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에서 중독으로 넘어가는 경고음이 바로 가족의 잔소리다. 가정의 평화가 깨질 정도로 잔소리가 나온다면 득과 실이 역전되는 신호다.
마니아에서 중독으로 넘어가는 경고음이 바로 가족의 잔소리다. 가정의 평화가 깨질 정도로 잔소리가 나온다면 득과 실이 역전되는 신호다.

정신과 의사라 그런지 여기저기 자주 강의를 다닌다. 강의 후에 개인적인 고민을 호소하는 분이 꽤 있다. 얼마 전에 주부 대상으로 강의했는데 한 부인이 남편 문제로 하소연했다. 남편이 매일 술 마시고 취해서 집에 온다면서 걱정이다.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상담이라도 받게 하고 싶은데 남편은 자기가 ‘애주가’지 무슨 ‘알코올 중독자’냐고 화를 낸다고 한다. 부인은 알코올 중독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관대한 술 문화 덕에 애주가와 알코올 중독의 경계가 모호하다. 

애주가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넘어가는 기준은 이렇다. 술을 마셔서 첫째, 심리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둘째, 가정적, 사회적, 직업적으로 문제가 있다. 셋째, 이런 이유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술을 그만 마시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한다. 넷째, 본인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술을 마신다. 이러면 알코올 중독 초기로 봐야 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애주가’는 알코올 중독은 아닐지라도 그 전 단계인 ‘문제 음주자’일 가능성이 크다. 술을 마셔서 득보다 실이 많은 사람이다. 문제 음주가 지속하면 알코올 중독으로 넘어간다. 그 경계에서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중독되면 횟수 줄이기보다 완전히 끊어야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것이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해를 준다. 술뿐만이 아니다. 게임, 골프, 낚시 등 우리가 즐기는 취미도 과하면 중독이 된다. 알코올 중독을 애주가로 주장하듯이 중독을 ‘마니아’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마니아, 듣기 좋은 단어지만 아차 하면 중독으로 넘어간다.

중독은 삶을 화끈하게 해준다. 나의 감각을 깨우고, 즐겁게 하고, 살아있게 한다. 심심하고 별 볼 일 없는 세상에서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세상 법칙은 좋은 것에는 늘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정신없이 빠지니 대신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그것이 돈이 될 수 있고, 건강이 될 수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마니아는 아직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는 상태다. 까딱 잘못하면 중독으로 떨어진다. 마니아에서 중독으로 넘어가는 경고음이 바로 가족의 잔소리다. 가족의 평화가 깨질 정도로 잔소리가 나온다면 득과 실이 역전되는 신호다. 이런 상황이 되면 ‘뭘 이런 걸 가지고!’ 하고 대들 게 아니라 한 번은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혹 중독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아예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술의 경우에 자신이 문제 음주자라고 생각되면 일정 기간 ‘단주’를 해야 한다. 대부분은 ‘절주’ 즉, 술을 조절해서 마시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조절할 수 없어서 중독으로 넘어간 것이니 절주하는 방법은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술뿐만 아니라 다른 취미도 마찬가지다. 지금 즐기고 있는 것에 너무 빠져있다고 생각되면 횟수를 줄이려 하지 말고 기간을 정해놓고 완전히 끊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마니아로 남을 수 있다.


▒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밝은마음병원 원장, ‘엄마 심리 수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