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없는 시장이 존재할까? 적어도 최근의 미술시장은 그렇다. 지난 몇 년 간의 글로벌한 재정위기에도 미술시장의 경기는 후퇴를 몰랐다. 2013년에는 120억 달러가 넘는 낙찰액을 기록하며 아트 경매시장의 신기록을 세웠다.(이하 모든 수치는 Artprice.com, The Art Market in 2013 참조) 그 때문인지 슈퍼리치들의 관심이 점점 더 미술에 쏠리고 있다.

그들이 미술품을 컬렉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대미술은 자극적, 현학적, 이국적, 고전적 혹은 전위적으로 모든 구미를 다 갖추고 있어, 현대인들의 다양하고 까다로운 입맛을 유감없이 만족시킨다. 다음으로, 슈퍼리치들은 예술품을 컬렉션 함으로써 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상함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돈은 금고에 넣어두어야 하지만, 치열한 경매를 통해 얻어낸 이 예술적인 트로피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거실에 두고 감상할 수 있다. 근사한 차량도 구입하는 순간 중고차가 되지만, 예술품은 시간이 갈수록 귀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불황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정말 근사한 이유가 있다. 작품을 가까이 두고 감상하다 보면 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이 예술의 세계는 때로는 위로와 숭고함을 선사한다. 참되고 성실한 슈퍼리치 컬렉터는 바로 이 마지막 이유에 의해 탄생된다.

2013년 미술품 판매에서, 크리스티 옥션은 창업 247년 이래 최고액인 35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269년의 역사를 가진 소더비와의 전쟁에서 다시 한 번 승리했다. 두 경매회사는 일 년 내내 걸작의 경매권을 따내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한다. 걸작을 원하는 슈퍼리치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고의 작품들은 이미 미술관이나 슈퍼리치의 거실에 있기에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 세계를 뒤집고 다니면서 작품 소장자를 설득하여 어렵게 거장의 걸작 경매권을 따냈더라도, 추정가가 높은 작품이 팔리지 않는 경우에는 또 그만큼 타격이 크다. 소더비는 수석 경매사 토비어스 마이어(Tobias Meier)의 노력으로 지난해 11월 <실버 카 크래시>(Silver Car Crash, 1963년 작, 1억500만 달러)를 판매해 앤디 워홀 작품의 경매가를 자체 경신(更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와의 경쟁에서 수년째 밀리고 있는 소더비는 행동주의 투자자인 대니얼 톱에 의해 살을 깎아내는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놀랍게도 소더비의 간판 경매사인 토비어스 마이어였다. 그는 소더비에서 퇴사했다.

1. 치바이스 2. 중국의 앤디워홀로 불린 치바이스는 새우를 즐겨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3. 장다첸의 그림 가우도는 지난 2011년 소더비 주최로 홍콩에서 열린 특별 경매에서 약 264억원에 낙찰됐다. 4. 장다첸의 초은도
1. 치바이스
2. 중국의 앤디워홀로 불린 치바이스는 새우를 즐겨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3. 장다첸의 그림 가우도는 지난 2011년 소더비 주최로 홍콩에서 열린 특별 경매에서 약 264억원에 낙찰됐다.
4. 장다첸의 초은도

2013년 미술경매시장 매출액 중국 1위
2013년 국가별 미술경매시장의 매출액을 보면, 1위부터 5위는 중국 (41억 달러), 미국(40억 달러), 영국(21억 달러), 프랑스(5억4900만 달러) 그리고 독일(2억700만 달러) 순이다. 현대미술은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2만3000명(첫 경매 포함)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경매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8월6일 스위스 자산정보업체 웰스엑스(wealth-x)와 UBS은행이 내놓은 ‘2013년 슈퍼리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슈퍼리치(자산 3000만 달러 이상 보유자) 자산이 2017년에 유럽을 넘어서고, 2032년에는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부(富)의 지도는 세계 미술시장의 지도를 변화시키고 있기에 아시아 작가들의 선전(善戰)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최근 수년 동안의 불황으로 실험적인 작품은 줄고, 이미 확고하게 인정된 작가들의 작품 판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낙찰액 중 절반이 100명의 스타작가들 덕분이라는 것은 그만큼 스타작가들과 일반 작가들과의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추세는 옥션에서 뿐만 아니라 아트페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2013년도의 ‘최고 비싼 작가 10명’은 다음과 같다. 앤디 워홀(1928~1987, 미국),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스페인), 장다첸(1899~1983, 중국), 장-미셀 바스키아(1960~1983, 미국), 치바이스(1864~1957, 중국),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영국),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 독일),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 미국), 자오우키(1921~2013, 중국), 클로드 모네(1840~1926, 프랑스).

‘대중성’ 내세운 작가들이 강세
각국의 미술시장의 힘이 위의 결과에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신 국가별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명 중에, 중국 3명, 미국 3명,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작가가 각각 1명씩이다. 창조성을 중요시하는 예술인만큼 역시 새로운 화풍을 발견했거나 발전시킨 예술가들이 대세다.

비싼 작가 10명의 추세를 각각 살펴보면, 1960년대 미국의 팝(pop) 철학이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이상을 잘 드러내는 팝아트가 여전히 강세다. 팝 예술의 특징은 예술의 팝(pop), 즉 대중화다. 이제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즐기게 되었다. 앤디 워홀은 “대통령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우리나 똑같은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말하고, 대통령과 테일러와 콜라를 공산품처럼 실크 스크린으로 반복해 찍어내면서 유명해졌다. 또 다른 팝아트의 대가 리히텐슈타인 역시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인 뽀빠이, 미키마우스와 같은 만화의 장면을 소재로 삼아 유명해졌다. 밴-데이 점(Ban-Day Dot: 여러 개의 점으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인쇄업자 밴데이 이름에서 유래)의 활용이 작가의 정체성처럼 사용된 것과 만화를 회화에 도입한 것은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제프 쿤스나 무라카미 다카시와 같은 스타작가들에게서 만화적 요소를 빼면 존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서구 미술애호가들은 중국 현대미술의 급격한 발전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중화정신으로 무장된 중국 컬렉터들이 자국 작가들 작품을 구입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서구권 작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서구식으로 설명한다면, 치바이스는 중국의 앤디 워홀이다. 워홀이 품격 있는 예술을 팝아트화 했듯이, 치바이스는 품격 있는 중국의 고전화(古典畵)를 팝아트화 했다. 치바이스는 코카콜라 대신에 민간인들이나 그렸을 법한 ‘새우’처럼 단순한 소재를 애용했다.

이들 비싼 작가 10명의 공통점은 고정관념의 경계를 무너뜨리거나 흐릿하게 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서양화와 동양화의 경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회화, 조각 등 장르별로는 나누어도, 서양회화와 동양회화, 서양조각과 동양조각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현대 미술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심은록 미술비평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20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왕자의 새벽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리 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