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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 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육사 군사사학과 외래교수, 3사 초빙교수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 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육사 군사사학과 외래교수, 3사 초빙교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분쟁 지역인 돈바스를 노릴 것이라는 통념을 넘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 국토를 유린했다. 전력(戰力) 차이는 엄청났다. 다들 러시아가 이길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끈질겼다. 러시아의 잇단 협박도, 사이버전과 온갖 루머 및 여론전에도 국론은 분열되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자 오히려 나라를 지키겠다고 재외국민이 모여들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활약도 눈부셨다. 한반도 천동설에 갇혀 국제 정치를 모르는 국내 정치권은 그를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폭거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젤렌스키를 칭송했다. 수많은 국가의 의회에서는 의원 전원이 참석하여 젤렌스키의 원격 연설을 경청했다. 그러나 국제 정치와 담벼락을 쌓은 여의도에서는 국회외교통상위 의원 일부가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러시아의 행동은 유엔(UN) 중심의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경멸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가 서구와 가까워지는 것을 막고 속국화하려는 러시아의 행동은 다른 나라의 주권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국제 질서의 기반인 베스트팔렌 체제조차 부정하는 전근대적 행위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정치인 일부는 젤렌스키의 태도가 러시아의 침공을 불러왔다며, 국제 질서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를 자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안보의 관계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선 동맹이 없으면 전쟁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적국이 핵으로 무장했다면 핵보유국인 동맹의 핵우산을 써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군사동맹을 맺지 못했고 미국과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나라도 아니다. 따라서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하더라도 현 상황에 개입할 법적 근거나 의무가 없다.

둘째 러시아나 중국 등 수정주의 강대국은 이웃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모든 술책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에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과 나토에 가입하면서 유럽 경제권에서 번영을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친러 정치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민심 분열을 이용해 대통령이 된 이후 러시아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펼치다가 결국 유로마이단 사태로 전 국민이 봉기하자 러시아로 망명했다. 영향력이 감소하자 러시아는 크름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을 봉기시켜 내전 상태로 만들었다.

셋째 국제 질서가 기능하지 않는다면 약소국은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균형 외교를 하지 못해 전쟁에 휩쓸렸다고 말한다. 이는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애초에 약소국이든 강대국이든 국가 간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하지 않기 위해 국제 질서가 존재한다.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벌였기에 세계 각국이 러시아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남긴다. 애초에 대한민국은 독립 이후 북한의 불법적이고 기습적인 남침으로 국가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 그러나 유엔 개입과 참전국의 활약으로 겨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미국과 안보동맹을 통해 북한이나 중국과 충돌을 피해왔다. 한·미 동맹이 없었으면 우리는 진즉에 북한은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공격이나 침략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에 경도된 정치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 세계 각국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미국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국제 질서의 향방이 결정된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 질서가 유지될 것이냐 아니면 그러한 영향력이 쇠퇴하고 러시아와 중국이 발흥하며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향할 것이냐의 문제다.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개입해야만 하지만,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이 힘겨워 직접적인 전쟁 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한계는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푸틴의 침공은 나토가 강화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의 국방비 투입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유럽을 압박했었다. 특히 독일이 말을 듣지 않자 주독 미군의 철수까지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던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전투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은 물론,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국방비 증액을 시작했다. 러시아와 애매한 공존을 추구하던 핀란드나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미국의 전략적 방향을 암시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해왔고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전쟁 이전부터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장비를 제공하고 새로운 전술을 훈련시켰다. 전쟁이 시작되자 다양한 첩보 자산과 정찰기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전장 정보를 제공했다. 현대 전쟁의 핵심 역량인 지휘 통신 네트워크를 제공하기 위해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를 지원했다. 그러나 그 비용은 미국 정부가 지불했고, 결국 민간의 지원 활동도 미국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출구전략으로는 외교를 택했다. 전쟁은 무력이 아니라 외교로 종결된다. 따라서 외교협상에서 우세한 고지를 점하도록 우크라이나의 군사작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를 제2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만들어 러시아의 군사력을 최대한 고갈시키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1951년 중반 이후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고지전을 치르던 우리처럼 우크라이나군도 더욱 치열하게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

북핵 위협을 제외한다면 현재 한·미 안보 현안 가운데는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가 가장 큰 이슈다. 나토 회원국의 지원만으로는 전투 장비와 탄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자, 미국은 방위 산업 기반이 든든한 한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혹자는 지원 성공 여부가 한·미 동맹 복원의 관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의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대한 해답과 성과를 들고 참석해야 한다.

도대체 왜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할까. 냉전은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가화, 중국의 공산화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자유무역은 쇠퇴하고 세계화가 저지되는 가운데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고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하고 크름반도를 삼켰다. 북한이 잇단 핵실험으로 핵무장을 추구한 것도 이러한 혼란이 있었던 덕분이다. 한국전쟁이 냉전의 시작을 공식화했듯이,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도 공식화될 것이다. 신냉전의 시대는 구냉전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진영이라고 잘못을 무조건 용납하지 않으며 인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의 지배 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 국제 질서는 ‘규칙에 의한 질서(Rules-based Order)’로 정의된다. 이러한 규칙이 지켜져야 대한민국 같은 중견 선진국도 성장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의무를 실행해야만 한다. 러시아의 경제 보복이 두려워 규칙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다면, 그 질서는 더 이상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