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보석이 있다. 까르띠에, 불가리 등과 함께 전세계 5대 보석 브랜드로 사랑받는 모브쌩(Mauboussin)의 보석 장신구와 함께라면 당신의 여자가 더욱 아름다워진다. 최근 서울의 압구정에 위치한 갤러리아 명품관 EAST 1층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 모브쌩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1. 1926년 제작한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로 나뭇잎을 형상화한 브로치 시계 2. 1955년 제작된 Etoile de Mer 3. 모브쌩의 유색석으로 만든 Ma Princesse D Amour ring 4. 모브쌩의 에뜨왈 에뜨왈 컬렉션
1. 1926년 제작한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로 나뭇잎을 형상화한 브로치 시계
2. 1955년 제작된 Etoile de Mer
3. 모브쌩의 유색석으로 만든 Ma Princesse D Amour ring
4. 모브쌩의 에뜨왈 에뜨왈 컬렉션

프랑스 명품 주얼리 하우스 모브쌩(Mauboussin)은 하이 주얼리의 메카로 불리는 파리 방돔 광장부터 뉴욕 매디슨, 일본 긴자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30여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 5대 보석 브랜드 중 하나다.

희망을 주는 별모양 심벌로 유명한 모브쌩의 역사는 18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왕정복고시대에 주류를 이루던 예술 풍조인 낭만주의 옹호자들은 장식예술(decorative arts)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모브쌩의 창시자인 로쉐(Mr. Rocher)가 파리 그르네타가 64번지(Paris 64 rue Greneta)에 보석 가계를 열었다. 1869년 로쉐는 동료 세공사인 쟝-밥티스트 누리(Jean-Baptiste Noury)에게 보석 상점을 물려줬다. 쟝-밥티스트 누리는 1873년 빈, 1878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참가해 모브쌩의 우수한 품질의 보석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브랜드명은 ‘하우스 오브 누리(The House of Noury)’였으나, 1922년 누리의 조카인 조르주 모브쌩이 계승을 하면서 브랜드 명칭을 변경했다.

1.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 1층에 오픈한 모브쌩 매장 전경 2. 하이주얼리 제작 모습 3. 조르쥬 모브쌩과 피에르 모브쌩이 폴 클로델에게 나삭 다이아몬드를 소개하는 모습 4. 모브쌩 현재 방돔 매장
1.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 1층에 오픈한 모브쌩 매장 전경
2. 하이주얼리 제작 모습
3. 조르쥬 모브쌩과 피에르 모브쌩이 폴 클로델에게 나삭 다이아몬드를 소개하는 모습
4. 모브쌩 현재 방돔 매장

아르데코의 시초

모브쌩의 3대 계승자인 조르주 모브쌩은 1923년 고급 상점들이 위치한 파리의 중심 오페라 광장(Place de l’Opera) 근처 슈아죌 가 3번지(3 rue de Choiseul)로 상점을 옮겼다. 모브쌩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장식예술박람회(Exhibition of Decorative Arts)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부터다. 모브쌩의 제품들은 강한 색상과 뚜렷한 대조, 색다른 테마의 재질들이 조합을 이룬다. 보석뿐 아니라 동양의 비취, 중동의 진주, 에나멜, 산호와 청금석, 백금, 진주같이 이국적인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1933년에는 아르테코 스타일의 전문가인 인도르(Indore)의 마하라자 야쉬완트 라오 홀카(Yashwant Rao Holkar)의 공식 보석상으로 임명되면서, 중동 왕가의 특별 주문에 따라 보석을 제작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뉴욕의 트라버스 & 회퍼(Travert & Hoeffer)와 파트너쉽을 맺고 미국 전역에 지점을 열면서 유럽과 미국 양 대륙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중동, 유럽, 이집트 왕실 귀족은 물론이며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파울레트 고다드(Paulette Goddard), 오드리 햅번(Audrey Hapburn) 같은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모브쌩 제품을 애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1930년대는 모브쌩에서 처음 시계라인을 구축한 시기이기도하다. 그 후 모브쌩은 1946년에는 방돔 광장으로 상점을 이전했고, 1955년에는 방돔 광장에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기성 주얼리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0년도는 모브쌩에게 새로운 자극이 된 시기다. 바로 2002년 도미니끄 프레몽(Dominique Fremont)이 하우스를 인수하면서 사회의 관점과 재정적인 조건만으로 보석들을 만드는 감상적인 꿈에 젖어 있을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 그는 오랫동안 지속된 모브쌩의 이미지를 변신시키기 위해 패션계에 있던 알랭 네마르끄(Alain Nemarq)에게 이미지 변신을 맡겼다. 단지 진열장을 보면서 감탄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일한 언어로 소통하기를 원했던 것. 고객과 제품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히고자 실용적인 제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모브쌩은 ‘고객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보석이라는 것이 이상적이고 접하기 어렵다는 문화적 인식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6대에 걸친 전통과 노하우에 시대에 맞는 감성을 가미한 모브쌩이 한국에 처음 매장을 오픈한 것은 2009년 5월이다. 현재 국내에서 모브쌩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갤러리아 명품관과 서울 광장동 워커힐 면세점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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