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페추얼 캘린더란 시계가 스스로 30일과 31을 구분해주고, 4년마다 발생하는 2월의 길이까지 자동으로 인식해 사용자가 날짜를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계의 기능을 말한다.

하이엔드 워치의 관문

퍼페추얼 캘린더는 날짜 관련 기능의 ‘끝판왕’이다. (천문 시계라는 장르가 있긴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제한적인 극소수의 브랜드만 제작하고 있는데다가 일반인에게 필요하지 않은 기능이니 논외로 친다) 시간 이외에 날짜 표시 기능까지만 갖춘 것은 심플 워치로 분류한다. 여기에 요일 기능이 더해지면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 단계, 월까지 더한 것이 트리플 캘린더, 달의 공전 주기를 더하면 문페이즈, 30일과 31일의 구분까지 가능한 모델을 애뉴얼 캘린더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영역(스몰 컴플리케이션이라고 부른다)이다. 퍼페추얼 캘린더로 시작해 (제작 난이도 순대로)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미니트 리피터 등이 본격적인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속한다.

사실 애뉴얼 캘린더와 퍼페추얼 캘린더의 차이점은 딱 하나다. 바로 윤년을 인식해 4년에 한 번 2월의 길이를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 ‘기능을 하나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워치 메이커의 입장에서 본다면 365일만 계산해서 적용하면 되던 것을 100년 정도 더 계산해 설계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지며, 이는 곧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아주 오랜 기간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는 하이엔드 메이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컴플리케이션 워치 개발 붐이 일면서 그 문턱이 조금 낮아져 크로노스위스, 몽블랑 등의 브랜드도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몽블랑

몽블랑은 CEO가 바뀐 2014년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사고를 쳤다.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발표했는데, 1600만원대의 스테인리스스틸 버전으로도 선보인 것(골드는 2700만원대)이다.

기존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 중 가장 저렴한 정규 라인업 모델은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신 퍼페추얼 골드 케이스 버전(3900만원대)이었고, 이를 부티크 에디션으로 한정 수량 선보인 스테인리스스틸 버전의 가격이 2400만원대(이것도 예거 르쿨트르의 마니아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 개념이었다)였다. 일반적인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의 가격이 8000만원대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400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출시한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또 하이엔드 메이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스테인리스스틸 버전으로 선보일 리 없던 시절이다. 몽블랑은 그간의 금기(?)를 두 개나 깨며 헤리티지 퍼페추얼 캘린더를 발표했고, 이는 시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까르띠에

까르띠에 역시 일반적인 대량생산 모델 라인업과 하이엔드 워치 메이킹 라인을 함께 운영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까르띠에의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은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파인 워치 메이킹 라인에 속하며, 크게 4가지 모델로 나뉜다. 이 중 3개 모델이 각각의 독립된 서브 다이얼을 다이얼 위/아래/좌/우로 배치하는 전형적인 타입의 설계를 갖고 있으며, 사진의 로통드 드 까르띠에 아스트로깔랑데르 Ref. W1556242 모델만이 독특한 방식으로 날짜를 보여준다. 아스트로깔랑데르의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고대 그리스 경기장처럼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층을 이룬 인디케이터에서 보여진다. 맨 바깥쪽이 날짜, 그 안쪽이 월, 그 안쪽이 요일이며 푸른색 사각형이 옮겨다니며 날짜를 표시한다. 일반적인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처럼 별도의 윤년 표시창이나 문페이즈 기능은 생략했지만, 투르비용 기능까지 갖춰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로 분류된다.


랑에 운트 죄네

독일 최고의 하이엔드 메이커 랑에 운트 죄네는 2014년 SIHH에서 독특한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을 발표했다.

그 이름은 리차드 랑에 퍼페추얼 캘린더 ‘테라루나’. 시계는 시, 분, 초 핸드가 각각 독립된 레귤레이터 형식이며, 다이얼 12시 방향에는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디지털 방식의 빅데이트가 자리잡고 있다. 8시 방향의 요일, 4시 방향의 월, 2시 방향의 윤년 표시 기능 역시 모두 디지털 방식이며, 6시 방향에서는 무려 14일에 달하는 시계의 파워리저브 잔량을 보여준다.

여기까지가 시계 전면부의 기능이다. 하지만 이 시계의 백미는 케이스백이다.

시계 후면의 3분의 2가량은 지구와 달, 이를 둘러싼 우주의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황금색 밸런스 휠이 태양의 역할을 한다. 지구 모양의 디스크는 지구의 자전주기에 맞춰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밸런스 휠을 기준으로 낮과 밤을 표시한다. 그리고 달의 모습과 지구를 공전하는 달의 위치 또한 각기 다른 디스크에서 회전하며 특허 받은 궤도형 문페이즈 메커니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