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21년 3월 28일 중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주무 부서인 국무원 연방연공기제(國務院聯防聯控機制)는 “3월 27일 밤 12시 현재 중국 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1억 회를 넘어섰고, 전 세계에 공급된 중국 백신의 접종도 1억 회를 돌파했다”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를 ‘두 개의 일억 돌파’라는 의미의 ‘쌍파억(雙破億)’으로 표현하며 자축했다. 자국민 보호뿐 아니라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대국으로서 책임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華春瑩)은 3월 30일 “중국은 백신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면역홍구(免疫鴻溝· miǎnyìhónggōu)를 유발하는 모든 부도덕하고 책임감 없는 행동에 반대한다”라고 했다. 홍구는 한(漢)의 고조(高祖)와 초(楚)의 항우(項羽)가 천하를 양분해 대립할 때의 경계를 말한다. 즉 면역홍구란 백신 공급 불균형이 야기한 면역의 양극화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은 백신을 국제 공공재로 보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보급을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은 80개 국가와 국제기구 세 곳에 백신을 제공했고, 10여 개국과는 백신 관련 연구개발(R&D)과 생산에 관한 합작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력을 통해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선수들에게 백신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022년 개최 예정인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이렇듯 중국은 희망을 잔뜩 품고 돋아나는 봄날의 새싹같이 외국에 있는 자국민에게 중국산 백신을 접종한다는 ‘춘묘행동(春苗行動)’을 필두로 공세적인 백신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는 백신 여권에 해당하는 건강 코드의 상호 인증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듯하다.

2020년 2월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진단키트(試劑)·백신(疫苗)·치료약(藥品) R&D에 관한 총력전을 선언했다. 중국은 같은 해 7월 22일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에 필요한 절차를 개시했다. 이와 관련해 중화인민공화국 백신관리법(中華人民共和國疫苗管理法) 제20조는 “특별히 중대한 돌발 공공위생 사건 또는 기타 심각하게 공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긴급 사건의 경우 국무원 위생건강 주관 부서는 감염병 예방·통제의 필요성에 따라 백신 긴급 사용을 건의하고, 국무원 약품감독 관리 부서의 검토·동의를 거쳐 일정한 범위와 기한 내에서 긴급 사용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초기의 긴급 사용 목적은 의료진, 방역 업무 종사자, 국경 근무자와 도시 운영과 관련된 기본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특수 집단에 면역을 형성해 정상적인 도시 운영을 담보하는 데 있다.

전 세계가 자국민을 위한 백신 확보와 접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와 유럽연합(EU) 국가가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수출 물량 통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국에서도 백신 수급과 접종 속도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 백신의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중국에 거주하는 지인 가운데 중국산 백신을 맞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는 국경이 없다는데, 백신에는 국경이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