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박성원(왼쪽)이 캐디와 기뻐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 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박성원(왼쪽)이 캐디와 기뻐하고 있다.

세상 모든 골퍼가 기다리는 이가 있다. “그분이 오셨다”고 할 때의 ‘그분’이다. 그분이 오시면 퍼팅 라인이 손금 보듯 환하게 보이고 생각한 대로 공이 날아간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한마디로 신들린 듯 플레이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 그분이 오시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그래서 최근 그분이 오셨던 프로골퍼 두 명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그분이 오시는지 실마리라도 잡아보고 싶어서다.

지난 6월 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총상금 6억원)에서 우승한 선수는 데뷔 2년차인 박성원(23)이었다. 여자골프의 대세 박성현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언제 대회에 나갈 수 있는지조차 기약할 수 없던 무명 선수였다.

그는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만 8개를 잡아 자신의 생애 최고 베스트 스코어인 64타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2위와 5타차였다. 골프장을 수시로 휘도는 바람과 까다로운 한라산 브레이크로 유명한 서귀포시 롯데 스카이힐 제주 골프장에서다. 그는 투어 대회 가운데 상당수 대회는 출전할 수 없는 조건부 출전권자여서 예선을 거쳐 간신히 출전권을 땄다. KLPGA 투어가 틀을 갖춘 이후 예선을 거쳐 우승한 첫 선수다.


욕심·긴장 버리니 공 딱딱 잘 맞아

그에게는 여러 가지 완벽한 조건이 갖춰졌다. 우선 좋은 컨디션으로 라운드를 맞이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밤 11시쯤 잠이 들어 오전 8시쯤 일어났으니 9시간이나 잤다”고 했다. 마침 같은 프로에게 배우고 많이 놀러 다닌 절친 정다희 프로와 함께 쳤다. 동반자도 좋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날 버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온 시켜서 파만 하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데 캐디가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는 연습 때까지 제대로 샷이 맞지 않아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늘 캐디를 맡던 아버지 대신 가방을 멘 제주도 출신 레슨 프로 허남준(45)씨가 흔들리던 마음을 잡아줬다.

“허프로님이 ‘우리가 정한 거리와 방향을 믿고 치라’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쳤더니 공이 원하는 방향, 거리로 날아가기 시작하더라”고 했다. 신뢰감이 커질수록 공은 더 잘 맞았다. 긴장하면 샷이 빨라지고 실수가 나오니 스윙 리듬이 빨라지지 않으려면 걸음을 일부러 천천히 걸으라고 한 것도 캐디의 조언이었다. 박성원은 “멘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오늘을 잊지 않고 플레이하겠다”고 했다.

지난 5월 22일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오픈(스카이 72 오션코스)에서 우승해 4년 만에 투어 3승째를 기록한 이상희(24)는 정반대 경우였다. 그는 대회 전날 고열에 시달려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까지 맞고 왔다. 3시간 남짓 누워 있다 출전한 1라운드에서 5언더파 선두로 출발했다. 대회 기간 내내 몸살에 시달리면서도 도핑 때문에 약도 먹지 못하고 물을 마시며 버텼다. 그는 “마음을 비우게 되고 무리할 힘도 없어 또박또박 쳤는데 스코어가 잘 나왔다”고 했다. 이상희는 지난 동계 훈련 때 몸통 회전 중심 스윙을 새로 익히고 주시(主視)인 왼쪽 눈을 위주로 퍼팅하는 방법을 익히는 등 꾸준히 노력하다 역설적으로 컨디션 안 좋은 날 감을 잡은 케이스였다.

정반대 상황에서 그분을 맞았던 두 골퍼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무리한 욕심 대신 결정한 대로 믿고 치다보면 자신감이 붙고 저절로 그분이 온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두 골퍼를 떠올리며 라운드를 해보자. 의외로 그분은 가까이 계실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