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과수농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탑 프루트사업은 2006년 시작됐다. 탑 프루트(Top Fruit)는 농촌진흥청이 정한 크기·당도·모양·안전성 등을 통과한 ‘최고 품질의 과일’을 뜻한다. 시범농가에서 기준에 맞게 생산한 과일에는 ‘탑 프루트’ 스티커를 부착할 수 있다. 현재 2937개 농가가 사업에 참여해 사과·배·포도·복숭아·단감·감귤 등 6개 품목의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탑 프루트사업은 과종별 주산지에 시범단지를 선정하고, 다양한 핵심기술을 투입해 최고 품질의 과실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135개의 탑 프루트 시범단지가 있다. 이는 사업 첫해인 2006년보다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시범단지 재배면적 또한 2006년에 비해 6배 이상 늘어 전체 면적은 3846㏊에 이른다.

탑 프루트사업 참여 농가들의 수확량은 10a(300평)당 2234㎏으로 일반농가보다 8%가량 많다. 지난해 탑 프루트 생산량은 8280t에 달한다. 참여농가의 단위면적(10a)당 소득은 593만3000원으로 일반농가보다 33.7% 높고, 사업 전보다 소득은 38.3% 증가했다.

양상진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탑 프루트는 최근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시중에서 일반 과일보다 10~30% 이상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탑 프루트의 품질은 엄격하게 관리된다. 시범농가로 선정되면 3년 동안 다양한 기술 습득을 위한 교육과 함께 전문가로부터 컨설팅 등을 받게 된다. 생산된 과일을 대상으로 철저한 당도 측정과 농약 잔류 검사를 실시한다. 이 때문에 탑 프루트 시범단지는 인근 농가들의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양상진 연구사는 “탑 프루트 사업은 참여농가의 소득증대뿐만 아니라 국내 과수산업의 기술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로 기술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선의의 경쟁도 펼칩니다. 다른 농장을 방문해 충격을 받고는 더 좋은 품질의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애를 쓰는 농가들이 많습니다. 배우려는 열정도 뜨겁고, 교육 효과도 높습니다.”

- 심찬섭 찬농원 대표는 “탑 프루트 사업으로 배의 당도는 높아지고, 크기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 심찬섭 찬농원 대표는 “탑 프루트 사업으로 배의 당도는 높아지고, 크기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탑 프루트 사업으로 김포배 품질 업그레이드
지난 9월12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의 찬농원. 8250㎡(2500평)의 농원에는 수확을 앞둔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배를 감싸고 있는 봉지를 벗기자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언뜻 어른 주먹 2개를 합친 크기였다.

이 농원을 비롯해 인근 26개 농가는 올 초 탑 프루트 시범단지로 지정됐다. 김포시 배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이 농원의 심찬섭 대표는 “올 초부터 전문가에게 배운 대로 키웠더니 지난해보다 배가 더 달고, 커졌다”며 “다른 농가들도 탑 프루트 사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지난해 배만으로 5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3만3000㎡(1만 평) 규모의 벼농사로 2000만원가량의 소득을 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다. 올해는 6000만원의 소득을 기대하고 있다.

이 시범단지의 농가들이 생산하는 배는 전량 수출된다. 이들 농가들은 지난해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하와이 등에 400톤의 배를 수출했으며, 올해에도 수출 목표 400톤 달성을 위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심 대표는 “올해는 작년보다 작황이 좋아 수출물량을 확대하기 어려워 지난해 수준의 수출 목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주요 수출국은 대만. 대만은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는 배를 비롯해 기타 과일 소비가 많은 국가로 꼽히고 있지만 아열대성 기후에 따른 배 재배 어려움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일본배를 수입했지만 최근에는 품질과 가격 면에서 일본배보다 월등하다고 평가받는 한국배 수입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체 배 수입량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김포배가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부터다. 수출 물꼬를 튼 것은 심 대표였다. 그의 말이다. “1980년대부터 배농사를 지었는데,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가격을 받기 어려웠어요. 해외 시장을 뚫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2001년 경기도 양주의 농가들이 영농법인을 설립해 수출을 한다기에 그곳을 활용해 조금씩 수출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쌓은 노하우를 김포에 접목해 수출길을 열 수 있었어요.”

내년부터는 유럽, 북미 등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탑 프루트 사업을 통한 표준화된 재배기술로 생산된 균일하고 우수한 배만을 철저하게 선별하면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국제농산물우수관리(Global GAP) 인증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GAP는 농산물 생산과정과 유통단계에서의 토양·수질 등 환경 요소와 위생관리 등이 국제 기준에 맞아야 인증받을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을 뚫기 위해선 필수적이다.

신경희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박사는 “김포배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맛이 일품”이라며 “앞으로 김포배가 더 좋은 품질로 거듭나 더 넓은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심찬섭 대표와 양상진 농진청 연구사(맨 왼쪽), 신경희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박사가 배 작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심찬섭 대표와 양상진 농진청 연구사(맨 왼쪽), 신경희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박사가 배 작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인터뷰] 국순자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소장

“농업인과 소통하며 기술 발전 중추 역할 하겠다”

김포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일등공신은 국순자(58)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이다. 국 소장은 김포에서만 농업 전문가로 22년을 보냈다.

그는 김포포도를 탑 프루트로 키운 주역이기도 하다. “이전까지만 해도 김포포도는 정말 맛이 없었어요.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에 재배 농가를 설득해 2012년 탑 프루트 사업을 추진했는데,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했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농민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전문가를 만나고, 다른 우수 농가를 방문하면서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였죠.”

김포포도는 지난해 전국 포도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탑 프루트 우수 시범단지로도 뽑혔다. 포도재배농가의 소득은 이전보다 15~20% 늘었다. 포도의 품질이 고급화되면서 소득이 증가한 것을 지켜본 지역의 배 재배 농가가 그를 찾아오면서 김포배도 탑 프루트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김포는 서울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배 산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김포배는 전남 나주 등 남부 주산지보다 수확기가 늦고, 일교차가 커 당도는 높고, 쉽게 무르지 않는 게 장점입니다. 그리고 대만, 동남아 등지로 수출하는 효자 농산물이었죠. 현장 중심 기술지도와 함께 농촌진흥청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맛있고, 안전한 배를 생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어요.”

국 소장은 김포를 ‘성공하는 농업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김포는 신도시 개발 등의 영향으로 지난 2010년 23만 명이었던 인구가 현재 32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기존 농업인들은 더욱 세련된 농업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인근 도시에서 이주한 도시민들은 텃밭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입니다.”

농업기술센터가 지역 농업 기술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행정직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지역 농업현장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학습동아리인 ‘두 바퀴’를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두 바퀴는 각 품목별 전문가를 멀티 플레이어로 양성하고, 농업인과 소통하는 현장 중심형 네트워크입니다. 한 단계 앞선 농업을 하기 위해선 직원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국 소장은 김포 내 2개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로컬푸드 매장의 운영 활성화에도 적극 나선다.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을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는 농산물을 제값에 받을 수 있는 상생 장터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국 소장은 여주·이천에 빼앗긴 ‘김포금쌀’의 명예도 꼭 되찾아 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품질 쌀을 만들기 위해 볏짚을 퇴비로 활용하는 한편 3년에 한 번씩 토양을 개량하고, 우수 쌀품종을 확대보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포는 예로부터 ‘매수수도 3년 심으면 차수수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곡식이 차지고 맛이 좋습니다. 옛날 김포금쌀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지요. 이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김포쌀을 전국 최고의 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