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연설 표절 논란을 일으킨 공화당 전당대회의 멜라니아 트럼프. 세르비아계 영국 디자이너 록산다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었다. <사진 : 블룸버그>
미셸 오바마 연설 표절 논란을 일으킨 공화당 전당대회의 멜라니아 트럼프. 세르비아계 영국 디자이너 록산다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진행됐던 공화당 전당대회. 캠페인 기간 내내 말을 아꼈던 멜라니아 트럼프가 남편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 연설을 위해 처음 연단에 오른 날인 만큼,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하루도 되지 않아 멜라니아의 연설은 미셸 오바마 연설을 일부 표절했다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의 연설 드레스는 순식간에 완판됐다. 몇몇 패션 언론들은 연설은 표절이었는지 몰라도, ‘패션만큼은 멜라니아 그녀만의 스타일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멜라니아가 선택한 연설 드레스는 파격적이었다. 지난 대통령 후보들의 부인들과 달리 미국계 디자이너가 아닌 세르비아계 출신의 영국 디자이너 록산다의 의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는 이 드레스를 유명 온라인 럭셔리 쇼핑몰 ‘네타포르테(Net-a-porte.com)’에서 직접 구입했다고 하는데, 당시 판매가는 2190달러(약 250만원)다. 게다가 소매 밑단이 부풀려진 독특한 장식, 모델 출신다운 세련된 워킹, 46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조각 몸매와 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새하얀 드레스는 전당대회를 미인대회나 할리우드 시상식 무대로 순간 착각하게 만들었다. 지난 8년간, 미셸 오바마가 이뤄온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며 대중적인 스타일에 반하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멜라니아의 스타일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뭘까.


멜라니아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화이트 컬러의 옷을 즐겨 입었다. <사진 : 블룸버그>
멜라니아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화이트 컬러의 옷을 즐겨 입었다. <사진 : 블룸버그>

각국 명품 브랜드 최신 옷 입어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구호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쳤다. ‘미국제일주의’를 내세운 그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시절을 이상적인 공화당 시절이라 언급했다. 당시 최초의 영화배우 출신 퍼스트레이디로 기록된 낸시 레이건의 패션은 언제나 이슈를 일으켰다. 옛 할리우드 스타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스타일을 즐겼고, 명품 디자이너와 주얼리 브랜드를 선호했다. ‘낸시 패션’ 또는 ‘레이건룩’이란 패션 용어를 탄생시킨 그녀의 패션은 백악관을 할리우드 레드카펫으로 만들었다는 비판과 퍼스트레이디룩을 우아하고 패셔너블하게 만들었다는 양극의 평을 받곤 했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낸시 레이건처럼 여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유명 패션지를 장식했던 모델 출신이다. 지난 대선 캠페인 동안 멜라니아는 롤랑 뮤레, 마이클 코어스, 발망, 구치, 랄프 로렌 등 미국 디자이너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나라 명품 브랜드의 최신 의상들을 입어왔다. 과거 낸시 레이건이 호사스럽지만 그녀만의 남다른 안목과 감각을 인정받았듯, 멜라니아 트럼프도 같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기묘하게도 멜라니아의 명품 패션은 미국 경제를 부흥시켰던 레이건 시절의 향수, 즉 미국인 사이에 강대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넘쳤고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있던 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에 남을 대반전이 이뤄진 날. 미국의 많은 패션 전문가들은 멜라니아가 대통령 당선 축하 패션으로 다시 ‘화이트’ 컬러를 선택할 것이라 예상했다. 선거 결과는 반전이었지만, 멜라니아 패션 컬러에 대한 예측은 적중했다.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수많은 화이트 의상들로 ‘백색의 패션쇼’를 펼쳐왔던 멜라니아는 랄프로렌의 3990달러(약 470만원)짜리 화이트 점프 슈트(jump suit·상하의가 연결된 팬츠 슈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디자인은 공화당 전당대회 때보다 더욱 대담해졌다. 과감하게 한쪽 어깨를 드러낸 ‘원 숄더(one shoulder)’에 멜라니아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더욱 강조하는 디자인이 할리우드 여배우의 레드카펫룩을 연상케 했다. 남편의 당선 축하를 위해 공화당 정치인 부인들이 선택했던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트럼프의 당선 축하 패션으로 한쪽 어깨를 드러낸, 랄프로렌의 점프 슈트를 선택했다. <사진 : 블룸버그>
멜라니아 트럼프는 트럼프의 당선 축하 패션으로 한쪽 어깨를 드러낸,
랄프로렌의 점프 슈트를 선택했다. <사진 : 블룸버그>

비정치적이며 과감한 패션 고수

미셸 오바마도 한쪽 어깨를 드러낸 디자인 등 과감한 디자인과 컬러, 패턴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미셸의 과감함은 멋스럽고 현대적이었으며, 방문 국가 디자이너의 의상을 선택하는 외교적 이유, 신인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등의 특별한 의미나 배려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멜라니아의 과감한 패션은 미셸과 달리 ‘비정치적’이며, 자신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 자체에 집중한다. 심지어 자신의 섹슈얼한 매력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는다. 대선 후보 토론에 구치의 1100달러(약 130만원)짜리 진한 핑크빛 ‘푸시 보우(pussy bow)’ 실크 블라우스를 입을 수 있는 퍼스트레이디 후보가 또 있을까.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는 멜라니아가 우리의 ‘새로운 낸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적어도 패션으로는 ‘낸시 패션’이나 ‘레이건룩’처럼, ‘멜라니아 패션’이나 ‘트럼프룩’이라는 패션 신조어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역대 백악관 ‘내조의 여왕’으로 손꼽히는 제2의 낸시 레이건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 김의향
보그 코리아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디렉터, 콘셉트&콘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 크리에이터·스토리텔러, 패션칼럼니스트


keyword

푸시 보우(pussy bow) 여성의 블라우스나 드레스 윗부분의 목둘레를 묶어 연출하는 리본. 블라우스의 칼라 등에 부착된 리본을 풍성한 모양으로 묶으면 단정하면서도 화사한 인상을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