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켄스버그 남쪽 고갯길‘사니패스’는 사륜구동지프나 오토바이를 타고 험로를 즐기는 레저코스가 됐다. <사진 : 김형우>
드라켄스버그 남쪽 고갯길‘사니패스’는 사륜구동지프나 오토바이를 타고 험로를 즐기는 레저코스가 됐다. <사진 : 김형우>

‘아프리카 대륙의 알프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동부에 자리한 ‘드라켄스버그(Drakensberg)’ 산맥 일대다. ‘용의 산(Dragon Mountains)’이라는 뜻의 드라켄스버그는 고산지대의 서늘한 기후에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남아공의 명품 여행지로 통한다. 180km의 광활한 암벽지대엔 최고봉 샴페인캐슬(3377m)을 비롯해 3000m급 고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드라켄스버그는 토속 원주민이자 영화

‘부시맨’의 주인공인 산족의 오랜 터전으로, 그 2만 년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암벽화 등으로 남아 있다.

드라켄스버그 여행의 절정은 남아공 안의 작은 나라 ‘레소토’로 향하는 길, ‘사니패스’를 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차마고도’로도 불리는 ‘사니패스(Sani Pass)’는 해발 2000m를 넘는 험준한 오프로드를 따라 굽이굽이 절경이 이어진다.


해발 2000m 험준한 오프로드

남아공 남동부의 고산지대인 드라켄스버그 일원은 별칭만큼이나 시원 상큼하다.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대표적 여행지로 꼽힌다. 최고봉 샴페인캐슬, 악마의 이빨이라는 데블스투스(3022m), 대성당 모양의 캐시드럴피크(3004m) 등 광대한 암벽지대에 깎아지른 듯한 연봉을 품고 있다. 따라서 남아공의 부유층과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스위스풍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드라켄스버그 지역에는 스릴 만점의 여행코스가 있다. 산맥의 남쪽 고갯길 ‘사니패스’다. ‘사니’는 산(San)족인 부시맨을 이르는데, 사니패스는 남아공 안의 소국 레소토로 넘어가는 오프로드다. 남아공에서 레소토로 향하는 13개의 길 중 해발 3000m급의 드라켄스버그 산맥에 뚫린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레소토국의 바소토족이 나귀에 목화나 양모를 싣고 몇날 며칠 험로를 오르내리며 남아공 마을에서 생필품을 바꿔 가던 교역의 길로, 이를테면 아프리카의 ‘차마고도’인 셈이다.

광활한 초지를 지나 우카람바 드라켄즈버그 국립공원 계곡에 들어서면 해발 1577m 지점에 ‘굿 호프 스토어 루인스’라는 퇴락한 집터가 보인다. 1970년대까지 레소토와 남아공 사람들이 물물교환하던 장터다. 자동차 길이 뚫리며 당나귀 대신 차가 주요 운송을 맡게 되자 상점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나 사니패스에서는 지금도 당나귀에 물건을 싣고 다니는 보따리상들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움코마자나 강의 지류인 계곡은 희귀 동식물의 보고다. 드라켄즈버그 동굴 선사 암각화에 등장하는 야생의 일란드, 바분 등이 종종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능선에 피어 오른 야생화도 50여 종에, 마치 고목처럼 보이는 ‘올드 우드’ 등 보기 드문 식생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사륜구동 SUV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는 험로는 남아공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출국신고를 하고, 15㎞ 떨어진 레소토 국경마을 ‘사니 톱 빌리지’에서 레소토 입국신고를 하는 것으로 국경 통과 절차를 간단히 치른다.

양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사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라는 별칭이 있다. 이 구간은 험한 만큼 절경도 펼쳐져 지프, 모터사이클, 사륜오토바이 등 오프로드 코스를 즐기는 레포츠의 명소 구실을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본격 험로는 해발 2600m 지점부터 시작된다. 지프는 물론 사륜오토바이조차 엉금엉금 기어야 할 정도로 아찔하다. 천길 낭떠러지에는 가드레일도 없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드라켄스버그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드라켄스버그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백두산보다 높은 레소토 국경마을

사니패스의 정상부에 국경이 있다. 국경엔 흔한 철조망 대신 세워둔 돌멩이가 경계석 구실을 한다. 가이드가 검문소에서 여권에 도장을 받아오는 간단한 절차로 입국이 허용된다.

사니톱은 백두산 정상(2750m)보다 123m가 더 높다. 고개를 넘어서면 펼쳐지는 광활한 평원지대의 5월은 한겨울처럼 춥다. 아랫녘이 가을이다 보니 3000m급 고원지대는 삭풍이 몰아친다. 정상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샬레산장이 있다.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전망대 겸 휴게소로 커피와 식사, 숙박까지도 가능하다. 우드 데크 아래로 융단을 깔아놓은 듯 부드러운 산자락이 펼쳐지고 움코마자나 계곡과 구절양장 사니패스의 웅장한 풍광이 멋스럽게 이어진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굽이마다 생생한 이름도 달고 있다. 길이 취한 상태에서 내려다보듯 아찔하다는 위스키코너,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는 리버스코너, 자살언덕, 큰바람코너 등 과연 이름값 하는 고갯길이 죽 이어진다.

울퉁불퉁 낙석과 바위가 뒤섞인 터라 차는 내내 요동친다. 차량 보닛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기를 수차례. 안전벨트의 효용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시종 전신 근육은 긴장 상태다.

가이드 겸 드라이버는 거의 4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이 요동을 ‘아프리칸 마사지’라며 그럴싸한 유머를 날린다.

끝나지 않을 듯한 험로와의 사투. 그러나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며 장쾌한 고원의 풍광이 펼쳐진다. 사니패스의 정점, 레소토 땅이다. 아프리카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마루, 백두산 정상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해발 2873m 레소토공화국의 국경마을 ‘사니톱’이다.


▒ 김형우
성균관대 철학과, 관광경영학 박사, 한국관광기자협회장, 청와대관광정책자문위원, 서울시관광진흥자문위원 역임


TIP 여행 정보

가는길
인천공항에서 남아공을 향하는 직항 편이 없다. 아시아나항공으로 인천~홍콩으로 간 다음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남아프리카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인천~홍콩 3시간 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요하네스버그~북부 드라켄스버그 로열나탈 국립공원(차량으로 4~5시간).
북부 드라켄스버그~사니패스 입구 언더버그(차량으로 3~4시간).

레소토
남한 면적의 3분의 1 수준에 220만명가량이 살고 있다. 수도는 마세루.
국토가 섬처럼 남아공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어 레소토에 가려면 반드시 남아공을 거쳐야 한다. ‘바스톨란드 보호령’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다가 1966년 독립했다.
화폐는 레소토 로티(LSL). 남아공 화폐 란드와 1 대 1로 통용된다. 우리와 시차는 남아공-레소토 모두 7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