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업 승계 기업 중 하나인‘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가 2012년 창립 102주년을 맞았다. ‘기품 있는 실루엣, 남성적인 이탈리안 라인, 최상급 패브릭’으로 사랑받고 있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4대를 이어온 100년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이하 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의 북서 알프스 산맥 기슭의 트리베로에서 설립됐다. 그 후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퀄리티, 혁신, 이탈리안 스타일’을 모토로 고급 남성 패션 산업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제냐는 그 이름만으로도 ‘성공한 남성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20세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원단 공장을 물려받았다. 그가 시작한 모직공장은 이탈리아 직물 역사에 다양한 선례를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전의 낡은 프랑스식 직조기를 새로운 영국식 기계로 바꾼 것. 또한 고품질의 원자재를 산지로부터 직수입하면서 고품질의 제품만을 생산하려 했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1930년부터 자신의 이름인 Ermenegildo Zegna를 원단 가장자리에 로고로 새기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에르메네질도 제냐=품질 보증’이란 등식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33년에는 방직과 방적 과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물론, 염색과 마무리 작업에서 품질 향상이 이뤄졌다.

제냐 기업은 원단 생산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남성복 시장에 진출했다. 1980년 파리, 1985년 밀라노에 단독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수직통합체계’, 즉 원자재 수급부터 완제품 판매까지의 통합체계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1966년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세상을 떠난 뒤 제냐 기업은 그의 아들인 알도 제냐(Aldo Zegna), 안젤로 제냐(Angelo Zegna)로 이어졌으며, 현재는 제냐 가의 4대손인 파올로 제냐(Paolo Zegna), 질도 제냐(Gildo Zegna), 안나 제냐(Anna Zegna), 라우라 제냐(Laura Zegna), 베네데타 제냐(Benedetta Zegna)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의 원단과 최고의 완제품은 사용되는 원료의 품질과 이를 가공하는 장인의 솜씨에서 탄생된다. 세계 최고의 고품질 천연섬유와 원료를 통해서만 품격 있는 원단과 최고급 의류를 만들 수 있다.

1. 2012년 가을·겨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컬렉션 2. 창업자인 에르메네질도 제냐 3.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트 제작 과정 4. 산토끼 꽃 열매의 모습 5. 제냐는 옷 만드는 것 못지않게 자연환경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사진은 등산로인 파노라미카 로드를 건설할 당시의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모습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도 제냐 원단 사용

제냐는 원료 수급부터 생산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이다. 특히 제냐의 패브릭 공장인 ‘라니피시오 제냐’에서 개발된 직물들은 더 가볍고 부드러우며 기능적으로 진보한 패브릭을 선보이고 있다. 제냐는 더 좋은 품질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수급하기 위해 현지 지역사회와 친밀한 관계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착안, 호주산 초극세 울, 내몽고산 캐시미어, 남아프리카산 모헤어 등 원산지의 중요성을 알리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일환으로 제냐는 해마다 생산된 천연섬유 중 가장 품질이 뛰어난 섬유를 선정해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다. 1963년 처음 제정된 트로피는 호주의 고품질 양모 생산자들과의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양모의 품질 개선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다. 이 시상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현재의 ‘벨루스 오리움 트로피(Vellus Aureum Trophy, Golden Fleece)’ 시상식으로 이어졌다. 2002년 제정된 벨루스 오리움 시상식은 최고의 초극세 양모를 선정하고 그 생산자에게 상을 수여한다.

결과적으로 제냐가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원단이다. 지금도 원단에 대한 고집스런 연구와 개발로 혁신적인 신소재 개발 분야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단에 대한 명성 덕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구찌, 베르사체, 휴고보스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서도 제냐의 원단을 쓴다.

제냐의 장인정신은 패브릭 개발뿐 아니라 원단 품질 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직 공장에서 이뤄지는 품질검사 공정은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제냐의 의지를 보여준다. 직물의 흠집을 찾아내기 위해 최첨단 레이저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품질검사 공정과 흠집을 수공하는 데는 장인들의 바늘과 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캐시미어로 만든 원단의 솜털을 세워 더욱 부드럽게 하기 위한 코밍(combing) 과정에서 남부 이탈리아에서 야생하는 산토끼꽃 열매(티슬: teasel)를 지난 100년간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전통적인 수공 과정과 최첨단 기술력의 조화가 바로 오늘날 제냐 남성복에 있어 완벽한 라인을 창조해내는 숨은 힘이다. 

Tip |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Su Misura

제냐에서는 매년 브랜드 노하우와 자부심이 담긴 스페셜 오더 메이드 서비스 ‘수 미주라’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세상에서 한 벌뿐인 나만의 제냐 수트는 숙련된 테일러가 직접 사이즈를 측정하고, 패브릭 등 모든 디테일을 고객과 상의해 제작한다. 고객이 450여종의 원단과 100여종의 모델 중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된다.

고객의 신체 사이즈는 컴퓨터에 입력되고, 6주 만에 옷이 배달된다. 수 미주라 시스템을 위해 마스터 재단사 10명을 비롯해 130여명의 재단사가 투입된다. 140여개의 원단 조각이 사용되고 200번에 걸친 재봉 및 가공 과정, 다림질 25번, 품질 검사 10번은 기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은 24시간 동안 습기와 온도 적응력 검사를 거친 후 고객에게 보내진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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