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의 다양한 자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종 탐사 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심해는 압력이 높을 뿐 아니라 빛과 전파가 통과하기 쉽지 않아 육상에서 쓰이는 기술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 심해 탐사 장비들은 고(高)기술력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해 자원탐사에 쓰이는 핵심 장비인 무인잠수정과 무인로봇 기술을 ‘탐사’해 봤다.

쥘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는 뜨거운 열수광상이 등장한다. 이 해저열수분출의 발견은 학문적인 가설을 실제 자연현상에서 찾아낸 20세기 해양과학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전까지 과학적인 추론에 머물렀던 해저열수광상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해저관측기술과 심해에 도달할 수 있는 잠수기술이 발달한 덕분이었다.

1977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섬 주변의 해저로 내려간 심해유인잠수정 앨빈호는 검은 연기와 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해저열수광상과 처음 만나게 된다. 무한한 자원을 품고 있지만 접근이 어려운 바닷속을 연구하기 위해 그 이후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탐사 기술이 개발돼 왔다. ‘타이타닉’, ‘아바타’ 등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심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을 위해 2012년 3월 심해유인잠수정 딥시챌린저호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해구(海溝)를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이 탐사로 수심 1만m가 넘는 심해를 직접 내려가 본 세 번째 사람으로 기록됐다.

‘우주에 다녀온 사람보다 심해에 들어간 사람이 더 적다’는 말이 있을 만큼 깊은 바닷속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해양 연구에서 ‘직접 현장을 관측하는 것’은 최종 단계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선박, 항공기 또는 인공위성으로 관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심해는 직접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이 큰 장애요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심해무인잠수정과 해저 로봇이다.

1. 게(Crab)와 가재(Lobster)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해저로봇 크랩스터(CRABSTER).2. 정밀 근접 탐사와 채취 작업 등이 가능한 해저로봇 크랩스터는 세월호 사고 해역 조사에 투입됐었다.
1. 게(Crab)와 가재(Lobster)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해저로봇 크랩스터(CRABSTER).
2. 정밀 근접 탐사와 채취 작업 등이 가능한 해저로봇 크랩스터는 세월호 사고 해역 조사에 투입됐었다.
‘해미래’ 세계 4번째 6000m급 심해무인잠수정
우리나라는 1987년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수심 250m까지 잠수가 가능한 유인잠수정 ‘해양 250’을 만든 바 있다. ‘해양 250’은 현재 퇴역해 부산의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후 수심 6000m급 심해무인잠수정인 ‘해미래’가 개발돼 우리나라 해양자원 탐사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해미래는 한국해양연구원과 해양수산부(당시 국토해양부)가 2001년부터 12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무인잠수정으로, ROV(Remotely Operated Vehicle·원격조종무인잠수정)로 2006년 11월 완성됐다. 6000m급 심해무인잠수정 개발은 미국, 일본,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다. 무인잠수정은 크게 ROV와 AUV(Autonomous Underwater Vehicle·자율무인잠수정)로 구분된다. ROV는 바다 위의 모선(母船)과 케이블로 연결돼 있고, 모선의 제어 시스템에 의해 원격 조종된다. 반면 케이블로 연결되지 않은 AUV는 컴퓨터와 동력원이 내장돼 있고, 각종 항해용 센서가 장착돼 있어 자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모선이 없기 때문에 ROV에 비해 운영비는 적게 들지만 이동에 제약이 있고, 동력원의 용량 제한으로 항해시간이 길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해미래 개발을 주도했던 이판묵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해미래에는 6개의 모터구동 방식의 수중 추진기가 장착되었고, 2개의 로봇팔과 8개의 비디오카메라, 디지털 스틸카메라를 이용해 해저에서 촬영 및 탐사물 채취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 해미래는 지난 2001년부터 120억원을 투입해 지난 2006년 완성한 심해무인잠수정이다. 해미래 개발을 주도했던 이판묵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이 해미래 앞에 서서 밝게 웃고 있다.2. 전봉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6000m급 해저로봇이 개발되면 심해저 자원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 해미래는 지난 2001년부터 120억원을 투입해 지난 2006년 완성한 심해무인잠수정이다. 해미래 개발을 주도했던 이판묵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이 해미래 앞에 서서 밝게 웃고 있다.
2. 전봉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6000m급 해저로봇이 개발되면 심해저 자원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팔 이용해 탐사물 채취 가능
위치 제어가 어려운 심해저에서 사용되는 무인잠수정은 정밀 항법, 자율운항제어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초음파 속도센서 등을 활용한 수중항법 시스템에 수중음향 위치측정센서를 보조로 사용해 깊은 물속에서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판묵 책임연구원은 “해미래에 사용된 기술은 6000m 수심에서 해저를 탐사하면서 위치측정오차가 5m 이내에 드는 매우 정밀한 항법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해미래에는 단짝 ‘해누비’가 있다. 해누비는 해미래의 작업 지원을 위한 이동형 해저기지의 기능을 하는 장비다. 해누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선과 연결된 1차 케이블을 통해 공급받은 전기를 케이블을 통해 해미래에게 공급한다. 또한 해미래의 자율운항제어와 수중항법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 2009년 만든 지능형 AUV인 ‘이심이’까지 합쳐 현재 우리나라는 3개의 무인잠수정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무인잠수정 개발에 뒤늦게 뛰어들었으나,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기술을 바탕으로 무인잠수정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판묵 책임연구원은 “해미래는 천안함 피격 당시 침몰해역에서 파편 회수 작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혼탁한 수중에서도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저면을 수색하는 데 유리하다”며 “무인잠수정은 심해 개발의 필수 장비로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로서도 활용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무인잠수정과 함께 해저 탐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 해저로봇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부터 총 연구비 200억원을 들여 오는 2016년까지 6년간 ‘다관절 복합이동 해저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수중에서 헤엄을 치거나 걸어 다니면서 연근해는 물론 심해에서 정밀 근접 탐사와 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게·가재 본떠 만든 해저로봇 ‘크랩스터’ 물살에 강해
1단계로 지난해 ‘크랩스터(CRABSTER)-CR200’이 천해(淺海)용인  200m급으로 개발됐다. 가로 2.42m, 세로 2.45m, 높이 1.3m 크기에 600kg 무게인 이 크랩스터는 바닷속에서 6개의 다리를 이용해 초당 0.1m의 속도로 걸어 다닐 수 있다. 크랩스터는 ‘크랩(Crab)’과 ‘랍스터(Lobster)’를 합한 말로 실제로 게와 가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크랩스터 개발 책임자인 전봉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게나 가재가 강한 물살에 견디며 살아가는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프로펠러를 이용하면 조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크랩스터는 유속에 따라 6개의 다리를 움직여 저항을 줄일 수 있어 안정적이고 움직임이 보다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크랩스터는 바닷속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고해상도의 수중음파 촬영 및 광학 영상 촬영, 초음파 카메라를 이용한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전봉환 책임연구원은 “그밖에도 수심, 온도, 유속 등 바닷속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으며, 크랩스터의 앞부분에 달린 2개의 로봇팔을 이용해 샘플도 채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도 크랩스터가 투입돼 바닷속 상황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크랩스터가 촬영한 초음파 영상에는 바다 밑바닥에 비스듬하게 가라앉은 세월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봉환 책임연구원은 “원래는 크랩스터가 해저유물탐사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고가 나는 바람에 현장에 투입됐었다”고 전했다.

앞으로 2단계로 2016년까지 6000m급 크랩스터 개발이 실시된다. 1단계로 개발된 크랩스터-CR200은 해저에서 보행만 가능하지만, 2단계로 개발될 CR6000은 수중 유영(游泳), 즉 헤엄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질 예정이다. 전봉환 책임연구원은 “CR6000이 완성되면 해저 6000m 아래의 바닷속에서 자원 탐사와 샘플 채취 등을 수행할 수 있게 돼 우리나라의 심해저 자원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