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조선일보 DB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조선일보 DB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지금은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와 오래전 골프를 함께한 적이 있다. 골프 그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넘치는 유익한 라운드였다. 흥미진진한 18홀 세미나를 한 것이다. 어떤 홀에서 갑자기 고라니가 페어웨이에 나타났다. 모두 푸른 잔디 위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고라니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한다. 

“윤 박사, 고라니 눈은 어디에 달려있는지 아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했다. “예, 머리통에 달려있습니다.” “머리통 어디에 달려있나요?” 그다음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는데 이런 설명을 한다. 고라니나 사슴 같은 순한 동물은 눈이 머리통 옆쪽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사방을 경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자와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들은 눈이 머리통 앞에 몰려있다. 경계할 천적이 없고 눈앞의 사냥감만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눈이 머리통 어디에 붙어있는지만 봐도 지속 가능의 비밀을 알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생명체에는 의미가 숨어있으니까요.”

“교수님, 오늘 좋은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눈이 몰린 사람과는 가급적 시비를 걸지 않겠습니다.” “역시 당신은 심리학 전공이라 눈치가 빨라.”

이 교수는 홀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즉흥 세미나를 했다. 어느 홀에서는 대나무밭이 보이자 대나무의 원산지부터 대나무의 문학적 의미와 죽부인의 과학적·심리적 기능까지 들려줬다. 모두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참으로 박학다식한 지식인이었다. 

이 교수의 전공은 무엇일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은 철학과를 다녔다. 그 후 단국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와 소설가로 활동했으며 한동안 프랑스와 일본에 머물면서 연구 활동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연구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파고 이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정보나 지식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융합적으로 보는 통섭의 지식인이다.

이 교수의 수많은 저서 중에 2006년에 나온 ‘디지로그(Digilog)’라는 책이 있다. 인류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융합한 ‘디지로그 방식’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먼저 컴퓨터와 정보기술(IT) 세계를 공부하고 활용했다. 우리 민족은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가 만나는 곳에 살면서 융합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제부터 선진국 진입이 빨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지니게 된 것이나 BTS, ‘오징어 게임’ 등 한류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디지로그 활용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가치를 융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거대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거나 융합하는 것이다. 컬래버레이션이 급속히 확산한 것은 정보화 사회의 진전과 연관이 있다. 서로 다른 학문, 직업, 문화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컨버전스, 크로스 오버, 퓨전, 커넥티드⋯. 정보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자주 쓰게 된 용어들이다. 모두 융·복합을 의미한다. 인류가 융·복합 창조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를 이끈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창조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개인도 기업도 융합 창조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융합하는 것이 바로 컬래버레이션이다. 다른 생각, 다른 전공,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현대판 문맹(文盲)이다. 협업을 잘하려면 먼저 ‘다름(異)’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