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중국 현대미술은 겨우 서구 국제무대(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년 후, 중국현대미술은 전 세계 미술관들과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을 휩쓸고 있으며, 중국 미술시장은 세계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면서 세계 1위가 되었다. 이러한 중국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의 급성장을 전 세계 미술계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본다. 중국미술이 ‘서양화에 젊음을 준다’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서양화의 본질을 훼손한다’라는 부정적인 비판이 미술계를 양분한다. 어느 쪽이던 중국미술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몇 차례에 걸쳐 중국현대미술 작가들을 들여다볼 것이다.


- 스스로 고안한 문자를 쓴 설치작품 ‘천서(天書·A Book from the Sky)’에서 쉬빙은 “의미가 없이 문자가 가진 형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작가는 쉬빙(徐·Xu Bing)이다. 그는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작가이자 중국현대미술의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은 비중 있는 교육자이다. 쉬빙의 작품 가운데 영문알파벳을 한자의 형태로 융합한 ‘신영문서법(New English Calligraphy)’은 서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덕분에 그는 미국 문화계의 최고상인 맥아더 어워드(MacArthur Award)를 수상했다.

 
- ‘중국 현대미술의 미래’로 불리는 쉬빙.

“미술세계는 생태계와 같다”
그는 중국 최고 수준의 예술교육기관이자 유일한 국립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Central Academy of Fine Arts)의 부원장이다. 중앙미술학원은 쉬빙, 장샤오강, 위에민준, 리셴팅 등과 같은 중국현대미술을 이끄는 작가, 평론가, 미술계 주요인사들을 배출했고 현재 중국미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중국미술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술교육 방침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2011년 겨울, 중앙미술학원 인근 한 카페에서 쉬빙을 만났다.

쉬빙은 “미술세계는 ‘생태계’와 같다”고 정의한다. 중국과 미국의 생태계가 다르듯 미술적 생태계도 각 나라마다 다르다. 외부에서 새로운 종(種)이 생태계로 들어와도 이로 인해 생태계가 병들지 않고 제대로 수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수직적·수평적으로 균형 있고 건강해져야 한다. 우선 수직적인 균형을 위해 중앙미술학원은 오래된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을 탐색한다. 서구에서는 전자만 보고 보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중국 내부에서는 후자만 보고 지나치게 실험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수적인 것과 전위적인 것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기에 양쪽 모두 필요하다. 서구화에 급급해 한 나라 혹은 한 지역의 오래된 전통과 문화를 잊는다면 이는 한 희귀종이 멸종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중앙미술학원은 수직적 관계로 전통과 현대의 교류를 활성화시킨다면, 수평적 관계로는 사회와 예술가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쉬빙은 “과거의 미술교육은 주로 테크닉과 예술사적 지식을 전했다면 현재 우리(중앙미술학원)는 어떻게 작가들이 사회와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식을 확고히 심어준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이러한 숙고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두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작가는 사회를 향해 열려있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예술성을 잃지 않고 미술시장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이로써 예술가는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현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술의 영원하고 숭고한 성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9·11테러를 테마로 한 설치 작품 ‘먼지는 어디서 왔는가?(Where the dust itself?)’.

9·11테러 현장의 먼지로 작품 만들어
이러한 쉬빙의 철학은 교육 원칙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설치 작품 ‘먼지는 어디서 왔는가?(Where the dust itself?)’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21세기를 열었던 9·11테러가 배경이 된다.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쉬빙은 그라운드 제로의 먼지를 수집해 위의 작품을 만들었다. 먼지가 가득하게 쌓인 전시장에는 혜능(慧能, 638〜713)의 득법게(得法偈)의 한 문장이 적혀 있다. ‘As there is nothing for the first, Where the dust itself?(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는데, 먼지는 어디서 왔는가?).’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지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작품은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9·11테러는 영원히 존속할 것 같았던 빌딩을 단 몇 초 사이에 평지로 만든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가장 안정되고 자연스런 상태가 먼지이다. 더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쉬빙은 19세기와 20세기의 화두인 ‘물질’을 ‘선(禪)’과 연관시키며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선’은 철학적·종교적 이론이기보다는 소박한 생활방식이자 자연의 관점이다. 쉬빙은 맹목적인 물질 숭배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지만,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 물결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꼬를 돌리려고 한다. 현대사회와 미술의 본질적인 특징은 거의 모든 것이 경제와 함께 묶여간다는 점이다. 세계적 규모의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는 예술은 물론, 국제적 금융 및 경제 문제와의 관계도 깨닫게 한다.

중국 내부적으로 볼 때 미술시장은 중국 경제의 발전 및 사회 문제와 맞물려 있다. 중국정부가 미술시장을 고무하는 이유는 미술시장이 중국경제에 윤활유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국 예술가들이 중국을 비판하는 것도 일정한 한계까지는 허용하고 있다. 반면에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명성을 떨치는 중국 예술가들도 있다. 쉬빙은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 젊은 중국 예술가들이 전통과 개혁, 영원성과 현재성, 사회와 개인, 미술시장과 비판정신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중국현대미술의 미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심은록 미술 비평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20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왕자의 새벽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리 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

심은록 미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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