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넘게 의자만 보면 사랑에 빠지는 남자, 유명한 디자인 컬렉터이자 평론가인 알렉산더 폰 페게작(Alexander Von Vegesack) 비트라디자인박물관(Vitra Design Museum) 명예위원장이 한국을 찾았다. 광주비엔날레와 ‘장 프루베-첫 오브제’의 고별전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9월18일 서울 청담동 비트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났다.

‘수십, 수백년 된 가구가 현대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자칫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이 비트라(Vitra)에서는 현실가능한 일이다. 의자와 사무 가구의 명가로 불리는 비트라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가구들은 과거 유명 디자이너들의 명 작품들을 바로 지금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만든다.

많은 가구 중에서도 ‘의자’에 마음을 빼앗긴 남자, 알렉산더 폰 페게작(Alexander Von Vegesack) 비트라디자인박물관(Vitra Design Museum) 명예위원장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1989년 비트라디자인박물관을 설립한 뒤 20년 넘게 관장으로 활동해 왔다. 그리고 현재는 2011년 퇴임한 후 명예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재단에서 독립된 미술관 운영으로 세계순회전시, 워크숍 프로그램, 젊은 디자이너 교육프로그램, 미니어처 사업 등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인터뷰가 이뤄진 다음날도 아시안뮤지엄프로젝트 회의차 홍콩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한단다.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199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동안 4차례의 비트라디자인미술관 순회전시를 진행했고, 2009년에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국제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9월7일부터 11월11일까지 열리는 제9회 대구비엔날레를 둘러보고,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장 프루베(Jean Prouve)의 1차 고별전을 소개하기 위해 방문하게 됐어요.”

그는 개인적으로도 장 프루베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장 프루베는 가구와 건축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수공업 시대의 장인 기술을 지녔고 이를 토대로 대량 생산화의 산업시대로 이행한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시에 실용주의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트라에서는 올해초 장 프루베 작품의 스페셜 에디션 ‘프루베 로(Prouve RAW)’를 선보였고, 마무리의 의미로 오는 10월10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에서 ‘장 프루베-첫 오브제’라는 주제로 프루베 로 에디션 고별전 1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장 프루베 삶에 대한 존경의 의미하에 기획된 전시로, 쉽게 보기 힘든 프루베의 건축물과 그가 직접 만든 가구들을 영상과 실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장 프루베의 작품은 언제 봐도 늘 독창적이고 새로운 느낌이에요.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이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는 비트라에서 제작하고 선보이는 모든 제품들에 애착이 간다고 강조했다. 비트라에서 선보이는 모든 제품들이 몇 십년 동안 그 세대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을 모은 것이고 동시에 모든 제품에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구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사용하면서 느껴지는 편안함, 즉 기능성까지 고려해 가구를 만드는 그들은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그에게 디자인과 가구란 “존경심의 대상”이란다.

프랑스 파리 비트라디자인박물관.2012년 여름 보부쉐 워크숍 전경(위).
프랑스 파리 비트라디자인박물관.
2012년 여름 보부쉐 워크숍 전경(위).

오감으로 경험하는 디자인 교육

현재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신진 디자이너 양성에 있다. 실은 오래전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 때부터 신진 디자이너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 결실은 1986년 보부쉐(Boisbuchet) 디자인 워크숍으로 완성된다. 파리에서 테제베로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보부쉐는 16세기부터 19세기 사이 건축된 성과 별관, 농장과 풍차 등이 그림 같은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는 15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이곳에 단지를 조성하고 프랑스 국제 교육문화센터와 파리 퐁피두 센터를 파트너로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제 디자인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진행하는 여름 캠프에는 400~5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온갖 종류의 디자인 교육을 받는다. 여름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건축가 반 시게루,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 의자 디자이너 론 아라드 등 책에서만 보던 작가와 함께 고성(古城), 마구간을 개조한 숙소에서 합숙하며 디자인 공부를 한다. 디자인 제품 개발, 건축, 조명, 주얼리, 종이 등 총 30여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디자인의 과정과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 그 자체를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대로 된 디자인 교육이란 흙과 세라믹, 천과 유리 등 모든 디자인 자재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온갖 방법으로 재료를 경험한 후에야 제대로 된 디자인이 탄생하는 법이죠.”

보부쉐 스쿨을 수료한 많은 학생들이 현재 전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가구 설치 디자이너로 유명한 마르텐 바스다. 패게작 명예 위원장은 “결국 디자인의 미래는 젊은 세대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 학생들은 실용적인 것보다 추상적이고 겉으로만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좋은 가구는 겉만 화려해서는 안 돼요. 일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진정한 가구로 탄생하죠. 개인적으로 젊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 기존 있었던 디자인을 실생활에서 보다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그 제품으로 인해 우리 삶의 질이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행복하지 않나요.”

▒ 알렉산더 폰 페게작 비트라디자인박물관 명예위원장은…

1960년 디자인 제품 컬렉팅을 시작했으며, 1988년 비트라의 최고경영자(CEO)인 랄프 펠바움과 함께 비트라디자인미술관을 설립했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2008년 이탈리아 토리노 컬렉션이 있다. 지난 2011년 비트라디자인미술관에서 퇴임 이후 명예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에는 프랑스 보부쉐디자인워크숍을 설립했으며, 현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