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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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근감소증을 비롯한 노인의학 진료를 하다 보면 식사에 대한 자세한 면담이 당연히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양성분에 대한 통념을 확인하는데, 그중에도 무척 강력해 깨뜨리기 어려우면서 건강과 사회 측면에서 여러 가지 파급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통념은 아무래도 비싼 고기가 몸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여러 의학적, 생물학적 변화는 근육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과학적 관찰이 와전된 것이다. 전 국민의 ‘고단백’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고, 저탄수화물 식이가 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붉은 고기에 대한 심리적 면죄부를 발부했다. 여기에 비싼 것, 귀한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근내 지방이 많은 붉은 고기를 더욱 선호하는 풍조를 만들고 있다. 부모님의 근육 건강을 위해 매 끼니 한우 안심을 100g씩 드린다는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좋은 음식은 어떤 음식일까? 우선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음식의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적절 체중이나 적절 체지방률을 넘어서는 대부분의 젊은 성인 인구에게는 대사 질환과 혈관 노화를 예방하고 인지기능과 마음건강을 좋게 만들 수 있는 경박단소(輕薄短小)한 음식이 가장 좋다. 이러한 음식을 모아놓은 여러 가지 장수 식단이 있는데, 특히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것으로 지중해 식단을 들 수 있다. 갈지 않은 충분한 양의 통곡물과 풍부한 채소를 중심으로 약간의 생선, 가금류, 올리브유를 곁들이는 식사 패턴을 의미한다. 덜 깎아낸 쌀과 콩, 보리와 채소를 먹던 옛 한국인의 음식도 이와 비슷했다. 의외로 많은 이가 지중해 식이라고 안심하며 즐기는 풍족한 치즈, 고기, 와인은 오히려 실제 지중해 식이에서는 아주 소량 곁들일 뿐이다.

식욕과 씹고 삼키는 능력, 소화 기능이 떨어지며 체중과 근육량이 저절로 축이 나는 노년기에는 이보다는 조금 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저작과 소화가 용이한 음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붉은 고기나 유제품이 최선의 영양소라는 것은 아니다. 여러 연구는 단백질 공급원의 차이가 실질적인 근육 건강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붉은 고기를 과량 섭취하면 만성 염증을 악화시키고 심혈관계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장수 식단도 붉은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때문에 많은 이가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고, 제대로 고기를 먹지 못해 단백질 결핍에 시달릴 것을 우려하는 기사를 접한다. 하지만 렌틸콩이나 귀리 등 통곡물을 활용해 밥을 지으면 이것만으로도 흰 밥에 붉은 고기를 곁들인 식사만큼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이러한 식사는 오히려 편의점에서 사 먹는 가공식품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든다.

재밌게도, 지중해 식단은 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지키는 식단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비싼 음식이 왜 비싼지를 들여다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의 상승이 비료와 살충제로 만들어진 사료의 생산비·수송비로 전이된 탓에, 붉은 고기는 값비쌀 수밖에 없다. 이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그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와 같은 셈이다.

지금은 인구 100억 명을 바라보는 지구인이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을 이룩해야 하는 시대인 동시에 고령화를 경험하는 시대다. 많은 것이 귀해지고 있지만, 정작 내 몸에 좋은 음식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비싼 것이 좋은 음식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장수 식단의 지혜를 통해 나에게 꼭 맞는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