point

샌프란시스코 명물 케이블카

샌프란시스코 시내 곳곳을 누비는 케이블카. <사진 : 캘리포니아 관광청>
샌프란시스코 시내 곳곳을 누비는 케이블카. <사진 : 캘리포니아 관광청>

케이블카 하면 흔히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가는 삭도(索道)를 말하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는 전혀 다르다. 지금껏 남아 있는 총 3개 노선에 땡땡 트램(전차)처럼 생긴 두 량짜리 무동력 캐빈이 도로를 다니는데 지하에 이를 끄는 케이블이 매설돼 있다.

1873년에 생겨난 케이블카는 한때 언덕에 사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생명줄 같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운송수단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이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명물 시설이 됐다. 도심 중앙으로부터 까마득한 언덕을 오르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관광 시설이 됐다. 느릿한 케이블카가 지나면 중간에서 뛰어와 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내렸다가 다시 타고…. 언덕 지형의 불리함을 최고의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 일등 공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