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KAIST 창업원장 전 중소기업청 벤처정책 과장·벤처투자과장,전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 산업관,전 청와대 중기비서관실행정관, 전 중소벤처 기업부 기술국장 사진 이신태 PD
김영태KAIST 창업원장 전 중소기업청 벤처정책 과장·벤처투자과장,전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 산업관,전 청와대 중기비서관실행정관, 전 중소벤처 기업부 기술국장 사진 이신태 PD

“지금까지 한국의 벤처 시장은 정부가 산업을 선도하는 ‘톱 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주지 않으면 위기에 쉽게 처하는 게 문제다. 이제는 스타트업이 자생하며 산업을 주도하는 ‘보텀 업(Bottom-up·상향식)’ 방식이 필요하다.”

최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본원에서 만난 김영태 창업원장은 국내 벤처 시장의 한계와 대응 방향을 이같이 밝혔다. 김 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를 기획한 인물이다. 팁스는 정부가 후속 지원만 하고 직접적인 투자는 경쟁 입찰 방식으로 선정된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팁스를 통해 2013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총 1442개 스타트업이 민간 기업에서 투자받은 금액만 5조8000억원에 달한다. 

김 원장은 앞으로 한국이 각종 인프라가 집중해 있는 서울보다 각 지방에서 자생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기에 훨씬 강한 만큼, 궁극적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팁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8년 중소기업청 창업지원과 사무관으로 시작해 올해로 26년째 스타트업·투자업계에 몸담고 있다. 2011년 파견근무를 하러 갔던 이스라엘에서 벤처 시장을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2년 1분기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보고서가 팁스 프로그램의 모델이 됐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배웠길래.
“그동안 정부가 해오던 스타트업 육성 기조와 정반대의 철학을 가지고도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한국은 20년 가까이 정부 주도의 ‘톱 다운’ 방식에 따라 수도권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가 투자 대상을 고르면, 민간이 후속 투자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정반대였다. 시장이 먼저 스타트업을 선별해 투자하면 정부가 과감히 후속 지원을 했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
“차이점은 대형 위기가 닥쳤을 때 극명히 드러난다. 똑같이 타격을 받더라도 시장이 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자율적인 생태계는 회복 탄력성이 좋다. 시장 원리에 따라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위기가 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처럼 정부가 손댈 수 없는 대형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반대로 정부 주도의 생태계는 시장이 어려울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자율적인 생태계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지역 균형적인 ‘보텀 업’ 생태계가 바람직하다. 각종 인프라가 집중해 있는 서울에 스타트업이 집중하는 것보다 각 지역에 분산돼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마다 창업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창업가들이 섞여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한 발명)’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지향점과 비전을 공유하는 다양한 창업가들이 한데 모이면 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투자자와 업계 전문가까지 모이게 된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정부 지원 없이도 자생하는 생태계가 구축되는 셈이다. 대신 창업 커뮤니티는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며, 창업가들이 자체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동안은 정부 주도의 발전을 해왔지만, 이제는 자생력을 키워줘야 할 때다. 해외에서는 일몰제를 적용해 정부 개입의 기한을 정해놓기도 한다. 시장에 ‘정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는 신호를 준 다음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즉 치고 빠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