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가 날아와 쉬는 명경같은 호수가 펼쳐진 눅시오 국립공원 <사진 : 이우석>
백조가 날아와 쉬는 명경같은 호수가 펼쳐진 눅시오 국립공원 <사진 : 이우석>

북위 38도 인근 한반도의 도시들은 일제히 뚝배기처럼 끓고 있다. 이 무더위 속 ‘북극을 간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근데 거짓말처럼 나는 북극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해서 북극점에 간 것은 아니다. 북극권(Arctic Circle·북위 66.33도 이상)인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Rovaniemi)다. 산타클로스가 살고 있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쳐 대성공을 거둔 곳이다.

나는 집 현관을 나선 지 정확히 36시간 만에 로바니에미의 작은 공항에 착륙했다. 이곳은 툰드라. 그저 침엽수림 가득한 넓은 초원지대에 비행기는 내려앉았고, 순록 대신 도요타와 폴크스바겐 택시와 호객꾼이 우리를 기다렸다. 한여름 이곳 북극의 기온은 섭씨 5~10도로 생각보다 춥지않아서, 뚝배기에서 겨우 탈출한 내겐 공기가 마냥 청량하고 선선하게 느껴진다. 핀란드는 위도상 세계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 중 하나다. 키틸라 등 최북단의 경우 여름에 백야가 73일이나 지속되고 반대로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날이 50일이 된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도착한 날부터 계속 ‘낮’이었다. 먼저 말해두자면 해는 지지 않는다. 자정에 이르면 어둑해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밤 10시 정도. 마치 물수제비 던진 것처럼 태양은 동편에서 지평선을 따라 거의 평행으로 오더니 슬쩍 가라앉는다 싶을 때쯤 다시 떠오르고 만다. 백야에서의 생활이란 무척 단조롭다.

라플란드(Lapland·북유럽 최북단 지역)의 백야는 보통 7월 말 하지를 기준으로 점점 해가 짧아진다. 이때 인기 끄는 체험 프로그램이 바로 ‘미드나이트 선 페스티벌’이다. 이름은 축제지만 실제론 한밤중에 즐기는 트레킹이다. 코스는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훤한 까닭에 그리 힘들지 않다. 문제는 모기였다. 어찌나 겁을 주는지 두꺼운 판초 우의에다 그물모자까지 써야 한다. 양봉업자들처럼 머리를 빙 둘러 쓰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일행의 머리통이 포도송이처럼 보이는지 모기떼가 달려들기 시작한다.


겨울엔 오로라, 여름엔 백야로 인기

광활한 너덜지대가 사방으로 펼쳐진 카트카 산(Katka·해발 180m)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굴러다니는 태양의 바운스를 감상할 때 모기에 대한 번거로움은 깡그리 사라진다. 이끼로 뒤덮인 둥글둥글한 바위가 가득한 산정의 평원에 서서 1만년 전 이곳을 뒤덮었던 빙하를 상상해본다. 저편 하늘은 잠시 발그스레한 얼굴을 한 채(일출인지 일몰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일’을 비추고 있다. 백야의 툰드라 위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샴페인을 마시는 것으로 체험은 끝이 난다. 대자연이 펼치는 백야의 신비로움은 귀찮은 모기떼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 듯한 경이로 남았다. 라플란드는 핀란드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러시아 콜라 반도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뿌리(사미족)가 같다. 그래서 같은 국적끼리보다 서로 더 친하다. 순록을 기르며 낚시로 연어를 낚고 우랄계 언어를 쓴다. 그래서 핀란드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다.

가까스로 북극권에 진입한 로바니에미는 가장 이름난 관광 도시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들이 겨울엔 오로라, 여름엔 백야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북극박물관(아르티쿰)과 산타클로스 마을도 있다. 사실 산타클로스는 AD 270~343년 터키 인근 소아시아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살았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270~343) 대주교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그가 왜 갑자기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 연고를 두었는지는 알쏭달쏭하다.

책에 따르면 1931년 미국의 화가 ‘해던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에 빨간색 옷과 흰수염의 할아버지를 그려내면서 지금의 산타 캐릭터가 탄생했고, 순록 루돌프는 1939년 역시 미국의 광고 카피라이터 로버트 메이가 백화점 광고에서 ‘코가 빨간 순록’으로 처음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일은 그 이전까지 산타는 ‘거위떼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는 매우 마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로바니에미의 ‘산타 우체국’에서 만난 산타크로스
로바니에미의 ‘산타 우체국’에서 만난 산타크로스


핀란드 사우나에도 예절이 있다

핀란드에서 만난 산타는 과연 신비스러운 통나무집에 살고 있었다. 착한 어린이도 그렇겠지만 몇 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만날 수 있다.

1층엔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는 우체통(사서함)이 있는데, 편지를 써서 넣으면 산타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답장을 보내준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의외로 자일리톨이 아니다. ‘핀란드식’이란 말이 붙은 것 중에는 사우나가 가장 유명하다. 추운 이곳에서 사우나는 생활이다. 호텔방에도 개인 사우나가 설치된 곳이 많은데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나무로 된 방안에 쇠로 만든 장작 스토브(요새는 전기를 많이 쓴다)가 놓여있는데 이곳에서 달궈진 돌에 국자로 물을 뿌리면 된다. 물은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열기를 퍼뜨리는데 한기를 순식간에 없애준다. 공동 사우나에는 계단식으로 의자가 마련돼 있으며 에티켓은 다음과 같다.

기화된 열기는 가장 빨리 위부터 퍼지므로 물을 뿌릴 권한은 계단 높은 곳에 앉은 사람 순서대로다. 땀을 흘리는 곳이므로 자신이 깔고 앉을 수건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물이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뿌린 사람이 다시 채워놓아야 한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TIP 여행 정보

해가 지지 않는 한여름의 산타마을 여행기

가는길

여러 루트가 있지만 일본항공(JAL)이 나리타를 거쳐 헬싱키까지 최신 보잉 787 드림라이너로 매일 취항 중이다. 이 노선을 통하면 보다 경제적인 스케줄과 비용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시베리아 항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파리나 로마 등 서유럽보다 1시간 이상 단축되고 가격도 저렴하다.

유럽 내에서는 항공동맹체‘원월드’의 회원사인 에어 베를린(AB), 핀에어(AY), 브리티시 에어웨이즈(BA), 이베리아 항공(IB)의 풍부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유럽 내 47개 도시행 항공권을 한 번의 발권으로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다. 인천이나 부산 출발편은 도쿄(나리타)에서 무료 스톱오버를 제공한다. 드림라이너 787기종은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이 타 항공기에 비해 한결 넓고 10.6인치 개인 모니터와 PC전원, USB포트, RCA잭 등을 갖춰 장거리 비행이 한결 즐겁다.

각종 정보

수도는 헬싱키, 통화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국내 이통사 모두 현지 데이터로밍을 지원하며 전원코드는 한국과 같은 것을 사용한다.

둘러볼 만한 곳

1550년 한자 동맹 도시인 탈린을 견제하기 위해 건설된 헬싱키. 중앙광장과 장 시벨리우스 기념공원 등이 있다.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무민월드(Moominworld)가 있는 나안탈리(Naantali)는 해안 휴양도시로 옛 수도 투르쿠(Turku)와 함께 인기 여행지로 꼽히는 곳. 옛 모습을 간직한 투르쿠는 러시아정교 성전 등이 유명하다.

포르부(Porvoo)는 스웨덴 왕 에릭슨이 1346년에 세운 옛 도시로, 제정 러시아식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