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사업을 하는 50대 초반의 김 회장은 최근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개발하고 있는 제품의 시장 호응이 생각보다 신통치 않고, 은행은 물론 처가나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 보니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하다. 건강이 받쳐줬을 때는 배운 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심한 두통과 소화 장애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변비로 배가 빵빵해지고 짜증까지 많아졌다. 별것 아닌 일에도 자꾸 화를 낸다. 김 회장의 가족이나 직원들은 눈치보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니 일의 능률도 떨어진 지 오래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한 것 같은데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고, 오후 5시쯤 되면 머리에 석회를 뿌려 놓은 듯 하얗게 되는 느낌에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러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떠나지 않고 선잠 자기 일쑤다. 얼마 전부터 잠자는 도중에 다리와 팔이 저려 병원을 찾아 MRI와 MRA를 비롯한 중풍 검사와 치매 검사까지 받았다.

병원에선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 진단하고 일을 줄이라는 이야기와 편두통에 대한 처방을 받았다. 치매는 아니지만 유전인자가 양성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2년 뒤에 다시 오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을 줄일 형편이 되지 않고 약도 속이 쓰려 몇 번 복용하다 그만두는 바람에 병이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귀찮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기억력도 많이 나빠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등산이 좋다는 말에 억지로 시도해보지만 힘에 부치고 그나마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뇌 혹사시키면 혈액순환 안 되고 뇌세포 약해져

김 회장처럼 머리가 하얗게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뇌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뇌를 혹사시키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돼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되고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다. 혈액이 부족해지면 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뇌가 하얗게 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러한 혈액 부족 현상은 결국 뇌세포를 약하게 만든다. 또한 지속되는 과도한 뇌세포의 활동으로 활성산소가 많이 발생하고 세포 밖에는 베타아밀로이드와 같은 독성 찌꺼기가 많이 생기고, 세포 내부는 미소관을 안정시키고 수축시켜주는 타우단백의 인산화가 많이 진행돼 찌꺼기로 쌓이게 된다. 결국 뇌세포가 약해지고 빨리 죽어 점점 머리가 나빠지므로 사업을 끌고갈 능력이 떨어지고, 젊은 나이에 치매 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다. 돈을 버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빚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딱한 리더를 많이 본다. 문제는 빚을 갚고 여생 동안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벌어도 그동안 몸과 머리를 혹사한 상처가 돈으로는 아물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머리는 재생되지 않으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뇌를 혹사시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일이 끝난 뒤 뇌가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뇌의 회복을 돕는 예방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학사,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수련의, 경희대 한의학과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