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1일 102세의 노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천 을왕리 해변 근처 집필실에서 원고를 쓰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2021년 9월 11일 102세의 노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천 을왕리 해변 근처 집필실에서 원고를 쓰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

100세를 넘어 사는 사람은 많아도 100세를 넘어서도 일을 놓지 않는 현역이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이 시대의 현자’로서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계속하는 102세(만 101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아마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보물’ 같은 인물일 것이다. 본인의 체험으로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임을 강조, 스스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생각하는 수많은 시니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멘토, 김형석 교수의 인상에는 지금까지 건강과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담겨 있다.

얼굴에는 100세 인생지도가 담겨 있다. 귀에서 시작해 이마, 눈썹, 눈, 코와 관골(광대뼈), 인중, 뺨, 입, 턱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뒤쪽 뺨을 거쳐 거슬러 올라가 얼굴 한 바퀴를 돌면 100세를 마무리한다. 102세면 다시 1세의 위치인 귀에 와 있다. 요즘 김 교수의 웃는 모습이 두 살 아이처럼 순수하지 아니한가.

사람의 얼굴에는 인상학적인 함정이 있다. 입이 너무 작으면 60대가 고생스럽고, 턱이 약하면 말년이 편치 않다. 눈 옆 안경다리 지나는 부분이 약하면 83~84세가 위험하다. 얼굴의 탄력이나 찰색이 나빠지는 경우 또한 당시의 운기를 해친다. 손재, 건강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자칫 그 시기에 수명을 다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얼굴을 보라. 전체적인 얼굴선이 물 흐르듯 매끈하게 이어진 갸름한 얼굴이다. 이러니 100세를 돌아 2세를 더 오게 된 것이다.

김 교수의 얼굴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어느 부분이 100세 넘어 장수하는 인상인가’ 하는 것이다. 장수 인상 첫 번째는 턱 아래 닭 볏처럼 늘어진 목살이다. 젊었을 때 목이 굵었고 건강했다는 증거다. 두 번째는 두툼한 귓밥이다. 뺨의 살이 귀로 올라붙은 것으로 성격이 여유롭고 넉넉하며, 제자들이 많이 쌓이는 등 대인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긴 인중이다. 인중이 길면 성격이 급하지 않다. 성격이 급하면 장기가 상처를 입어 질병이 생기기 쉽다. 느긋한 성격은 건강의 비결이다. 네 번째는 코가 길고 튼실하며 코끝이 약간 내려온 것이다. 내려온 코끝은 인중을 침범하지 않았다. 이런 코를 가지면 장수한다.

중년 즈음 김 교수의 인상은 얼굴선이 갸름하고 코가 긴 전형적인 학자상이었다. 정수리 부분 도덕골이 솟아 철학 교수는 천직이다. 긴 코는 한 우물을 판다.

널찍한 이마가 뒤로 넘어갔다. 이런 이마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일하며 산다. 한편으로는 고달픈 삶일 수 있겠지만, 젊어서는 사랑이 있는 고생이어서 행복했고, 지금은 나보다 남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해서 행복하다니 102년 삶의 결산은 행복이다.

둥근 이마는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이마다. 최근 부친을 비난한 모 변호사에게 보낸 김 교수 딸의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할머님과 두 명의 삼촌, 고모 한 분을 모시고 남하해 흙집을 지어 20여 명의 식구를 데리고 사셨다.” 미루어보면 부모로부터 재산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학자’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영특한 유전자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라’는 부친의 올바른 정신을 이어받았다.

이마는 복을 받는 마당이다. 부잣집 자손이라면 당연히 재물을 많이 받겠지만, 가난한 집 자손이라면 마당이 넓은 만큼 자신이 빗자루로 쓸어야 할 것도 많다. 일찍부터 일을 많이 해야 하는 팔자다.

코가 반듯하여 사람이 반듯하다. 코가 뾰족하고 얼굴이 갸름하며 미소 선인 법령이 칼로 그은 듯 뚜렷하여 상당히 깐깐한 성격이었다. 뾰족한 코는 직설화법을 구사했고 뚜렷한 법령은 바른 소리를 잘 했다. 여기에 갈매기 입술이라 언변이 뛰어났을 테니,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젊었을 때 사진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양끝이 내려온 눈썹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거나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해 처진 것이다. 눈꺼풀 선에는 각이 져 고뇌가 있었고 마음의 평화가 없었다. 눈이 옆으로 길어 길게 멀리 보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엔 관골도 나름 발달해 있었다. 그래서 40대 이후 명문대 교수로서, 유명 철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입은 꽉 다문 모습이다. 웃는 얼굴이 아니라 진지한 학자의 얼굴이다. 유능해보이지만 편안해보이지는 않는다. 치아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옥니다. 이를 악물고 고된 시기를 이겨낸 흔적이다. 입이 크고 입꼬리가 처지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받아들이면서 밝게 살았다.

중년의 얼굴과 102세의 얼굴을 비교해보자. 양끝이 처졌던 눈썹은 온데간데없고 초승달처럼 편안하게 곡선을 그리는 눈썹이 자리 잡았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으니 눈썹 산이 올라간 것이다. 눈썹 산이 올라가 눈두덩이 널찍해져서 세상에 더 베풀고 배려하며 살려 한다. 김 교수의 강의 중 아침 식사 메뉴가 기억에 남는다. 호박죽과 채소, 달걀반숙, 우유 등 매일 메뉴가 똑같다고 한다. 똑같은 메뉴가 좋은 이유 중 첫째가 준비하는 사람이 편하다는 것이다.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니 주는 만큼 대접을 받는다.


눈이 처져 작아지면서 각이 없어졌다. 고뇌가 사라지고 생각은 더 깊어졌다. 작은 눈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나이 들었어도 놓치는 거 없이 해내는 눈이다.

‘나는 나야’를 내세우지 않아 관골이 갸름해져 격조를 갖추게 되었고, 자신의 위상을 보여주는 코는 더 높아 보인다. 그는 오래 사는 비결로 ‘정신은 상류층, 경제는 중산층’으로 욕심 없이 사는 것이라 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베풀며 사는 삶의 태도가 그의 격조를 높여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양쪽 콧방울의 탄력이 아직도 좋다는 것이다. 놓치지 않고 잘 챙기는 콧방울이다. 코끝도 둥글고 탄력 있다. 청년처럼 활동하는 에너지가 코에 담겨 있다.

김 교수의 요즘 사진은 거의 활짝 웃고 있다. 천진한 웃음으로 보는 이도 덩달아 기분 좋게 한다. 나이 들어 꽃이 핀 얼굴이다. 자주 웃어 뺨에 보드라운 살이 붙어 턱까지 여유가 생겼다. 선명하던 법령이 옅어지고 성격도 여유가 생겼다. 김 교수는 65세 이후가 자신의 전성기였고, 75~76세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뺨과 턱에 해당하는 시기다. 그 행복한 시기에 살이 붙은 것이다.

갸름한 얼굴은 새로운 도전보다는 일편단심 한결같이 그대로 가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70여 년 한눈팔지 않고 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며 한 학문에 매진해온 ‘한국 철학계의 거목’ 김형석 교수는 그 전형이다.

김 교수의 강의 중에 가장 가슴을 울리는 말씀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우리 제자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김형석 교수는 앞으로 3년 더 현재처럼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많은 후학들에게 ‘100년의 지혜’를 전해주는 이 귀한 어른을 앞으로 10년 더, 아니 그보다 더 오래오래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