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륜구동 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 지프다. 브랜드나 모델 이름이 자동차 장르를 대표해 쓰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자동차 역사에서 지프의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군 요구로 지프의 원형 만들어져

올해로 지프가 75주년을 맞았다. 지프는 탄탄한 역사와 전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동차 브랜드의 가치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지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 최초의 4륜구동 장치나 당대 가장 진보된 4륜구동 기술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4륜구동차의 상징적 존재가 된 이유는 4륜구동차의 특징과 장점을 가장 뚜렷하고 폭넓게 보여준 데에 있다. 보통 승용차는 앞바퀴 또는 뒷바퀴로만 엔진 동력이 전달된다. 그러나 4륜구동차는 엔진 동력이 네 바퀴에 모두 전달된다. 그 덕분에 바퀴가 접지력을 잃기 쉬운 험한 지형에서도 거뜬히 달릴 수 있다. 지프가 그와 같은 4륜구동차의 장점을 입증한 곳은 다름 아닌 전쟁터였다.

1940년 미군은 미국 자동차 업계에 야전용 4륜구동 경정찰차에 대한 제안을 요구했다. 성능과 내구성은 물론 수송 편의성을 고려한 크기와 무게에 이르기까지 군의 기준은 무척 까다로웠다. 100개 이상 업체에 제안을 요구했지만 불과 세 개 업체만 최종 입찰에 참가할 정도였다. 그 가운데 윌리스-오버랜드의 제안이 군의 기준에 가장 가까웠고, 가혹한 시험을 거친 뒤에 성능을 인정받아 납품이 결정됐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차가 지프의 원형인 윌리스 MB였고, 본격적으로 양산돼 미군에 납품되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41년이었다.

그해 말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지프는 미군과 함께 세계 각지의 전장으로 보내졌다. 지프는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에서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들어가며 임무를 수행했고, 필요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연합군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변화무쌍한 전장의 지형에서 지프는 4륜구동의 탁월한 험로 주파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다양한 스펙으로 폭넓은 마니아층 확보

지프는 전쟁이 끝난 뒤 민수용 다목적 차로 탈바꿈하며 전설을 이어나갔다. 전쟁 중 군인들에게 일종의 애칭으로 쓰였던 지프라는 이름은 상표로 등록돼 브랜드가 됐다. 또한 4륜구동 장치의 탁월한 능력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유행과 필요에 발맞춰 모델 수도 늘어났다. 기술에서부터 개념에 이르기까지, 지프 브랜드의 차들은 많은 혁신을 선보이기도 했다. 쾌적한 실내공간과 승용차 못지않은 꾸밈새로 럭셔리 SUV의 개념을 접목한 그랜드 왜고니어, 승용차와 비슷한 모노코크 구조로 현대적 SUV의 특징을 확립한 체로키 등은 자동차 역사에서 의미가 큰 차로 남아 있다. 4륜구동 기술도 시대 흐름에 따라 조작 편의성을 높이고 전자장비를 접목해 편하고도 안전한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면서도 CJ 시리즈와 랭글러처럼 오리지널 지프의 개념과 성능을 이어받은 모델로 전통을 계승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도시형 SUV 붐과 고유가 현상으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지프는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지프가 내놓고 있는 체로키와 레니게이드 등은 도시에서 쓰기에 편하면서 정통 지프의 험로 주행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어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형 럭셔리 모델인 그랜드 체로키에서 소형 모델인 레니게이드에 이르기까지 모델이 다양해지면서 지프는 폭넓은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브랜드가 됐다. 이와 같은 성공의 바탕은 물론 깊이 있는 역사와 전통으로 지프만의 색깔을 다져온 데 있다.

지프는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NAIAS)에서 75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에디션 모델을 공개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지프 모든 모델에 마련되는 스페셜 에디션 모델은 군용차를 연상케 하는 녹색 계열 차체와 브론즈 색상의 디자인 요소, 75주년 기념 배지와 로고 등 지프의 역사와 혈통을 느낄 수 있는 요소로 꾸며진다. 우리나라에도 올해 중에 75주년 스페셜 에디션이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