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호(왼쪽)와 박성현.
최진호(왼쪽)와 박성현.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의 분위기는 비장을 넘어 처절하다. 곰과 싸우고 죽을 뻔한 부상을 입고도 살아 돌아온 서부의 전설적 사냥꾼 휴 글래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여기에 이 영화를 통해 5수 끝에 아카데미상을 받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영화 인생까지 녹아들었다.

최근 국내 남자골프 개막전에서 우승한 최진호(32)와 출전한 여자골프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박성현(23)을 보며 이 영화를 떠올렸다. 이들은 골프의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입스(yips)’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이다. 입스는 샷을 하기도 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각종 불안 증세를 뜻한다. 수없는 반복 훈련으로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샷도 ‘혹시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들면서 클럽의 움직임을 의식하게 되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어이없는 실수로 이어진다. 입스는 프로골퍼든 아마추어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구력이나 실력과도 상관없다. 다만 한 번 걸리면 다시는 골프클럽을 잡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옥을 경험한다는 공통점은 있다.

박성현은 아마추어 시절 한 라운드에 OB(아웃오브바운즈) 10개씩 내고 다니던 때가 있다. 프로가 돼서도 2014년 한화금융클래식 4번홀(파5)에서 OB 3개를 내고 12타를 친 적도 있다. 최진호는 국내 프로대회 한 라운드에서 6개의 OB를 쳤다. 평균 서너개씩 OB가 나오니 프로대회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2008년 출전한 17개 대회에서는 모두 컷 탈락했다. 어떤 마음일까. 박성현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연습 땐 괜찮아진 것 같았고 이젠 잘해보자며 경기에 나서죠. 그런데 막상 시작하면 OB가 나는 거예요. 딸과 함께 매일 울었어요.” 최진호는 “지켜보는 사람까지 속상해서 울게 된다”고 했다. 둘 다 잘해보려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입스에 걸렸다. 최진호는 비거리를 늘려보려고 스윙을 바꾸는 과정에서, 박성현은 고2 때 국가대표에 선발돼 이제부터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됐다.

그래서 “그냥 치던 대로 칠 걸. 조금 더 잘 쳐보겠다고 이렇게 됐나” 하는 후회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이런 점에선 마음 약한 주말 골퍼들이 입스의 심술에 쉽게 투항한다. 그렇다고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엉터리 스윙에 머물면 미래는 없다.


“빨리 고치겠다” 서두르면 역효과

최진호와 박성현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입스를 넘어섰다. 최진호는 몇달간 아예 클럽을 잡지 않고 몸의 밸런스를 되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입스를 하루빨리 고쳐보겠다고 덤비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쉽게 망가지고 골프에 대한 의욕과 흥미를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박성현은 “공을 많이 치면 고쳐진다는 믿음으로 연습에만 매달려 극복했다”고 했다. 그는 프로가 돼서 입스가 재발하자 자신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중학교 3학년 때 스윙을 담은 동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연습하면서 고쳤다.

한 사람은 클럽을 내려 놓고 슬쩍 입스를 피한 것 같고, 한 사람은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정면 충돌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비결은 같았다. 최진호는 “실수를 받아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스라는 게 어느 한순간 실수의 충격이 뇌리에 남으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박성현과 최진호는 인간미가 있으면서 이론적으로도 가장 해박한 편에 속했다. 입스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골프가 마음의 운동이라는 본질을 이해하고 스윙 메카니즘에 대해서도 이와 연관지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시간이 많아서일 것이다. 혹시 입스로 고통받는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입스 안 겪어본 골퍼는 골프의 참맛을 모르는 골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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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스(yips) 골퍼들이 샷을 하기도 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겪는 각종 불안 증세. 어이없는 샷 실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