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10일 부산시립미술관의 별관인 ‘이우환 공간’이 ‘마침내’ 개관됐다. ‘마침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서구 미술관계자들로부터 “이우환 예술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그 질문이 좀 더 빈번해졌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개인전(2011),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현대미술 초대전(2014) 등과 각종 중요 국제전들로 인해, 이우환의 예술이 서구 대중매체에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또 최근 들어 서구인들이 한국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귀에 가장 익숙한 이우환의 예술을 알고 싶다며 요청해 온다. 그때마다 일본 가가와(香川)현 나오시마(直島)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2010년 개관)을 추천하면서 안타까웠다.
- 4월10일 부산시립미술관의 별관인 ‘이우환 공간’이 개관해 국내에서도 이우환 예술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 4월10일 부산시립미술관의 별관인 ‘이우환 공간’이 개관해 국내에서도 이우환 예술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우환 미술관의 관람객 중에는 프랑수아 피노(케어링 그룹 전 회장)와 같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컬렉터를 비롯해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등 국제적인 주요 미술관계자들의 방문도 포함된다. 이들은 이우환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다른 일본 미술관이나 전시도 둘러본다. 그때마다 이우환 미술관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하고 아쉬웠다. 이러한 미술관계자들이 이우환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또 다른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 이우환 공간 개관전 오프닝 행사
- 이우환 공간 개관전 오프닝 행사

개관 당일 프랑스 퐁피두센터 前 관장 등 세계적 유명 미술인사 참석
이번 이우환 공간 개관 당일에도 200여명의 초대자 가운데 알프레드 파크망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전 관장, 프랑스 ‘르피가로’지 미술 전문기자 발레리 뒤퐁쉘, 미국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 크리스틴 스타크만,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큐레이터 드리트리 오제르코프 등 여러 외국 미술관련자들이 참석했다. 이들 중 다수는 당시 개최되고 있는 부산미술관의 전시 ‘한국의 선, 색, 공간’을 관람하며 관심 있는 작품의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훌륭한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는 것이 미술전문가들의 책임이라면,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은 사명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번 이우환 개관전에 좀 더 많은 그리고 좀 더 중요한 외국 미술관계자들이 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많은 외국 예술관계자들이 최대한 참석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중요 행사와 겹치게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팀은 이우환의 전시 오프닝을 스위스 바젤아트페어에 맞추었다. 가고시안의 파리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팡탱 갤러리 등이 개관전을 할 때도 프랑스의 아트페어인 FIAC기간에 맞추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미술관계자들은 여러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큰 행사가 여러 개 겹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행사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중요해지며 관람객들은 더욱더 몰려들게 된다.

한국의 중요 미술행사도 홍콩바젤아트페어(3월 중순)와 같은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미술행사와 겹치게 일정을 잡아, 세계적인 미술관계자들이 홍콩바젤아트페어에 가기 전에 한국을 먼저 경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예술사업적 순방은  20세기부터  유행한 정치적 순방보다 훨씬 더 역사가 오래됐다. 또한 이들의 움직임을 세계미술계나 미술시장이 예의주시하기에 그 시너지 효과도 대단하다. 이를 계기로 한국현대미술이 좀 더 세계로 알려질 수 있고 좀 더 발전적인 국제적 교류와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필자는 수년간 이우환과의 대담록인 <양의의 예술>을 준비하면서 세계적인 일본 예술가들인 안도 다다오, 히로시 스기모토, 프랑스 최고의 작가들인 로만 오팔카, 다니엘 뷔렌,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영국의 아니쉬 카푸어, 미국의 빌 비올라, 이탈라아의 주세페 페노네 등이 이우환의 친구들임을 알게 됐다.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것”이라는 이우환의 예술론처럼 대부분의 그의 친구 작가들도 세속적 아프로디테보다는 천상의 아프로디테를 지향한다. 이우환의 친구들은 지구를 쉼 없이 돌며 전시를 하는 바쁜 작가들이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마치 야생동물들이 그들의 피스트(잔치)에서 마주치듯이 그렇게 마주친다”고 대답했다. 공항에서 자주 마주치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인 행사 때 각각 전시를 하며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영국 텔레그래프, 허핑턴포스트UK 등 영국 대중매체는 리슨 갤러리의 두 전시에 주목하라고 한다. 우주적 다이내믹한 공간을 느끼게 하는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와 무한의 리듬을 느끼게 하는 이우환의 전시를 말함이다. 이들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각각 개인전을 갖고 있다. 카푸어나 뷔렌은 이우환의 베르사유 전시에 와서 축하해 주기도 했다. 빌 비올라와 이우환은 불과 한 달 전 한국에서 만나 두 사람의 우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 이우환 공간 오프닝 때, 친한 외국작가들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빌 비올라, 뷔렌 등의 한국 전시가 이우환 공간과 비슷한 때에 오픈되었더라면 세기적인 거장들의 해후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이우환 공간 개관전을 보면서 작년 가을 파리 근교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개관전이 떠올랐다. 당시 예술계는 물론 프랑수아 올랭드 대통령을 비롯한 정재계 거의 모든 중요 인사들이 개관전을 축하하러 몰려들었다. 프랑스는 국립 혹은 시립 미술관 개관전은 물론이고 중요 미술행사(모뉴멘타, FIAC, 베네치아 비엔날레 프랑스관 등)에도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석한다. 이는 프랑스 정계에 예술이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과 정치인들의 높은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 현대예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갔다고 할지라도 프랑스는 여전히 예술을 존중하고 아끼는 참된 예술의 나라이다.

-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작가들의 예술적 연고지 많이 만들어져야
부산은 이우환 작가에게 특별한 도시이다. 피난시절 중학생이었던 그는 부산에서 학업을 지속했으며 부산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적 소양을 마음껏 키울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가장 풍요로운 기억과 감성을 제공한 곳이 부산이었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적 연고지’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인 작가들의 경우에는 ‘미래의 예술적 연고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오시마 섬에서도 이우환의 지역적·역사적 연고지를 따졌더라면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졌을 리 없다. 일본 가가와현의 데시마(豊島)에 볼탄스키의 ‘심장박동 아카이브’는 더더욱 불가능했을 것이다. 볼탄스키가 데시마와 특별한 연고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오시마에 이우환 미술관이 생김으로써 나오시마는 이우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진정한 연고지가 되었고 데시마에도 심장박동 아카이브가 생김으로써 볼탄스키는 프랑스 다음으로는 일본의 데시마와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자신의 심장 박동을 녹음해 그리로 보낸 사람들에게도 데시마는 연고지가 되었다. 볼탄스키의 이 심장박동 아카이브나 이와 비슷한 기획이 독도에서 행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독도는 모든 세계 사람들의 예술적 미래지향적 평화의 연고지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예술의 가장 위대한 점은 ‘지역적·역사적 연고지’를 느끼지 않을수록 훌륭하다는 것이다. 국적이나 언어에 상관없이, 세계인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천상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모네의 그림을 보며 빛의 인상을 공유할 수 있고, 이우환의 작품 앞에서 공간의 바이브레이션을 느끼는 것과 같다.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지역적·역사적 연고지를 넘어서서 세계예술인들의 미래의 연고지로 발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우환 공간이 개관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한국에 작가의 이름을 건 개인 미술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출범할 때의 의욕과는 달리 재정적인 문제 혹은 외국과의 소통이 거의 없이 지역적인 미술관으로 국한되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흐지부지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우환 공간이 세계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거점이 되어, 이곳으로부터  ‘소통의 울림’과 ‘관계의 리듬’이 울려나가기를 기대한다. 이우환의 예술도 바로 이러한 외부와의 ‘관계’와 ‘대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조각의 제목은 항상 ‘관계항’이며 그의 최근 회화의 제목은 ‘대화’이다. 이우환 미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왜 그의 예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왜 외부와의 소통과 관계가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이번 이우환 공간이 세계와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가 되고 이로 인해 한국현대미술을 세계로 알릴 수 있는 미술관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부산미술관의 별관이 아니라 세계미술의 별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
-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