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함을 빌미로 맛 없는 음식을 내는 채식이나 건강음식 식당들이 흔하다. 하지만 채근담은 맛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건강함을 빌미로 맛 없는 음식을 내는 채식이나 건강음식 식당들이 흔하다.
하지만 채근담은 맛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채근담·菜根譚>이라는 중국 금언집이 있다. 그 책과 같이 소박하며 단순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서울 대치동의 ‘채근담’은 한국적 건강자연음식을 선보인다. 전통 사찰음식을 재해석한 채식 한정식이 전문이다.

채근담은 ‘신선한 제철 채소로 꾸며지는 건강한 음식’을 목표로 음식을 낸다. 채근담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숙 대표의 설명이다. “경남 의령 직영농장의 채소와 산중재료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보양음식, 가을에는 자연송이 특선, 겨울에는 기운을 돕는 뿌리채소요리를 냅니다. 직접 만든 장과 청을 쓰고요. 재료와 조리법 연구를 항상 합니다.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 전문 채식코스 외에 해산물과 고기를 포함한 코스도 갖췄어요. 모임과 접대가 많은 탓에 다양한 취향의 구성원을 배려해서죠. 음식의 양념과 염도를 미리 요청하면 맞춰서 내드리고 있습니다.”


경남 의령 직영농장 채소와 산중재료 사용

김 대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교민 출신이다. “숙명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한 후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남편의 금광사업을 위해 남아공으로 1989년 이주했죠. 큰 저택에서 살며 백명도 넘는 손님 접대를 자주 했어요. 음식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대사관과 교민회의 행사음식도 맡았죠. 한국산 농작물 30여종을 직접 길러가며 한식을 만들었어요. 음식으로 민간외교사절을 톡톡히 하던 시절이었죠.” 엄마처럼 따르던 새언니의 사망 후 남겨진 채근담을 2008년부터 책임지게 됐다.

채근담의 봄 음식은 다음과 같다. ‘햇봄나물 숙채’는 햇죽순, 어린 두릅순, 가죽나물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봄기운 가득 머금은 제철 참두릅과 담양산 어린 죽순의 맛이 각별하다.

‘수삼채’는 장뇌삼을 잎과 줄기 한 뿌리 그대로 국내산 토종꿀에 찍어 향긋함을 즐긴다. ‘봄맞이전’은 초록의 냉이전과 고운 색의 연근전에 화사한 봄꽃잎을 얹은 화전으로 구성된다. ‘초밥’은 원추리의 달큰함과 삼채의 쌉싸름함에 오렌지와 초록의 색상 대비가 한국적이다. ‘신선한 물김치’는 다양한 봄꽃잎과 돌나물의 초록 색상이 하얀 무와 어우러졌다. 식사는 봄나물 모둠(원추리·취나물·머위나물·꽃나물·부지깽이·삼채)에 냉이밥, 곤드레밥, 부지깽이나물밥, 연잎밥이 번갈아 나오고 쑥국이 곁들여진다.

가장 찬사를 받는 것이 ‘보쌈김치’다. 젓갈 없이 배, 무, 양파 등 과일과 채소만 갈아 넣어 시원하게 담는다. 외국인도 그 맛과 멋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고기음식 종류로 ‘갈빗살 송이구이’가 인기 있다. 갈빗살과 새우를 굽고 자연송이와 마 등을 곁들여 솔잎으로 장식해서 낸다. ‘갈비찜’은 부드러우며 짜지 않고 단맛이 덜하다.

모든 음식에는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김치와 장아찌류도 직접 만든다. 그중 10년 된 산초열매 장아찌의 향긋함이 인상적이다.


놋그릇·목기·자기 등 그릇을 엄선해 사용

“그릇에 신경을 씁니다. 인간문화재 이봉주 유기장의 놋그릇을 사용하죠. 항상 깨끗하도록 전담직원에게 매일 닦게 만들어요. 목기와 자기도 엄선해서 쓰고 있어요. 저녁에는 외국인 접대 손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음식 설명을 영어로 해드리고 세련된 서비스와 분위기를 인정받아서라고 봐요. 남아공 시절의 ‘한식 문화대사’라는 이미지를 계속 이어갈 수 있어 기쁩니다. 한식은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 좋고 기품이 있다는 것을 외국인들에게 꼭 알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종업원 교육에 철저하고 위생관리도 엄격하게 합니다. 정재계의 유명한 분들이 저를 ‘대틀’이라 불러요. 누가 오든 눈도 깜박 안 하는 큰 그릇이라며 붙여주셨죠. 저에게 VIP는 유명인이 아닌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부분이 매달 한 번씩 여성 노숙자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을 매주 기탁하고 있다. 가족화목을 바라서라며 일요일에 3대가 함께 방문하면 30%를 할인해준다.

채근담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건강한 한식으로 중요한 모임에 좋다. 특히 외국인 접대에 유용하다. 건강함을 빌미로 맛 없는 음식을 내는 채식이나 건강음식 식당들이 흔하다. 하지만 채근담은 맛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 박태순
동국대 토목공학과, 주간조선, 베스트레스토랑 등에 맛 칼럼 연재, NS홈쇼핑요리대회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