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리더는 일의 방법뿐 아니라 일의 의미를 함께 가르쳐준다. 사람만 좋은 약한 리더는 직원을 무시하고 막말을 하는 리더보다 더 악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좋은 리더는 일의 방법뿐 아니라 일의 의미를 함께 가르쳐준다. 사람만 좋은 약한 리더는 직원을 무시하고 막말을 하는 리더보다 더 악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 한 중소기업의 CEO가 고민을 토로했다. “부하를 챙겨주는 사람이 좋은 리더라 들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매운 상사살이를 톡톡히 치른 터라, 그런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따듯한 공감의 리더가 되겠다고요. 결혼한 여직원 시댁 제삿날까지 챙겨가며 일찍 퇴근하게 해주는 등 직원들을 배려했습니다. 분명 팀 분위기는 좋아지더군요.

문제는 이것이 반드시 성과로 연결되진 못한다는 겁니다. 잘해주면 감동받아서 120%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편한 것만 추구하고 조직 분위기도 해이해져 속만 상했죠. 진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리더라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배려와 친절의 리더십이 성과로 이어지기는커녕 당나라 군대만 만들어 속을 끓인 적도 많았을 것이다. 구성원은 자율감, 소속감, 성장감을 느낄 때 업무에 더욱 몰입한다. 위 경영자의 고민은 구성원에게 소속감, 자율감은 줬지만 성장감을 주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리더인가. 리더십에서 ‘좋은’이나 ‘나쁜’이란 말은 애매하게 쓰인다. 잘 대해주면 ‘좋은’,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쁜’이란 뜻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일쑤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사람이 좋은 리더와 동의어는 아니다.

흔히 좋은 리더 하면 존댓말 쓰고, 직원들 진자리 마른자리 챙겨주는 것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표피일 뿐이다.


진짜 좋은 리더는 ‘성장 기회’ 주는 리더

진짜 좋은 리더의 바로미터는 친절이 아니라 성장력이다. 잘 대해주는 친절보다 중요한 것은 잘되게 해주는 성장력이다. 성장을 도모하느냐 vs 분위기만 좋게 하느냐, 잘되게 해주느냐 vs 잘 대해주기만 하느냐에서 ‘좋은 리더’와 ‘사람만 좋은 리더’는 갈린다. 리더십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영향력이다. 구성원을 마구 휘두르는 리더도 나쁜 리더지만 휘둘려 눈치 보기 바쁜 약한 리더도 구성원의 앞길을 망치긴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랑받는 리더, 존경받는 리더, 욕먹지 않는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최근 다면평가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부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더욱 쉽지가 않다.

악한 리더에 대한 경고는 많지만 약한 리더의 폐해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경영컨설턴트인 그렉 맥권(Grec Mckweon)의 연구 ‘당신의 좋은 상사가 당신의 직장 경력을 망친다(Your nice boss may be killing your career)’는 주목할 만하다.

그렉 맥권은 애플, 시스코, HP 등 100곳 이상에서 1000명의 매니저에 대한 자료를 모아 ‘어떤 상사가 구성원의 성장을 북돋고, 가로막는가’를 연구했다. 우리가 흔히 지적하듯이 ‘나쁜 리더의 해악’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와 사례를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연구 결과는 어땠을까. 악한 리더들이 에너지 뱀파이어가 돼 구성원을 하나둘 떠나게 하거나 냉소, 태만 등으로 직무에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은 예상한 대로였다. 주목할 점은 직장 경력 부진자들의 절반은 악한 리더 못지않게 약한 리더 밑에서 양산된다는 것이다. 구성원의 직장 경력을 가로막는 리더 중 악한 리더와 약한 리더의 비율이 50 대 50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약한 리더들은 스스로 좋은 리더인양 착각에 빠져 각성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각 단계에서 제대로 배워야 할 기본태도와 역량을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고 늘 유야무야 넘어간다. ‘너나 나나 월급쟁이. 싫은 소리 괜히 해 인심 잃으면 나만 손해’ ‘위에서 내려왔으니 대충 해’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일의 의미와 기준이 아니라 상사의 비위와 기호를 고려해 심기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해나가도록 유도한다. 되는 일, 안 되는 일 없이 늘 그럭저럭 팀으로 통하면서 구성원은 물론 팀까지 가라앉게 만든다.

악한 리더가 팀 전체에 급성 좌절을 겪게 한다면, 약한 리더는 만성 좌절을 겪게 해 성장을 지체시킨다. 늘 한발 늦고 한발 처지면서 차츰 지표 아래로 침하시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싫어. 큰소리치고 싶지 않아’라고 좋은 척하지만, 사실은 악한 리더나 약한 리더 모두 도긴개긴 문제적 리더라는 점에선 한가지다.


용장 밑 용졸, 약장 밑 약졸

한 대기업 CEO는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임원 승진한 동기들끼리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들끼리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아봤지요. 학벌, 지연, 성격? 모두 아니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특정 임원을 상사로 모신 게 바로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는 그 상사를 사수로 모시던 신입사원 시절의 일화를 들려줬다. “공금은 아무리 바쁘고 늦게 끝나더라도 당일 결산을 마치고, 1원 하나라도 정확하게 들고 나게 하라. 개인 돈을 넣어서 어물쩍 메우지도 말고 제대로 하라. 이런 행동 양식을 눈물 쏙 빼며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야속하기도 하고 고지식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1원의 정확한 대차대조결산 습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지요.”

사람만 좋은 채 ‘부하의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 리더는 약(弱)한 리더다. 성장의 약(藥)을 주는 리더가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리더다.

좋은 리더는 일의 방법뿐 아니라 일의 의미를 함께 가르쳐준다.

사람만 좋은 약한 리더는 직원을 무시하고 막말을 하는 리더보다 더 악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자 ‘약(弱)’ 자의 어원은 시사적이다. 두 개의 활 궁(弓)과 두 개의 터럭 삼(彡)으로 구성되어 털처럼 부드럽고 활처럼 약한 모양을 본뜬 것이란 주장, 또 오래된 활의 끊어진 활줄이 너덜거리는 모양을 둘씩이나 합해놓은 모양이란 주장도 있다. 공통점은 너덜너덜하고 굽어 남은커녕 제 앞가림할 힘도 없는 상태란 점이다. 축 늘어진 활로는 과녁을 맞출 수 없지 않겠는가. 약(藥)은 풀(艹)로 아픔을 치료해 즐거움(樂)을 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진정한 의미의 좋은 리더는 싱글벙글 즐거움(樂)만 주지 않는다. 제대로 성장시키는 약(藥)을 준다.

마냥 잘 대해주기보다 잘되게 해주고자 하는 리더의 사명에 보다 충실하자. 용장 밑에 용졸, 약장 밑에 약졸이 나오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처럼 조직의 진리다. 자, 당신은 구성원들이 울고 들어와 웃고 나가게 할 것인가, 웃고 들어와 울고 나가게 할 것인가. 좋은 사람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좋은 리더의 사명이 충돌할 때 되새겨보라.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인문학과 경영학,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통섭 스펙’을 바탕으로 동양 고전과 오늘날의 현장을 생생한 이야기로 엮어 글로 쓰고 강의로 전달해왔다. 주요 저서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성공하는 CEO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