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예술과 문화교류를 통해 국제협력을 이끌어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는 유네스코(UNESCO)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여 중국 출신 프랑스 조각가 왕두(WANG Du)와 한국 재불화가 한홍수의 초대전 ‘제3의 현실’(2015년 9월 14~18일)이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전시실에서 개최됐다. 유네스코 70주년을 기념해 많은 행사가 개최되지만 미술 전시로는 ‘제3의 현실’이 유일하다.

이 행사는 유네스코ISAU(International Staff Association of UNESCO)가 처음으로 주최한 전시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유네스코 창립 70주년과 더불어 한국 광복 70주년·중국 항일 전승 70주년 등 다양한 70주년 행사들이 이 전시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왕두와 한홍수. 두 작가는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쌓아가고 있다. 왕두는 1990년 중국의 격변기에 프랑스로 건너갔고, 한홍수는 1992년 한국의 안정된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갔다.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으로 프랑스에 오게 되었지만, 예술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망이 이들을 프랑스로 내몰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시절 초창기 그들은 생활을 유지하고 작품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좌) 유네스코 70주년 기념전 ‘제 3의 현실, 왕두와 한홍수’ 초대장. (우) 왕두의 프랑스 아틀리에에서 만난 왕두(왼쪽)와 한홍수 작가.
(좌) 유네스코 70주년 기념전 ‘제 3의 현실, 왕두와 한홍수’ 초대장. 
(우) 왕두의 프랑스 아틀리에에서 만난 왕두(왼쪽)와 한홍수 작가.

왕두의 세 가지 모드
문화 예술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아틀리에에서 종종 모임을 가졌는데 이들의 모임은 18~19세기 예술과 문화를 논했던 프랑스식 살롱, 혹은 조선시대 한국이나 중국에서 문인들이 정자에 모여 풍월을 읊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정으로 접어드는 향연의 피날레에는 언제나 왕두의 해금 연주가 있기에 유럽의 한가운데서 접하는 아시아 고전음악 연주는 기묘하고 아련한 운치를 자아낸다. 이외에도 이들의 예술은 슬라보예 지젝과 질 들뢰즈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왕두는 이번 전시회에 거대한 세 점의 조각 ‘미국 모드’, ‘러시아 모드’, ‘아랍 모드’를 전시한다. 미국·러시아·아랍의 종이신문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길에 버려진 모습이 재현되었다. 비록 구겨지고 뭉쳐져 있어도 신문의 내용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제프 쿤스의 막대풍선 인형이 거대하게 부푼 것처럼 왕두의 확대된 신문지도 마치 커다란 바위 덩어리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같은 사건일지라도 각 나라마다 각 국의 모드에 따라 소식이 전달된다. 미국은 미국 모드로, 러시아는 러시아 모드로, 이란은 이란 모드로 전달된다. 같은 9·11사건이라고 할지라도 미묘한 관계에 놓인 미국, 러시아, 이란이 이 사건을 전하는 모드(해석, 관점 등)는 다르다. 또한 이를 읽는 신문독자들도 각자의 ‘모드’가 있다. 왕두는 이 다양한 모드 가운데서 어느 것이 실제 모드인지 묻는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미디어로 전달되고 확산되면서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가상 세계가 생산된다. 그래서 왕두는 “우리가 미디어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우리를 소모한다”고 말한다.

- 왕두의 ‘아랍 모드 Mode d’Arabe’와 한홍수의 ‘존재의 열개(裂開)’. <사진제공 : 심은록>
- 왕두의 ‘아랍 모드 Mode d’Arabe’와 한홍수의 ‘존재의 열개(裂開)’. <사진제공 : 심은록>

한홍수의 성(性)스럽고 성(聖)스러운 ‘기관 없는 신체’
한홍수의 최근 작품은 첫 눈에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거대한 팔루스(Pallus)를 묘하게 그려 놓은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이 허리를 거의 180도로 꺾어 상반신과 하반신이 겹쳐진 모습이다. 신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적 기관이 된 것 같다(‘wB신체 없는 기관’). 또 다른 그림에는 인체가 너무나 말라서 거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듯하다. 몸의 전체적인 형태나 뼈의 구조는 그대로 보이는데, 내장 혹은 기관이 보여야 할 장소는 텅 비어있다(‘BwO기관 없는 신체’). ‘기원의 뒷면’이라는 작품은 사람의 엉덩이에 잡힌 주름에서 십자가가 드러나고 있다. 둔부에서 투영되는 십자가는 성(性)과 성(聖)의 조화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원에 얽힌 종교적 개입을 빗댄 것인지 알 수 없다. ‘기원’과 관련해 쿠르베의 유명한 작품 ‘세상의 기원’이 있고 오를랑은 이를 남성 버전으로 ‘전쟁의 기원’으로 재해석했다. 뒤샹의 마지막 작품 ‘주어진 것 1.램프, 2.폭포…’에 등장하는 여성은 불, 물, 땅, 공기라는 근원적 요소와 함께 또 다른 기원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한홍수는 이 모든 기원들을 아주 간단하게 뒤엎어 버렸다. 그는 ‘기원의 뒷면’(둔부)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어정쩡함과 불분명함을 첨가한다. 그 결과 쿠르베, 오를랑, 뒤샹은 각각 신체의 앞부분(여성성과 남성성의 상징)을 그렸기에 ‘기원의 앞면’을 그린 셈이 된다.

왕두는 퐁피두센터의 ‘초현실주의와 오브제’(2014)와 같은 국제적인 중요 전시와 세계적인 아트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다. 한홍수는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특히 그의 작품은 최근 들어 중요 갤러리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왕두와 한홍수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2인전을 개최했다. 나의 고국도 너의 고국도 아닌 제3국인 프랑스에서 만난 이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가상적 ‘제3의 현실’에 우리들을 초대했다.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