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세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고급스러운 내장재, 넓은 좌석, 묵직함이 떠오른다면 시대에 뒤떨어졌단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IT 기술 발전하고 친환경 이슈가 등장하면서 럭셔리 세단의 체질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유리창을 모니터 삼아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콘셉트 모델 F015.
달리는 차 안에서 유리창을 모니터 삼아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콘셉트 모델 F015.

고급 세단의 카탈로그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달리는 응접실’이라는 표현이다. 여유로운 실내 공간, 안락한 시트, 쾌적한 환경, 그리고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세세한 항목들을 보다 보면 오히려 집의 거실보다도 더 잘 꾸며지고 아늑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비싼 승용차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조용하게 만들어도 자동차는 유리창 너머로, 엔진에서, 그리고 차 바닥과 타이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음이 실내로 파고든다. 아무리 승차감을 좋게 만들어도 노면의 요철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없고, 가속과 제동의 관성을 해소할 수 없다.


친환경성을 추구하고,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한 메르세데스 벤츠 S015.
친환경성을 추구하고,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한 메르세데스 벤츠 S015.

무게와 가격, 안정감의 상호관계

예전에는 응접실에 가까운 감각을 얻기 위해 커다란 대가가 필요했다. 노면의 요철이 차체를 들썩이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차체, 값비싼 순모 카페트와 소파처럼 생긴 벨벳 시트 등 소리를 잘 흡수하고 막아주는 최고급 소재로 몇 겹이나 둘러막은 실내 등으로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 당연히 생산량도 얼마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속이나 감속을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조절한 엔진과 조종 장치들의 특성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모델이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같은 탱크처럼 튼튼한 최고급 리무진들이었다. 실제로 실버 고스트를 위해 개발하던 무게가 2t이 넘는 뼈대와 7000cc짜리 엔진은 1차 세계 대전용 장갑차에 그대로 사용됐을 정도였다.

잉여와 호사스러움의 공식은 20세기 후반까지 계속 이어졌다. 디자인은 세련돼졌고 최고급 소재를 풍성하게 사용하는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최고급 가죽의 상징인 코널리(Connolly) 가죽을 영국 대표 럭셔리 브랜드인 롤스로이스, 벤틀리, 애스턴마틴, 재규어 등이 거의 독점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공통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브랜드들이 모두 21세기가 되기 전에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무게와 호화로움만으로 압도할 수 있는 시대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격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독일 럭셔리 브랜드들이 최고급 리무진의 새로운 해석에 나섰다. 그 핵심에는 전자 제어 기술이 있었다.


BMW7시리즈는 뒷자석에서 스마트 패드를 사용해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BMW7시리즈는 뒷자석에서 스마트 패드를 사용해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가볍게, 친환경적으로, 기능적으로

BMW 휘하에서 태어난 롤스로이스 팬텀은 이전의 어떤 롤스로이스 모델보다도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자랑했다. 물론 이전처럼 완벽한 방음과 묵직한 중량의 역할도 컸지만 사실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에어 스프링과 무한 조절식 댐핑 컨트롤이 적용된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었다. 마치 우아하게 물 위를 미끄러지는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는 두 발이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2013년 등장한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는 최고급 리무진의 개념을 바꿨다. 일단 응접실보다는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기능성과 거주성을 추구했다. 2015년 출시된 BMW 7 시리즈 역시 스마트 패드를 통하여 뒷좌석에서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편의성 등 IT 시대에 걸맞은 편의성을 뒷좌석에도 선보였다.

2t이 넘는 무게와 최고급 인테리어 소재로 안정적인 승차감을 추구했던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2t이 넘는 무게와 최고급 인테리어 소재로 안정적인 승차감을 추구했던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둘째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S 클래스는 에너지 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이다 보니 전구를 모두 LED로 바꾸게 되었고 이는 미적 감각과 기능성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다. BMW 뉴 7 시리즈도 복합 소재를 차체에 사용하여 경량화를 실현하면서 동시에 조종 성능 향상이라는 열매도 얻는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가장 중요한 시대의 변화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율 주행 기술의 첫걸음을 열었다는 것이다. 두 모델 모두 막히는 시내에서 차선이 없더라도 앞차를 자동적으로 따라가는 교통 혼잡 어시스트 또는 자동 주차 기능 등 자율 주행 기능을 일부 상용화했다.

완벽한 자율주행이 실현된다면 도심 교통에 혁신이 되겠지만, 동시에 최고급 리무진에도 또 다른 혁신이 될 것이다.

‘불완전한’ 달리는 응접실에서 완벽한 ‘달리는 사무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선보인 콘셉트 모델인 F015는 완벽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유리창을 모니터 삼아 회의를 할 수 있는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다. 이제는 회장님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었던 리무진의 뒷자리도 바빠질 것 같다.


에어 스프링과 전자 제어 서스펜션을 적용해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자랑하는 롤스로이스 팬텀.
에어 스프링과 전자 제어 서스펜션을 적용해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자랑하는 롤스로이스 팬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