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가 형광 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미니 뇌는 쥐 뇌의 한쪽 반구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사진 스탠퍼드대
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가 형광 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미니 뇌는 쥐 뇌의 한쪽 반구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사진 스탠퍼드대

할리우드 영화 ‘닌자 터틀’에는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쥐가 사부로 나와 어린 거북들에게 무술을 가르친다.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인간 미니 뇌를 쥐에게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사람의 신경 질환을 쥐 같은 작은 실험 동물에서 연구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가진 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 연구진은 10월 13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배양 용기에서 키운 뇌 ‘오가노이드(organoid)’를 어린 쥐에 이식해 신경세포들이 통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을 말한다. 미니 장기(臟器)라고도 불린다. 뇌 오가노이드는 미니 뇌인 셈이다. 이번 실험에서 쥐가 받은 감각은 인간 미니 뇌로도 전달됐으며, 반대로 인간 미니 뇌를 자극하면 쥐의 행동이 바뀌었다. 인간과 쥐의 뇌가 신경세포 차원에서 통합됐다는 말이다.


미 스탠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가 미니 뇌가 들어있는 배양 용기를 보고 있다. 배경은 미니 뇌. 사진 스탠퍼드대
미 스탠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가 미니 뇌가 들어있는 배양 용기를 보고 있다. 배경은 미니 뇌. 사진 스탠퍼드대

인간 미니 뇌가 쥐의 감각 처리

이전에도 과학자들은 인간 뇌세포를 몸 밖에서 키워 실험했지만, 평면 배양 용기에서 키우다 보니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오가노이드는 인체 내부처럼 세포들이 삼차원 공간에서 입체로 자라 그런 문제가 없다.

연구진은 신경줄기세포를 입체로 배양해 콩알만 한 크기의 미니 뇌로 키웠다. 미니 뇌를 생후 3~7일 된 어린 쥐에게 이식했다. 미니 뇌가 이식된 곳은 감각 신호를 처리하는 체성 감각 대뇌 피질이었다. 쥐가 자라면서 미니 뇌도 커졌다. 6개월쯤 지나자 미니 뇌는 처음보다 6배로 커졌으며, 쥐 뇌의 한쪽 반구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인간과 쥐의 뇌가 하나로 연결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쥐에게 물을 주며 빛을 비추는 실험을 했다. 쥐는 나중에 물을 주지 않고 빛만 비춰도 혀로 핥았다. 조건반사 반응을 보인 것이다.

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는 빛을 감지하는 로돕신 단백질을 만들도록 했다. 쥐의 뇌에서 인간 미니 뇌 부분에 빛을 비추자 물을 주지 않았음에도 역시 혀로 핥는 행동이 나타났다. 미니 뇌가 처리한 빛 신호에 따라 조건반사 행동이 유발된 것이다. 인간과 쥐의 뇌가 통합됐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쥐의 수염을 건드려도 역시 미니 뇌가 반응했다. 쥐가 받아들인 감각 신호를 인간 미니 뇌가 처리한 것이다. 파스카 교수는 논문 발표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미니 뇌가 쥐의 뇌와 통합되는 데 성공한 것을 보여준다”라며 “마치 전자회로에 새로운 트랜지스터를 추가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의 신경세포(오른쪽)는 배양용기에서 키운 인간 신경세포(왼쪽)보다 훨씬 잘 자랐다. 사진 스탠퍼드대
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의 신경세포(오른쪽)는 배양용기에서 키운 인간 신경세포(왼쪽)보다 훨씬 잘 자랐다. 사진 스탠퍼드대

신경치료제 효과, 쥐에서도 확인 가능해져

그동안 과학자들은 미니 뇌로 퇴행성 뇌 질환이나 정신 질환의 발생 과정을 규명하고 치료제 효과를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직 오가노이드는 인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혈관이 자라지 않아 영양분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신경세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실제 뇌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인간 미니 뇌를 쥐의 뇌와 통합하면 영양분을 공급받고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작은 실험 동물에서도 인간의 신경 질환을 더 잘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인간과 쥐의 하이브리드 뇌로 신경 질환을 연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먼저 자폐 증상을 보이는 티모시 증후군 환자 세 명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미니 뇌를 만들었다. 이를 쥐의 뇌에 이식했더니 다른 미니 뇌보다 성장이 더디고 신경 신호도 잘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천성 뇌 질환의 근본 원인을 연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파올라 아를로타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오가노이드로 뇌의 복잡한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성과”라며 “다음 단계는 개별 인간 신경세포도 쥐의 뇌에 통합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 미니 뇌를 동물에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소크 생물학연구소의 루스티게이지 교수는 지난 2018년 미니 뇌를 다 자란 생쥐의 뇌에 이식했다. 하지만 생쥐(mouse)는 이번에 실험한 쥐(rat)보다 몸집이 작고 수명이 짧아 미니 뇌가 동물의 뇌와 완전히 통합되는지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분자생명공학연구소의 위르겐 크노블리히 소장은 영국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오가노이드를 생쥐보다 더 큰 쥐에 그것도 어릴 때 이식해 이전보다 더 발달할 수 있도록 하고 쥐의 행동으로 뇌의 통합 여부를 알아보는 등 연구 방법에서 진전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간 뇌에 대한 실험을 비슷한 영장류에 하지 못하고 쥐나 생쥐 같은 작은 동물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작은 동물의 뇌는 인간과 달라 한계가 있었지만 (쥐의 뇌에 이식하는) 오가노이드 모델은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윤리 논란을 우려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하이브리드는 동물에게 해를 주거나 인간 의식을 가진 동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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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의식 가진 쥐 나올까 우려도

과학계는 지나친 우려라고 본다. 파스카 교수는 미니 뇌가 쥐에게 발작과 기억 손상을 유발하거나 행동을 심각하게 바꾸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 국립과학공학의학한림원도 “뇌 오가노이드는 의식을 가지기에 미숙한 단계여서 인간 같은 지능을 얻거나 법적 규제가 필요한 다른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과학계와 사회의 대화는 꼭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바버라 트뤼틀라인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같이 발표한 논평 논문에서 “인간의 신경 조직을 다른 동물과 신경 회로 차원에서 통합하면 신경 회로 발달을 연구하고 신경 질환 치료제를 검증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도 “뇌 오가노이드가 의식이나 도덕적 지위를 가지는지, 연구의 한계는 어디까지 둘지 연구자와 생명윤리학자, 규제 당국과 대중이 활발하게 논의할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