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계 박람회는 언제나 기다려지는 명절과도 같은 행사다. 1월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SIHH(스위스 국제 고급 시계박람회)와 3월 바젤에서 열리는 바젤월드가 그것이다. 여기에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워치스 앤 원더스(Watches & Wonders)’는 시계를 사랑하는 아시아인들의 또 다른 축제로 자리 잡았다.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제3회 워치스 앤 원더스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2013년 9월 말, 홍콩에서 첫 번째 워치스 앤 원더스가 열렸다. 시계의 본고장인 스위스에서만 열리던 시계 박람회가 홍콩에서 열린다는 것은 시계 애호가들에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까르띠에, 예거 르쿨트르, 몽블랑 같은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들이 홍콩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시아 시장의 가능성, 특히 중국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과 구매력 때문이었다.

1. 예거 르쿨트르의 지오피직 유니버설 타임 2. 까르띠에의 끌레 드 까르띠에 플라잉 투르비옹 3. 바쉐론 콘스탄틴의 Ref.57260 <사진 : 각 사 제공>
1. 예거 르쿨트르의 지오피직 유니버설 타임 2. 까르띠에의 끌레 드 까르띠에 플라잉 투르비옹 3. 바쉐론 콘스탄틴의 Ref.57260 <사진 : 각 사 제공>
지난 9월 30일 홍콩에서 제3회 워치스 앤 원더스가 열렸다. 지난해의 부진을 딛고 예전 방문객과 실적을 되찾았다. <사진 : 리치몬트 그룹>
지난 9월 30일 홍콩에서 제3회 워치스 앤 원더스가 열렸다. 지난해의 부진을 딛고 예전 방문객과 실적을 되찾았다. <사진 : 리치몬트 그룹>

과거 영광 되찾은 ‘2015 워치스 앤 원더스’
실제 2013년 첫 번째 워치스 앤 원더스는 판매 실적도 좋았다. 국경절 연휴에 홍콩을 찾은 중국인들이 워치스 앤 원더스를 위해 홍콩으로 공수된 값비싼 시계를 사들였고, 워치스 앤 원더스는 다음 해에도 중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국경절 기간에 맞춰 열렸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1년 사이 중국 경기는 예전 같지 않아졌고, 당시 홍콩에서는 격렬한 민주화 운동이 열리고 있었다. 실적도 첫 해만큼 좋지 않았다. 브랜드 담당자들과 기자들도 2015년 워치스 앤 원더스 개최엔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두 번 연속 참여했던 오데마 피게가 올해부터 불참을 결정하며 박람회 시작 전 분위기는 예년 같지 않았다.

그러나 2015 워치스 앤 원더스는 우려와 달리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아시아 최고의 시계 박람회답게 볼거리도 많았고 방문객도 다시 늘었다. 마치 워치스 앤 원더스에 쏟아지는 우려를 인식한 듯 각 시계 브랜드에서는 더 비싸고, 더 화려한 신제품을 이번 박람회에서 선보였다. 휴 잭맨 같은 세계적인 톱스타들도 속속 홍콩을 찾으면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번 박람회의 가장 큰 특징은 유난히 브랜드 기념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9월 17일 브랜드 창립 260주년을 맞은 바쉐론 콘스탄틴은 홍콩에서 또 한 번의 생일 파티를 했다. 8년의 연구 제작 기간을 걸쳐 완성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 Ref.57260을 공개했다. ‘57개의 기능이 탑재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시계 하나만으로도 이번 박람회의 화제성은 충분했다. 독일 시계 브랜드 랑에 운트 죄네도 창립자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에디션을 선보이며 특별한 기념일을 자축했고 보메 메르시에도 185주년을 맞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성 시계를 메인으로 내세운 브랜드도 많았다. IWC는 지난해 선보였던 포르토피노 37㎜ 제품 라인업을 강화했다. 아시아의 예물 시계 시장을 겨냥한 커플 워치도 선보였다. 바쉐론 콘스탄틴도 새로운 여성용 하이 주얼리 워치인 외흐 크레아티브(Heures Creatives)를 론칭했다. 로저 드뷔도 여성 라인인 벨벳 컬렉션을 어필하기 위해 배우 김희선을 초대해 이를 부각시키는 이벤트를 열었다.

새로 론칭한 다양한 컬렉션들로 볼거리 선사
SIHH의 축소판이라는 지금까지 따라다닌 꼬리표와 달리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는 새로운 시계 컬렉션을 론칭한 브랜드도 많았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예거 르쿨트르로 ‘지오피직’이라는 새로운 시계 컬렉션을 론칭했다.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한 남성 시계 컬렉션인 지오피직은 10월 7일 한국에서 정식 론칭 이벤트를 열었다. 까르띠에는 끌레 드 까르띠에 컬렉션의 첫 번째 파인 워치메이킹 버전으로, 미스터리 무브먼트와 플라잉 투르비옹을 탑재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피아제의 레오폴츠 메츠거 최고경영자(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과 신제품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계 주얼리 매출이 감소했다”며 “늘 그랬던 것처럼 기회는 언제나 제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품이 기회라고 말한 CEO의 말을 뒷받침 하듯 피아제는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시크릿&라이트’라는 컬렉션을 통해 380개의 신제품을 공개했다.

‘제품이 기회다’라는 피아제 CEO의 말처럼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 소개된 신제품들은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시계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SIHH, 바젤월드, 워치스 앤 원더스 같은 시계 박람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