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기슭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캠퍼스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 산중턱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가 있는 건물 중 한 동에는 대형 수조(towing tank)가 설치돼 있다. 길이 110m, 폭 8m, 깊이 3.5m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그 안에 들어서면 마치 강이 흐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에게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학과장은 “산 위에 이런 강이 있을 줄 몰랐죠?”라며 웃음을 보인다. 

“이곳은 모형 선박을 예인하며 선박에 가해지는 저항이나 선박의 파랑 중 운동을 계측하는 시설입니다. 파도를 만드는 장치가 있어 파도의 세기에 따라 저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가 있죠. 3~5m 정도의 모형선의 저항이나 운동을 계측하고 이를 실제 크기의 선박에 확장해 선박 설계에 활용하게 됩니다.”

배 한 척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섬세한’ 작업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수도 없는 실험으로 작은 오차도 없애려는 실험 과정이 담긴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 김용환 학과장은 “해양 마켓은 핑크빛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LNG 수요가 높아졌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오일이 한계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스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용환 학과장은 “해양 마켓은 핑크빛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LNG 수요가 높아졌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오일이 한계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스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3사 수주 경쟁 실적 부진으로 이어져
김용환 학과장은 국내 해양조선업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조선해양산업을 살리기 위해 앞으로 어떤 숙제가 남아 있을까. 

“현대(중공업)는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내외이고 그 외에 엔진, 산업용 로봇, 태양열 발전, 건설 등 워낙 사업을 다각화해놨기 때문에 조선 산업에서 부진을 겪어도 다른 분야에서 만회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는 특히 조선에 의존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 부진을 겪으면 그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 회사가 해양으로 사업방향을 턴하는 중이다. 치열하게 기술개발을 해 드릴십(시추선)과 LNG FPSO 등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상당히 비중을 늘려왔다. 조선분야 물량이 떨어지면서 지난 2년 동안 해양 쪽에서는 3사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 시기에 저가 물량 수주를 경쟁적으로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올 초의 실적 부진을 가져온 것이다.”

이들 3사가 해양플랜트 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미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김용환 학과장은 “해양 마켓은 핑크빛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LNG 수요가 높아졌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오일이 한계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스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질 것이다. 해양은 앞으로 2020~2030년까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해양플랜트 산업은 ‘턴키방식(turn-key system)’의 주문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여서 부가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 턴키방식이란 설계, 시공 및 감리, 시운전까지 일괄 수주해 구매자가 최종단계에서 키만 돌리면(turn-key) 모든 설비가 가동되는 상태로 인도하는 계약을 말한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011년 프랑스 토탈로부터 턴키방식으로 수주했던 파즈플로 FPSO가 대표적 사례다. 대우조선해양은 준공식 당일 토탈로부터 약 625억원의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해양 분야 2030년까지 계속 성장할 것”
김용환 학과장은 “해양플랜트 산업의 발전을 위해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해양구조물 한 척에 비싼 것은 5조원이 넘기도 한다. 전체 프로젝트가 50조원에 이르기도 한다. 자동차 하나 사서 타이어가 펑크 나면 교체하기가 쉽지만, 수심 2000~3000m 아래에서 밸브가 하나 고장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2010년 멕시코만(灣) 기름 유출 사고 때 원유생산업체인 로얄더치쉘이 1차로 물어준 돈이 10조원이었다. 자칫 잘못되면 그 타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조선이 어렵다고 해양플랜트 산업을 쉽게 생각해서 들어가선 안 된다. 한국이 어떤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해양플랜트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인력 양성이 절대적 조건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지난해 4월부터 조선·해양공학 및 에너지자원공학 관련학과를 보유한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해양플랜트 특성화 대학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대에서도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인력은 한국의 조선해양업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취약한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른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떠나 그저 적극성만을 가지고 추진해왔다. 어떻게 돈이 들어갈지 모르니 사업 금액을 너무 낮게 책정한다든가, 엉뚱한 계약을 한다든지, 최선이었지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계약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빨리 인재를 길러낼 분야가 너무 많다. 한 예로 호주에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PM)를 스카우트 하려고 하니 연봉 80만달러를 요구하더라고 한다. 그 정도면 국내 빅3 업체 중 한 곳의 부사장급 정도는 된다. 그러니 어떻게 데려오겠나. 그런데 PM을 잘 뽑아오면 몇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인력을 국내에서 빨리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