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들고 있다. 페보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 전까지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피를 나눠 오늘날 사람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음을 밝혔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들고 있다. 페보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 전까지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피를 나눠 오늘날 사람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음을 밝혔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류가 태고 이래 늘 고민해왔던 질문에 유전자 차원에서 답을 제시한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10월 3일(현지시각)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67) 교수가 멸종한 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와 유전자를 나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공로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라고 밝혔다.

통상 노벨 생리의학상이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개발한 과학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멸종한 고인류가 남긴 유전자에 따라 질병에 대한 면역반응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의학의 연구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오늘날 사람 몸에 남아 있는 고인류 유전자가 면역 체계에서 감염에 반응하는 방식과 생리학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라고 평가했다.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이주하면서 유럽에 이미 정착한 네안데르탈인, 아시아의 데니소바인과 유전자를 나눴다. 그 결과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2% 남았으며, 데니소바인 유전자도 최대 6%까지 발견된다. 사진 노벨재단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이주하면서 유럽에 이미 정착한 네안데르탈인, 아시아의 데니소바인과 유전자를 나눴다. 그 결과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2% 남았으며, 데니소바인 유전자도 최대 6%까지 발견된다. 사진 노벨재단

현생 인류 DNA에 남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3만 년 전 멸종하기까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수만 년간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으로 이주했다. 최근 두 인류가 공존하는 동안 서로 피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가 현생 인류의 DNA에 남아 있다. 페보 교수는 2010년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여성 네 명의 뼈 화석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아시아인과 유럽인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2% 갖고 있었다. 개인마다 달리 가진 네안데르탈인 DNA를 모두 합치면 현생 인류 전체로는 네안데르탈인 DNA의 약 20%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로 다른 인류 조상이 피를 나눈 사례는 또 있다. 페보 교수는 아시아에서 살다가 멸종한 데니소바인 역시 호모 사피엔스와 유전자를 교환했음을 알아냈다. 데니소바인은 2008년 손가락뼈와 어금니가 처음 발견된 시베리아의 동굴 이름을 딴 고인류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같은 호모속(屬) 인류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왔을 때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있었고, 동쪽 아시아는 데니소바인의 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페보 교수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와 데니소바인이 피를 나눈 결과, 오늘날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은 데니소바인의 DNA를 6%까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역시 접경 지역에서 만나 사랑을 나눴다. 페보 교수는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뼈 화석의 DNA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멸종 인류가 남긴 유전자로 코로나19도 견뎌

페보 교수는 고인류 연구에 유전자 분석을 도입해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이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유전체학은 인류의 기원을 새로 밝혔을 뿐 아니라 오늘날 질병 연구에도 새로운 길을 열었다. 대표적인 예가 데니소바인이 물려준 EPAS1 유전자다. 티베트인은 이 유전자 덕분에 고산 지대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 물려준 유전자 덕분에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와도 싸울 수 있었다. 페보 교수는 지난해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세 개가 코로나19 중증 위험을 22% 낮춘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로나19 환자 2200여 명의 유전자를 5만 년과 7만 년, 12만 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화석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12번 염색체에 있는 OAS1, OAS2, OAS3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형태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중증으로 발전하는 위험이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OAS 유전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유전 물질로 RNA를 가진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효소를 생산한다.

페보 교수는 2020년 9월 ‘네이처’에는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로나19 증상이 심한 사람 약 2000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3번 염색체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중증이 될 위험이 두 배나 높게 나왔다. 페보 교수는 이에 대해 현생 인류가 3번 염색체보다 12번 염색체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어 결과적으로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코로나19를 막는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 복원도 시도

독일에서 페보 박사의 직계 제자와 함께 연구한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페보 교수는 죽은 지 오래된 생물 유해에서 유전체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을 독보적으로 개척한 사람”이라며 “질병과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누군가 노벨 의학상을 받는다면 페보 교수가 받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페보 교수는 최근 줄기세포로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니 뇌는 오가노이드(organoid)로 불리는 미니 장기(臟器)의 일종이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 오가노이드는 세포를 입체로 키우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사람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초기 단계인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들었다. 이후 효소 단백질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신경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세 개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형태로 편집했다. 이제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자라게 하면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네안데르탈인 신경세포 연구가 성과를 보였다. 페보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월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가 현생 인류와 다른 발생 과정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뇌 신피질의 신경줄기세포를 관찰했더니, 네안데르탈인에게서는 염색체 분리 과정에서 현생 인류보다 오류가 두 배나 많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벨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시상식을 건너뛰었던 2020년과 2021년 수상자들도 초청된다. 페보 교수는 1000만크로나(약 13억원)의 상금을 받는다.


Plus Point

스반테 페보 교수는 누구? 
역사상 7번째 父子 수상 기록

스반테 페보 교수는 195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웁살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취리히대와 미국 UC 버클리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1990년 독일 뮌헨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1999년 라이프치히에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를 세워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의 겸직교수도 맡고 있다. 페보 박사의 아버지 수네 베리스트룀(Sune Bergström)도 지난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아, 부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부자의 노벨상 수상 기록은 이번이 일곱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