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에서 소위 ‘슈퍼스타’라고 불리는 작가들의 이력서를 보면,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협업)한 경력이 있다. 루이비통 가방과 스티븐 스프라우스, 무라카미 다카시, 리처드 프린스, 쿠사마 야요이, 그리고 불가리 반지와 아니시 카푸어 등 브랜드와 작가가 직접 만나 상품(작품)을 만들어 낸다. 슈퍼스타 작가 혹은 브랜드 작가들을 꾸준히 양산해 온 거대 기업들이 소장품이 많아지자 미술관을 설립한다. 재단 미술관이 설립되는 도시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시민의 세금이 아니라 재단의 자비로 미술관이 세워지고 재단의 명성을 위해 최고의 건축가가 섭외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LVMH·Louis Vuitton- Moet Hennessy, 이하 ‘루이비통’)의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가, 피노 재단은 안도 다다오가, 까르띠에 재단은 장 누벨 등이 설계를 맡았다.

 

2014년 10월 루이비통 미술관 개관

이렇게 세워진 건축물은 그 자체가 커다란 예술 작품이 되어 때로는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미술관 안에 채워지는 작품들은 국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서도 보기 어려운 잘나가는 현대 예술가들의 최근 작품으로 채워진다. 현대 미술관들이 국가의 지원이나 메세나의 후원을 받아도 최고가를 달리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퐁피두센터는 제프 쿤스의 회고전을 개최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한 점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역시 재정 문제다.

다수의 브랜드를 통해 전 세계 럭셔리 산업을 지배하는 루이비통 그룹의 회장은 베르나르 아르노이다. 2014년 10월 파리에서, 루이비통 재단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미술관을 개관했다. 불로뉴 숲 속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에 들어선 미술관은 높이 48.5m, 총면적 1만1700㎡, 건물 면적 약 8900㎡, 전시 공간 3267㎡로 내부에 11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6년의 공사기간에 3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1억3000만 달러가 넘게 소요됐다.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관장이었던 수잔 파제가 예술 감독으로 아르노가 작품 수집하는 것을 돕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의 미술관 프로그램을 주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 작가를 초대하는 기획전과 20세기와 21세기 소장품을 보여주는 상설전시가 겸비된다. 현재 기획전으로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컨택(Contact, 2014년 12월17일~2015년 2월23일)전’이 지하에서, ‘프랭크 게리(2014년 10월24일~2015년 3월16일)전’이 1층에서 개최되고, 상설전으로는 백남준을 포함한 현대 작가의 작품들이 2층과 3층에서 전시되고 있다. 

루이비통 미술관의 테라스에서 보면 아름다운 공원뿐만 아니라 에펠탑, 라데팡스 지역의 현대식 건물도 보인다.

미술관 뒷문으로는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으로 바로 연결되며, 미술관 티켓으로 공원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환상적인 장소에 한 기업의 미술관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이 미술관은 2007년 1월을 기점으로 55년 동안은 루이비통이 소유하고, 그 후에는 파리시에 귀속된다. 파리시와 어떤 협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루이비통 재단이 프랑스에 주는 커다란 선물임에 틀림없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건축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맡았다. 그는 “아르노 회장은 미술관 모형이 빛에 따라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구름 같다고 했지만, 내게 있어서는 돛단배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바람을 품어 한껏 팽팽해진 11개의 유리 돛을 올린 배가 초원을 항해한다. 또한 프랭크 게리는 “한 건물을 사서 수집한 작품을 넣는 것은 미니멀리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아르노의 숙적(宿敵)인 프랑수아 피노의 미술관이 바로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케링(Kering) 그룹의 설립자 피노 회장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 2006년 개관)’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2009년 개관)’, 두 개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 2006년 피노가 팔라조 그라시를 개관하고 난 6개월 후에, 아르노는 경쟁을 하듯 루이비통 재단을 파리 불로뉴 숲에 세울 것을 선언했다. 

1. 루이비통 재단 테라스에서 보이는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내의 한국정자 ‘죽우정’.2. 루이비통 미술관에는 상설전으로 백남준전이 열리고 있다.
1. 루이비통 재단 테라스에서 보이는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내의 한국정자 ‘죽우정’.
2. 루이비통 미술관에는 상설전으로 백남준전이 열리고 있다.

구찌 그룹 피노 회장, 베네치아에 먼저 미술관 만들어

원래 피노는 파리 센 강의 세갱 섬에 자신의 미술관을 건립하려고 했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영입하고 미국에서 예술 감독을 초청할 기획도 세웠다. 그러나 시 당국이 사업허가를 미루자 2005년 이를 취소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베네치아로 장소를 바꿨다. 프랑스가 피노의 미술관 건립에 재빨리 응대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손실이었다. 프랑스는 두 개의 현대 미술관을 잃었다. 그 곳에서 전시될, 피노가 30여년 동안 모아온 2000여점의 소장품을 볼 기회도 함께 잃었다. 또한 피노의 미술관이 파리에 있었더라면 이번에 개관한 루이비통 미술관과 함께 선의의 경쟁이 가능하며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이를 위해 매년 파리를 방문하게 됐을 것이다.

피노와 아르노의 경쟁은, 1999년 3월19일 피노의 PPR그룹(Pinault-Printemps-Redoute, 케링그룹의 전신)이 아르노가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왔던 구찌(GUCCI)를 인수하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10여년에 걸쳐 경쟁이 아닌 전쟁이 치러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두 거대한 고래 싸움 덕분에 프랑스는 럭셔리 산업의 원산지가 될 수 있었으며, 피노와 아르노는 그들의 럭셔리 왕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견고히 다질 수 있었다. 독일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이들의 목숨을 건 전쟁이 없었다면, 중국,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럭셔리 브랜드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까르띠에 재단의 알랭 도미니크 페렝 회장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프랑스는 인상파 이후에 미술세계를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피노)가 현대미술세계에 프랑스를 다시 집어넣었다.” 페렝은 피노를 지칭한 것이지만, 아르노에게도 해당된다. 결국, 두 고래 싸움 덕분에 프랑스 현대미술이 살아난 셈이다.

-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입구
-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입구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 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