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남부의 시아커브칼라이에서 작전을 벌이는 미국 해병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가장 큰 이유는 탈레반 축출보다 알 카에다 와 오사마 빈 라덴 제거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2004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남부의 시아커브칼라이에서 작전을 벌이는 미국 해병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가장 큰 이유는 탈레반 축출보다 알 카에다 와 오사마 빈 라덴 제거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식민지를 제외한 본국만을 기준으로 따지면 19세기 말 미국은 세계 1위 경제 대국의 자 리에 올랐다. 그러나 건국 이후부터 고립주 의를 유지해서 군사적으로는 전통의 열강들 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 전 당시 무려 200만의 병력을 유럽에 보냈음 에도 보유한 무기의 질이 좋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했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 면서 명실공히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사를 선도하기 시작했고 그런 기조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군사력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동시에 전 쟁을 벌여 승리를 이끄는 괴력을 발휘한 이후 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원천이다.

냉전 시대에 치열하게 군비 경쟁을 벌인 소련은 체제가 붕괴됐고 현재 주요 2개국(G2)에 오른 중국이 경제력을 발판으로 도전 중이나 격차가 상당한 편이다. 그 때문에 미 국은 최강의 패권국에 오른 이후 지구상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 분쟁 또는 이에 준하는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그래서 흔히 ‘세계의 경찰’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그처럼 압도 적인 군사력을 보유했음에도 1945년 8월 15 일 일본이 항복한 이후,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한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사례 는 드물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 연이어 있었던 그레나다 침공전, 파마나 침공전이 그 나마 예외 사례이나, 정작 교전 상대의 전후 상황을 고려한다면 크게 의의를 부여할 수준 이 아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중국의 참전으로 전 세가 역전되자 재북진을 포기하고 DMZ 일대에서 소모전으로 일관하다 휴전으로 마무리 지었다. 베트남전쟁은 미국이 패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베트남은 패망했다. 걸프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지배에는 실패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나야 했다.

이처럼 확고하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전쟁에 임하는 자세다. 미국은 진주만 급습이나 9·11테러처럼 자신들이 도발을 당하면 어떤 희생과 손실도 마다하지 않고 복수에 나선다. 대항하면 석기시대로 만들어 버리겠 다고 공공연히 언급할 정도로, 미국은 의지만 있다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어렵지 않 은 나라다.


2020년 9월 12일 도하에서 마주한 미국과 탈레반 대표들. 무책임하다고 조 바이든이 비난을 받지만 정작 탈레반과 협정을 맺고 철군을 결정한 것은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2020년 9월 12일 도하에서 마주한 미국과 탈레반 대표들. 무책임하다고 조 바이든이 비난을 받지만 정작 탈레반과 협정을 맺고 철군을 결정한 것은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9월 2일,도쿄만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에서 벌어진 항복 조인식에 참석한 일본 대표단. 시간이 흘러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하고 점령지 지배에도 성공한 드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9월 2일,도쿄만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에서 벌어진 항복 조인식에 참석한 일본 대표단. 시간이 흘러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하고 점령지 지배에도 성공한 드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육군 투입 최소화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제국주의가 퇴조하면서 이제는 적어도 형식상으 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직접 식민지로 지배해 서 수탈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라도 군사적으로 상대를 제압해 점 령지를 지배하거나 통치하는 방식은 극히 제 한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전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특히 매스컴의 발달로 인명 피해에 대해 민감해졌는데 종종 정권 존립 문제로 비화하기도 한다. 이번에 흐지부지 끝낸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미국은 20년 동안 2조2610억 달러(약 2654조4100억원)라는 비용 외에도244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사실 이는 3년간 3만6574명이 죽거나 실종된 한국전쟁, 9년 간 5만8220명이 희생된 베트남전쟁과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육군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해공군과 첨단 무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벌어진 결과다. 그런데 충분한 지상군을 투입하지 못하면 군사적으로 승리한 후에 정작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단지 점과 선만 확보하는 형태가 된다. 때문에 점령지 지배가 쉽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홈코트의 이점을 누리는 저항 세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전쟁은 2011년 알 카에다의 수괴인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순간 막을 내린 것과 다름없었다. 만일 악질적인 탈레반 소탕이 목적이었다면 좀 더 일찍 침공을 단행했거나 앞으로도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중요 한 목표를 달성한 데다 미국이 계속 아프가 니스탄을 확보해서 얻을 이익보다 손실이 크 기에 포기했다.

최근 영화 ‘모가디슈’로 다시 언급되기 시작한 소말리아 내전 당시에 미국은 국제 사회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입은 했으나 상당히 못마땅해했었다. 소말리아가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관심을 둘 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화 ‘블랙호크다운’처럼 그럴 듯한 명분이 생기자 즉시 개입을 포기하고 도망쳐 나왔다.

앞서 언급처럼 미국의 군사력은 모든 도전을 거부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있어도 예전처럼 지배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다 보니 거시적으로 전쟁 전체를 조망할 때 승전으로 보기 어려운 사례를 반복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도 단지 기간만 길었을 뿐이지 결국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