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다가간다. 시 주석 앞에 도달한 노인은가녀린 팔에 의지해 몇 번이나 휠체어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주석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시 주석은 노인의 어깨를 다정히 누르며그대로 앉아 있기를 권한 뒤 표창장을 전달한다. 2021년 2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탈빈공견총결표창대회(全國脱貧攻堅總結表彰大會)에서벌어진 장면이다.

노인의 이름은 샤선(夏森). 중국사회과학원 외사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인물로, 올해 나이 98세다. 샤 여사는 평생 아끼며 모은 돈200만위안(약 3억5000만원)을 가난한 시골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에 썼고, 그 덕에 빈곤 가정의 학생 180명이 대학 진학의 꿈을 이뤘다.샤 여사는 ‘가난 탈출을 돕기 위해서는 교육에 역점을 둬야 하고, 가난을 퇴치하려면 우선 어리석음을 치료해야 한다(扶貧重在扶教,治窮先治愚)’라는 신념을 평생 실천해 왔다.

이 대회에서 시 주석은 전국적인 빈곤 탈출이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했다. 빈곤 계층으로 분류됐던 9899만 명과 832개의 현(縣)이 가난과굶주림에서 탈출했다는 선포였다. 같은 날 중국은 ‘국가향촌진흥국(國家鄕村振興局)’을 정식 출범시켰다. 이 조직은 국무원의부빈개발영도소조사무처(扶貧開發領導小組辦公室)를 개명한 것으로, 이제는 빈곤에서 탈출한 향촌(시골)의 진흥을 고민하겠다는 취지다.

중국은 2015년 10월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소강(小康·편안하고 풍족한 생활) 사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청사진을천명한 이후 부빈공견(扶貧攻堅)을 탈빈공견(脱貧攻堅)으로 바꾸고 빈곤 탈출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중앙 정치국은 2015년 11월 23일‘탈빈공견전의 승리에 관한 결정(關于打赢脱貧攻堅戰的決定)’을 통과시킨다. 여기서 ‘부빈’은 ‘빈곤을 부축한다’는 말로 각종 정책과 인적·물적지원 등 빈곤 탈출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정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반면 ‘탈빈’은 부빈의 성과로 빈곤에서 탈출했다는 의미로, 결과에 더 방점이찍혀 있다.

2021년 3월 4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의 개막에 맞춰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빈곤 탈출의 기준에대해 2015년 세계은행이 인정한 ‘일 인당 일일 1.9달러 지출’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또 빈곤 탈출 여부는 단순히 연 수입뿐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개선을 포함한 종합 지표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 주석은 일찍이 빈곤 탈출과 관련해 “두 가지를 고민하지 않고 세 가지를 보장한다(兩不愁三保障)”는 원칙을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먹는것과 입는 것을 고민하지 않고 기본 의료, 의무교육, 주택 제공을 보장한다는 말이다. 탈출했다고 선언한 빈곤의 기준이 너무 낮지 않은가 하는외부 시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등 따습고 배부른 온포(温饱) 시대에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이상적 복지국가인 소강 사회로, 부빈을 통해 탈빈을 이루고 한 걸음 더 나아가진흥으로…. 샤 여사의 휠체어처럼 느리기는 하지만 꾸준한 중국의 행진은 오늘도 계속된다. 다만 소강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날로 심해지는빈부격차와 도농격차는 중국이 풀어야 할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