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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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상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엄마 심리 수업’ 저자

얼마 전 서울 중부 지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가 났다. 피해자들은 경제적·신체적·심리적 피해로 무척 힘들 것이다. 매일매일 사건 사고다. 자연재해뿐 아니다. 아파트가 무너지고, 병원에 불이 나고, 교통사고에, 묻지 마 폭력까지 트라우마의 세상이다. 

트라우마는 원래 ‘신체적, 정신적 외상(外傷)’을 모두 뜻하지만, 정신의학에서는 신체적 외상보다 심리적 외상을 의미한다. 트라우마는 한 마디로 ‘정신적 충격’이다. 트라우마의 증상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재난 상황의 재경험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당시 상황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불안·긴장과 같은 심리적·생리적 반응이 동반된다. 둘째는 무감각과 회피다.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감각을 무디게 하고 피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생활도 축소된다.

셋째는 과도한 각성이다. 작은 일에 깜짝깜짝 놀라고, 잠도 잘 못 자고, 또 다른 피해가 오지 않을까 늘 예민하다. 정신의학에서는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 내리고 치료한다.

트라우마 치료의 핵심은 사건에 대한 노출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니 빨리 잊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잊어버리고 숨기면 무의식 속에 숨어서 더 난리 치기 때문이다. 배 속에 암세포가 있다면 아프더라도 배를 열어 수술해야 하듯 트라우마도 꼭꼭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드러내서 새로운 빛을 줘야 한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일이니 잊어버리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으로 힘 있고 건강하게 다시 재통합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라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트라우마가 큰 재난이나 큰 사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는 객관적인 사건의 심각도와 무관하게 주관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팀장에게 야단을 맞고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팀장을 피하게 된다면 트라우마를 받은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트라우마의 연속이다. 큰 트라우마로 생활이 힘들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작은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겪은 일을 남들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 일이라고 덮고 숨기면 안 된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내가 그런 일을 겪었고 지금도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힘든 마음을 풀어내고 사건을 건강하게 재인식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작은 트라우마에 효과적인 자가 치료법이 있다. 눈동자를 좌우로 20회 정도 움직이는 눈 운동을 3번 이상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불쾌한 기억이 반복되거나 불안이 올라올 때, 양측으로 눈 운동을 반복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트라우마를 겪을지 모르는 세상이다. 트라우마를 장애로 남기는 게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