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 <사진 : 위키미디어>
오스트리아 빈의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 <사진 : 위키미디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왈츠가 계속되는 곳. 이곳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입니다. 종종 여러 설문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히는 인구 180만명의 평화로운 도시죠.

한때 유럽 대륙의 반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찬란한 수도였지만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고, 연합국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분리 통치되는 등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절대다수 인구가 굶주림으로 내몰렸던 전후 상황에 빈 사람들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제일 먼저 복원한 건물이 바로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들에게 삶과 음악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인 듯합니다. 이런 장소에서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슈트라우스 등 이름만 들어도 전율이 흐르는 음악의 대가들이 활동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겠죠.


‘빈 사운드’ 잇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로서 이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바로 이 대가들이 살았던 성전을 방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3년 전 빈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러분께 빈에 관한 제 기억을 말씀드리는 것보다 음악으로 들려드리는 게 더 적합할 것 같군요. 빈을 느끼고 싶다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내림 나장조 Kv.450을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1784년 빈에서 작곡했다고 전해집니다. 시종일관 쾌활한 어조에 서정적인 선율이 어우러진 이 곡은 당시 빈 사교계에 걸맞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우아한 기품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듣고 있으면 빈 중심지 1구에 자리 잡은 역사적 건축물들과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의 유쾌한 소리가 생동감 있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빈 하면 음악의 도시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만큼 이 도시엔 세계 최고의 음악 단체, 공연장 등이 즐비합니다. 우선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1842년에 창단됐고 구스타프 말러,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카를 뵘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이 이 오케스트라를 거쳐 갔습니다. 빈 음악 고유의 소리를 지키기 위해 여러 악기 연주자들이 빈 시스템식 전통악기를 쓰고 있죠. 새 단원이 들어오면 기존의 단원들은 그들이 보존하고 있는 ‘빈 사운드’를 익히게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이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는 빈 무지크페어라인 콘서트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군요. 1870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명으로 건설된 이 콘서트홀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이상향을 반영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 있을 법한 원주 기둥, 조각상들을 건물 전면에 배치해 마치 고대 성전을 연상시킵니다.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호화로운 대공연장은 황금홀이라는 별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이라는 명예를 얻게 됐죠. 그런데 현재 이 콘서트홀이 세계 최고의 공연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고유의 신비로운 음향 덕분입니다. 많지 않은 좌석, 적절히 구획된 내부 공간의 비율, 음향 반사판 역할을 해주는 발코니석과 조각상 등의 완벽한 배치 등이 ‘2초의 잔향’이라는 최상의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지금도 음향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이 홀의 구조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보스턴 심포니홀 등 세계 여러 공연장의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 밖에 유럽 3대 오페라 극장 중 한 곳이라 불리는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 빈 콘체르트 하우스, 빈 폴크스오퍼 등 세계 일류 공연장들이 도시 곳곳에 즐비해 있습니다. 지난 7월 빈 콘체르트 하우스에서의 연주를 위해 이 도시를 찾았을 때 ‘빈은 진정한 음악의 도시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더군요. 숙소에서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한 왕궁 정원의 모차르트 동상 그리고 곧 이어지는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며 제 마음 한구석엔 이미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 음악은 연주회를 마치고 숙소로 되돌아갈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삶이 곧바로 음악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국민 노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흘러

‘빈’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곡,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리고 수도 빈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이 음악은 1867년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한 후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던 오스트리아 사회에 다시 한 번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 작품의 위상은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國歌)로 불릴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빈 신년 음악회, 콘서트홀, 무도회장뿐 아니라 길에서까지,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곡이죠. 심지어 오스트리아 국영 항공 비행기가 빈 공항에 도착할 때도 이 음악이 나와 오랜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반가움에 눈물짓기도 합니다. 매년 신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빈 시청 광장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이 곡이 연주되고, 사람들은 이 곡에 맞춰 왈츠를 춥니다. 그리고 세 박자로 이뤄진 이 왈츠 스텝에 지나간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녹여내고 새로 시작하는 한 해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안종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학사·석사, 독일 함부르크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2012년 프랑스 파리 롱 티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현재 함부르크 국립 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추천음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내림 나장조 Kv.450
미츠코 우치다, 제프리 테이트,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필립스 레이블(1991년)

미츠코 우치다와 제프리 테이트의 안정적인 호흡으로 녹음된 이 음반은 우치다의 예민한 타건으로 음악의 구조가 투명한 색채로 잘 표현돼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카를 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2012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명인 카를 뵘의 음반을 추천한다. 카를 뵘의 보수적인 해석과 빈 필의 유려한 연주가 어우러져 오리지널 ‘빈 사운드’를 느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