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만 25세가 되던 해까지 잘츠부르크에 거주했다. 새파란 하늘, 진초록의 알프스 산맥, 가볍고 시원한 공기 등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자연스레 그의 음악에 스며들었다. <사진 : 블룸버그>
모차르트는 만 25세가 되던 해까지 잘츠부르크에 거주했다. 새파란 하늘, 진초록의 알프스 산맥, 가볍고 시원한 공기 등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자연스레 그의 음악에 스며들었다. <사진 : 블룸버그>

유럽에서 살아온 지난 15년의 세월은 많은 음악적인 영감을 발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를 통해 영감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의 연속이었죠. 이 생명은 연주자와 청취자의 마음이 맞닿을 때 비로소 살아 숨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럼을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글로써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로 음악 그리고 이 음악을 가져다주는 영감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오늘은 제 음악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줬던 두 가지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입니다.


모차르트 음악 닮은 인구 15만명 소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놓여 있는 인구 15만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서양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 음악가라 불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1756~1791)의 고향으로 유명합니다. 잘츠부르크 공항은 아주 작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터미널까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하는 소규모 공항이지요. 걸어가면서 보이는 잘츠부르크의 새파란 하늘, 높이 솟아오른 진한 초록의 알프스 산맥 그리고 조금의 무게감도 없는 시원한 공기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눈앞에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1756년 1월 27일 이곳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만 25세가 되던 해인 1781년까지 잘츠부르크에 살았습니다. 그의 초·중기 작품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작곡됐습니다.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그 음악에 스며든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그가 19살 때인 1775년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다장조 K.279를 들어 보면 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 어떤 향기가 흐르는 곳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양식으로 작곡됐습니다. 모차르트 특유의 우아함 아래 화려하게 반짝이는 빠른 음들의 진행, 그 안을 순식간에 교차하는 다양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느린 템포의 2악장에선 19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그리움과 동경이 담겨 있지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바로크 양식 성당들이 우뚝 서 있는 그의 도시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잘츠부르크의 구시가지는 모차르트를 위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선 그의 음악이 들려오고, 상점엔 모차르트 향수,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술이 판매된다. <사진 : 블룸버그>
잘츠부르크의 구시가지는 모차르트를 위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선 그의 음악이 들려오고, 상점엔 모차르트 향수,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술이 판매된다. <사진 : 블룸버그>

빈 고전음악의 산실 모차르테움

잘츠부르크의 구시가지는 모차르트에 의한 또 모차르트를 위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차르트가 지금 살아 돌아와도 모든 길, 건물들을 하나하나 알아보고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돼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선 그의 음악이 들려오고 상점엔 모차르트 향수, 모차르트 초콜릿, 심지어 모차르트 술까지 있지요. 또 1월 말이면 그의 생일에 맞춰 매년 모차르트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잘츠부르크 시내 한복판에는 그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가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객으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박물관입니다.

그 박물관으로부터 몇십미터 떨어진 곳에는 모차르트에 관한 기록·사료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모차르테움 재단, 음악인을 양성하는 모차르테움 국립 음악대학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모차르테움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등 세계 유수의 음악인을 배출한 예술기관입니다. 모차르테움 재단은 1841년, 대학은 1880년에 각각 창설됐습니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모차르트의 음악과 빈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학정을 거닐다보면 학생들이 연습하는 모차르트 음악을 종종 들을 수 있지요.

오늘날 연주자들은 모차르트의 유년기 작품부터 만년기 작품까지 가리지 않고 연주합니다. 다섯 살 꼬마였던 모차르트가 1761년 작곡한 미뉴에트 사장조 K.1 같은 곡이 대표적이지요. 짧고 단순하면서도 균형감각이 워낙 뛰어나, 당시 사람들은 어린 모차르트 대신 그의 아버지가 작곡했다고 믿었을 정도입니다. 단순한 선율 속에 사람의 마음을 투명하게 정화하는 힘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던 어린 모차르트는 그 뒤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가 거둘 화려한 성공, 그 뒤에 찾아올 갖가지 불행·병 그리고 쓸쓸한 죽음까지 말이죠. 모차르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곡을 듣자면 연민의 감정에 가슴이 아련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에 저마다 어려움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고결함과 행복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이겠지요.


▒ 안종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석사,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과정, 2012년 프랑스 파리 롱 티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현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유럽·미국 등지에서 연 20~30회 공연


Plus Point

추천음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v. 279
안드라스 시프(Andras Schiff), 데카(Decca) 발매(1995년)
고전음악 연주의 대가라 불리는 안드라스 시프, 그의 예민하면서도 투명한 터치로 그려지는 이 모차르트 소나타집은 이미 많은 전공생들과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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