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최대 테크노 댄스 축제 ‘러브 퍼레이드’에서 3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최대 테크노 댄스 축제 ‘러브 퍼레이드’에서 3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이하 이태원 참사)는 과거 전 세계에서 발생한 유사 사고처럼 좁은 공간에 밀집된 군중이 제때 빠져나오지 못해 일어났다. 과거 사고 사례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군중 압박이 시작되면 현장에서 사고를 막지 못하고, 예방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군중 행동을 예측하는 연구를 통해 미리 예방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시각으로 판단한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 출구로 갈 때 최단 경로(붉은 선)를 찾지만, 충돌을 피하려고 눈앞 사람의 뒤쪽(파란 선)으로 향한다. 사진 PNAS
사람이 시각으로 판단한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 출구로 갈 때 최단 경로(붉은 선)를 찾지만, 충돌을 피하려고 눈앞 사람의 뒤쪽(파란 선)으로 향한다. 사진 PNAS

군중 밀집도 한계를 2배 이상 넘어

과학자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군중 충돌(crowd crush) 또는 군중 밀려듦(crowd surge)’으로 묘사했다. 

영국 서퍽대의 키스 스틸 교수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할 때 군중 밀려듦이 발생한다”며 “미는 운동이 발생하면 ‘도미노 효과’처럼 연이어 사람들이 넘어진다”고 말했다. 좁은 공간으로 파도가 밀려들면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다.

군중 쇄도(crowd stampede)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같지만 일정 간격을 두고 달리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와는 상황이 다르다. 스틸 교수는 군중 밀려듦 동안 발생하는 압력은 폐가 호흡을 위해 팽창할 공간을 없애고, 이 상태로 6분이 지나면 질식사에 이른다고 밝혔다. 사람은 30초만 뇌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스틸 교수에 따르면 1㎡ 면적당 사람 수가 2~3명까지는 밀집도가 높아지면 군중의 이동 속도도 비례한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면 속도가 급격히 감소한다. 6명을 넘어서면 서 있기 힘들어지고 작은 충격에도 넘어진다. 미국 토목공학회 석학회원인 존 프루인 박사는 1987년 저서 ‘보행자 계획과 설계’에서 밀집도가 1㎡당 7명이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밝혔다. 지하철 적정 인원은 1㎡에 3명인데 가장 붐비는 9호선은 출근 시간대에 7명에 이른다. 이태원 참사는 밀집도가 16명이 넘었다.

특히 사고가 난 이태원 골목은 경사도가 10%인 내리막이었다. 앞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디르크 헬빙 교수는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의 테크노 댄스 축제 ‘러브 퍼레이드’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지점도 병목지와 경사로의 특징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당시 최소 19명이 사망하고 340여 명이 다쳤다.


인공지능이 공중 촬영 영상을 토대로 사람 수를 추산하는 모습. 수작업보다 특정 공간의 사람 수를 0.03밀리초 만에 15% 정확히 추산했다. 사진 독일항공우주센터
인공지능이 공중 촬영 영상을 토대로 사람 수를 추산하는 모습. 수작업보다 특정 공간의 사람 수를 0.03밀리초 만에 15% 정확히 추산했다. 사진 독일항공우주센터

계획되지 않은 군중 밀집이 더 위험

군중 밀려듦은 여러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총소리가 나면 군중의 질주가 시작된다. 좁은 공간에 이미 밀집된 상태였다면 누가 밀거나 넘어지면서 발생할 수도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누군가 미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스틸 교수는 “이태원 참사는 조난 상태에 빠진 사람이나 빠져나오려던 사람이 유발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반응은 이미 군중이 넘어진 다음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세계 곳곳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최악의 사고는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성지 순례를 하면서 2400여 명이 사망한 일이며, 최근에는 10월 1일 인도네시아 축구경기장에서 130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문제는 이태원 참사는 콘서트나 운동경기, 성지 순례와 달리 주최자가 따로 없고 계획되지 않은 행사여서 사람이 얼마나 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메흐디 무사이드 박사는 “사람들이 어느 길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태원 현장에 경찰이 더 많이 있었어도 참사를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고 현장의 대응보다 예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예를 들어 메카 성지 순례에서는 무조건 일방통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인파가 물결처럼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이태원 골목에서는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 위험을 증폭시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3시간 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군중 밀려듦이 발생했지만 한 여성의 제안으로 일방통행을 하면서 무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 공간이라면 분할 펜스를 설치해 군중을 분산시키는 것도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분할 펜스가 만든 통로는 유사시 경찰과 의료진이 오가는 길도 된다.

개인 방어 행동도 필요하다. 무사이드 박사는 2019년 호주의 과학 매체인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몰리면 가능한 한 바로 서야 하며, 폐가 있는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가슴 높이로 유지해야 한다”며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 위험을 낮추기 위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군중 행동 예측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많이 쓰인다. 그림은 왼쪽부터 초당 40명, 80명, 120명이 네 방향으로 오가는 모습이다. 사진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군중 행동 예측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많이 쓰인다. 그림은 왼쪽부터 초당 40명, 80명, 120명이 네 방향으로 오가는 모습이다. 사진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시뮬레이션으로 군중 행동 예측

대형 압사 사고를 막으려면 사람들의 동선(動線)을 예측해 통로나 출입구를 적절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군중 충돌이나 밀려듦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밝히는 연구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방법이 컴퓨터 시뮬레이션(가상 실험)이다. 사람을 하나의 입자로 보고 통로나 출입구에 몰리는 상황을 물리학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상황과 많이 달랐다. 과학자들은 시각(視覺)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았다. 지난 2011년 헬빙 교수와 무사이드 박사 공동 연구진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사람이 서로를 볼 수 있다고 가정했더니 군중 행동이 실제 상황과 거의 같아졌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나와 출구 사이를 한 사람이 가로질러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도록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식이다.

군중 밀집 사고를 막기 위해 인공지능(AI)도 이용한다. 2019년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연구진은 AI로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특정 장소에 모인 사람 수를 측정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군중을 찍은 항공, 지상 사진 33장을 인공지능에 입력했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사람이 추산한 것보다 15% 정확하게 사람 수를 알아냈다. 속도도 불과 0.03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 1초) 만에 1㎡당 사람 수를 알아냈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를 많이 해도 현실에 적용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에서 10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봉쇄가 해제되고 대형 행사가 급증하면 압사 사고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태원의 군중 밀집은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뒤늦게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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